[마음을 찾는 사람들] 예수님처럼 ‘외진 곳’에서 기도하는 시간, 우리에게도 필요

김한수 기자 2024. 3. 27.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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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년간 개신교인 마음 돌본 ‘가락재 영성원’ 정광일 목사
가락재영성원 숲속의 작은 기도실 ‘에레모스’에서 정광일 목사가 호흡에 집중하고 있다. 정 목사는 “호흡을 통해 마음을 맑게 비워내고 그 자리에 하나님 말씀을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장련성 기자

경기 가평 설악면 위곡리의 소로(小路)를 따라 오르다 보면 고즈넉한 풍경 속에 ‘가락재 영성원’을 만난다. 정광일(72) 목사가 1991년 말 문을 열고 30여 년에 걸쳐 한 채씩 지은 작은 건물들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고, 정성 들여 가꾼 나무와 꽃들이 반기는 곳. 풍경만으로도 힐링의 느낌이 일어난다.

연세대 철학과와 장로회신학대 신학대학원을 나와 프랑스 유학을 한 정 목사는 33년 전 이곳으로 자발적으로 찾아왔다. 그의 세 자녀 덕분에 인근 초등학교는 폐교 위기를 넘겼다고 할 정도로 ‘외진 곳’이었다. 당시는 한국 개신교에 ‘금식 기도원’과 ‘통성 기도’의 열기가 뜨거웠고, 개신교 성장세가 정점을 향하던 때였다. 그는 그 열기를 뒤로하고 가락재에서 조용히 30년 넘게 마음을 다친 사람들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영적 근육’을 키울 수 있도록 도왔다. 홍보도 하지 않고 한 번에 최대 30명밖에 수용할 수 없는 곳. 그렇지만 알음알음 수천명이 다녀갔다. 그는 이곳을 다녀가며 주소를 남긴 1000여 명에게 이메일로 보낸 묵상 내용을 모아 ‘가락재 단상’ ‘말씀 단상’ 등의 저서를 펴내기도 했다.

-1991년 가락재 영성원을 열었습니다.

“당시 제가 ‘영성원’ ‘개신교 수도원’을 열겠다고 했을 때 주변에선 ‘그게 뭐냐?’며 ‘둥근 사각형’처럼 여겼지요. 그땐 ‘번아웃’ 같은 단어도 없었어요. 그렇지만 저는 언젠가 영성을 찾는 때가 올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성경엔 헬라어(그리스어)로 ‘에레모스’ 즉 ‘광야’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예수님도 광야로 가서 기도하셨지요. 한국에서는 산이 광야입니다. 신앙 안에서 좋은 질문을 하고 기도할 수 있는 곳을 제공하자는 생각이었습니다.”

-홍보도 거의 하지 않더군요.

“규모를 키우거나 수련원처럼 프로그램화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여기서는 무엇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대화와 ‘듣는 것’ 위주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살아온 삶이 다릅니다. 겪은 문제가 다르고 치유법도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우선 들어야 합니다. 듣는 것은 보는 것에 비해 훨씬 더디고 답답합니다. 번개를 생각하면 됩니다. ‘번쩍’ 한 뒤 한참 기다려야 ‘우르릉 쾅’ 소리가 들리지요. 듣는 일은 기다림입니다. 그렇지만 잘 듣기만 해도 많은 문제가 스스로 해결되곤 합니다. 저는 ‘답답한 일, 분통 터지는 일 있으면 여기서 터뜨리고 가시라’고 권합니다.”

-기도실인 ‘에레모스’ 벽엔 ‘그러나 예수께서는 늘 여기저기 외진 곳으로 물러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라는 누가복음 구절이 붙어 있습니다.

“여기서 ‘외진 곳’ ‘기도’도 중요하지만 사실은 ‘그러나’의 앞부분을 주목해야 합니다. 그 구절의 앞부분은 예수님이 병자를 고치는 이야기입니다. 소문을 듣고 사람들이 몰려와 와글와글하지요. 그럴 때 군중에서 빠져나온 예수님은 ‘외진 곳’을 찾아 기도하셨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명상, 관상(觀想), 영성에 관심이 높지만 저는 개신교 관점에선 모두 ‘기도’로 통한다고 봅니다.”

-어떤 기도인가요.

“외진 곳을 찾은 예수님이 하나님께 더 큰 능력을 달라고 기도했을까요?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묻고 헤아리는 기도를 하시지 않았을까요? 그런 기도를 하는 곳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정광일 목사가 가락재 영성원의 영성을 담은 '쉼' '숨' '섬'을 한 글자로 표현한 '쉄'을 새긴 돌 앞에 서있다. / 장련성 기자

-가락재 영성원은 ‘쉼’ ‘숨’ ‘섬’을 지향합니다.

“현대인에게 쉼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여기서 묵상하고 산책하면서 자연을 온전히 느끼기만 해도 됩니다. 꽃, 나뭇잎, 바람, 해, 달을 온전히 느끼고 자연이 뭐라고 얘기하는지 귀 기울여 보라고 권하지요. 이곳엔 딱따구리가 나무를 쪼는 일도 많은데, 그 소리를 듣는 분도 있지만 못 듣는 분도 많아요. 저는 그럴 때 가이드가 아니라 친구, 솔 프렌드(soul friend) 역할을 합니다. 안식(쉼)과 영적 호흡(숨)을 통해 스스로 홀로 설 수 있도록(섬) 돕습니다.”

-영성 수련은 어떻게 하나요?

“수련을 원하는 경우엔 호흡부터 렉시오 디비나(거룩한 독서), 관상기도 등의 방법을 안내합니다.”

-호흡 수련은 어떻게 합니까?

“이 방에 둘러앉아서 ‘최초의 들숨’과 ‘최후의 날숨’을 생각하길 권합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시고 처음 불어넣어 주신 입김, 우리가 어머니 배 속에서 나와서 처음 들이마신 숨을 생각하는 거지요. 또한 누구나 마지막 순간엔 날숨을 쉬고 세상을 떠납니다. 그 마지막에 쉬고 갈 날숨을 미리 생각해보는 거지요. 호흡을 통해 마음을 맑고 깨끗하게 비운 상태에서 하나님 말씀, 예수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이죠.”

지난 2021년 가락재 영성원 30주년을 맞아 지은 기도실 '에레모스' 앞에 선 정광일 목사. 입구 나무데크 아래엔 '침묵'이란 팻말이 놓여있다. / 장련성 기자

-렉시오 디비나는요?

“정해진 성경 구절을 읽다가 마음에 와닿는 부분이 있으면 거기 머물라고 권합니다. 그 마음으로 그 단어, 구절, 문장에 머물면 물이 차오르듯 마음이 채워집니다. 10분, 20분, 30분이 지나면 물속에 잠기게 되는데, 그걸 하나님의 품이라고 생각하고 누리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과의 일치를 느끼게 되는 것이지요. 저도 늘 그런 상태가 되지는 않습니다. 될 때가 있고, 안 될 때가 있는데 그것조차도 참가자들과 그대로 이야기를 나눕니다.”

-참가자 반응은 어떤가요?

“시간을 드린 후 자신이 기도하고 묵상한 내용을 반추해보길 권합니다. 객관화해서 자신을 보는 것이지요. 어떤 분들은 울음을 터뜨리고, 어떤 분들은 ‘지금은 표현할 수가 없다’고도 합니다. 그러면 그 상태를 잠자리까지 가지고 가라고 합니다. 다음 날 만나서 다시 이야기를 나누지요. 이런 과정을 통해 치유와 충전을 이야기하는 분이 많습니다. 이런 과정은 제가 치유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성 있는 대화 속에 하나님이 개입하신다고 봅니다.”

-일상생활에서 지속성이 중요할 듯합니다.

“‘영적 근육’이라는 말이 있지요? 근육도 계속 쓰지 않으면 빠지듯이 영적 수련도 계속 해야 합니다. 배우고, 익히고, 체득해야지요. 우리가 아는 누가복음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는 구절 앞에는 ‘날마다’가 있습니다. 바울도 고린도전서에서 ‘나는 날마다 죽는다’고 했습니다. ‘날마다’가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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