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영의 저랑 같이 신문 읽으실래요] [5] 한 치 앞 정도는 알 수 있으려면
전국 미분양 주택 두 달 연속 증가…. 신문을 읽다가 색연필을 내려놓고 눈을 감는다.
또각또각, 스물여덟 살 김 과장은 분양 사무실에 처음 출근했다. 그의 팀은 3조. 3조 팀장은 팀원에게 A4용지 몇 장이 담긴 파일을 주었다. 파일엔 지역의 호재와 위치상 장점과 도시형 생활주택을 구매했을 때 받을 수 있는 월세가 적혀 있다. 그는 다음 날부터 모르는 사람들에게 전화를 돌린다. 이 지역은 제2의 분당이 될 수 있어요. 얼른 사야 합니다. 실투자금 3000만원만 있으면 됩니다. 다음 날은 역 근처로 나가 휴대폰 번호가 붙은 물티슈를 사람들에게 나눠 준다. 누군가의 표정에서 호의를 발견하면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 신호가 빨간불에서 초록 불이 되어도 따라 건너면서 설명한다. 모델하우스로 구경 오세요, 사장님. 그 말을 끝으로 그는 돌아선다. 김 과장은 매일 출근해서 열심히 일했지만 몇 달 뒤 계약을 한 건도 하지 못한 채, 명함을 정리하고 고향으로 내려간다.
위 글에 나오는 김 과장은 바로 과거의 나다. 그때 나는 부동산 경기가 어떤지, 지금 세계 경제가 어떤 상황인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 상태로 무작정 팀장이 준 자료만 반복해서 외웠다. 코끼리 코에서 시작과 끝을 왔다 갔다 했달까. 그때 왜 우리나라 경제 흐름에 대해 알아보려 노력하지 않았을까. 코끼리를 볼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던 걸까.
김 과장으로 돌아간다면, 애초에 아파트 선정을 누군가의 말이 아닌, 내가 직접 신문을 통해 호재가 많다고 확인한 지역의 아파트로 결정할 것이다. 결정하기 전 현장을 둘러보고 위치를 확인하고 주민 말도 함께 들어보는 것이 좋겠다. 또한 평소에 경제 흐름을 파악하려고 노력하고, 파악한 내용으로 블로그를 개설해서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칼럼을 쓸 것이다. 요즘 많이 하는 챗GPT나 AI 기술로 영상을 만들어서 올려도 괜찮을 듯하다. 오픈 채팅방을 통해서 부동산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모으며 그들과 계속해서 연결된 끈을 이어갈 것이다.
과거 여행이 끝나고 눈을 뜬다. 흐릿해진 초점이 또렷해지는 사이 커피숍 창가가 선명해진다. 확실히 누군가의 말이 아닌, 기사를 읽고 전반적 시장을 아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 정치와 경제 이슈는 무엇인가? 그 이슈는 현재의 직업과 직접 관련이 없을 수 있지만 해석을 통해 다양한 직업에 활용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뚝뚝, 창에 빗방울이 맺힌다. 갑자기 내리는 비에 웅성대는 사람들 소리가 들린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게 인생이라더니. 신문을 챙겨 읽는 나는 한 치 앞 정도는 알 수 있게 되었다. 가방 안에는 우산이 있다. 그리고 김 과장이 보지 못한 코끼리를 지금 내가 발견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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