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숲길] AI와 진달래 화전

정희경 시조시인 2024. 3. 27.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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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꽃이 앞다투어 핀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삼월 삼짇날 진달래꽃을 따다가 찹쌀가루에 반죽하여 둥근 떡을 만드는데, 이것을 화전이라 한다"고 했다.

해가 갈수록 진달래 화전은 화려함을 더해 가고 퓨전 진달래 화전도 탄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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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경 시조시인

봄꽃이 앞다투어 핀다. 매화가 지더니 도시에는 목련에 새들이 날아와 뽀얀 날개를 펼치고 벚꽃도 발그레하다. 봄은 널뛰기하는 기온보다 화사한 봄꽃들로 온다. 도시를 조금만 벗어나면 온 산은 진달래로 분홍빛이다. ‘나 보기가 역겨워/가실 때’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며 ‘가실 길에 뿌리’는 그 꽃, 진달래가 한창이다. 즈려 밟고 간 그 꽃이 매년 봄이면 우리를, 온 산하를 찾아온다.

‘순이나 옥이 같은 이름으로 너는 온다/그 흔한 레이스나 귀걸이 하나 없이/겨우내 빈 그 자리를/눈시울만 붉어 있다’(전연희의 시조 ‘진달래’ 첫째 수)

평범하고 소박한 이름과 모습으로 늘 우리 곁에 있는 진달래이다. 많은 봄꽃이 그러하듯 진달래도 잎 없이 꽃이 먼저 피어 꽃샘추위도 꿋꿋하게 견딘다. 서운암에는 올해도 부산 울산 경남의 시조시인들이 모여 ‘화전시회’를 열어 고소한 봄이 핀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삼월 삼짇날 진달래꽃을 따다가 찹쌀가루에 반죽하여 둥근 떡을 만드는데, 이것을 화전이라 한다”고 했다. 익반죽한 찹쌀가루를 둥글게 빚어 기름에 지진 후 어느 정도 익으면 진달래꽃을 얹는다. 동태전에 쑥갓잎을 얹고 떡국에 계란 지단을 올리듯 진달래꽃도 떡의 고명이다. 너무 일찍 꽃을 얹으면 꽃 색깔이 누렇게 변하고 너무 늦게 얹으면 잘 붙지 않는다. 찹쌀가루도 적당히 익어야 입에 달라붙지 않고 착착 감긴다. 떡과 꽃의 조화가 잘 어울려야 보기에도 좋고 맛도 좋은 화전이 된다. 간혹 쑥으로 장식하는 이도 있고 꽃잎으로 글자를 새기는 이도 있다. 해가 갈수록 진달래 화전은 화려함을 더해 가고 퓨전 진달래 화전도 탄생한다.

‘진달래꽃을 따다/흰 보에 수를 놓자/봄을 타는 사람끼리/봄 한판 뒤집는구나/그 작고/동그랗던 게/산 붉게 덮는 것 봐’(제만자의 시조 ‘꽃지짐’ 전문)

화전을 부쳐 놓고 누구의 화전이 제일 예쁘고 맛있는가를 가리고 거기에 시조를 얹고 노래와 창과 오카리나 하모니카 가야금으로 흥을 보탠다. 시조시인들은 단순히 화전을 구운 것이 아니라 시조와 문화를 구운 것이다.

“물은 아래로 흘러내리는 것이 순리이다. 그러나 풀과 나무들은 물을 위로 끌어 올린다. 시인들도 천지의 기운을 끌어 올리는 초목처럼 그 기상을 끌어올려 온 천지에 퍼트려야 한다”는 큰스님의 말씀을 시조시인들은 화전을 부치며 실천하고 있다. 그들이 진달래가 되고 쑥이 되고 초목이 된다.

AI가 시를 쓰는 시대에 진달래꽃을 꺾어 화전을 부치고 시조를 읊는다면 과거로의 회귀라고 할까? 구태의연하다고 할까? 스피드 시대에 시간 낭비라고 할까?

아니다. 전통이다. ‘화전놀이’는 “진달래가 피어나는 춘삼월에, 한 마을의 기혼 여성이 무리 지어 인근의 산천을 찾아 벌이는 집단적 놀이 활동”이었고 “여성들은 화전과 떡, 국수와 술 등 다양한 음식을 나누며 가무와 놀이를 즐긴”(한국민족문화대백과 사전) 세시 행사 가운데 하나였다.

‘구경을 그만하고 화전터로 내려와서/번철이야 정관이야 시냇가에 걸어 놓고/청유라 백분이라 화전을 지져 놓고’(작가 미상의 내방가사 ‘화전가’ 일부)

‘화전놀이’는 내방가사와 결합하여 여성 문학으로서의 영역을 확대하고 여성들의 놀이문화로 자리 잡아 내려오는 전통이다. 이 ‘화전놀이’의 전통을 현대적으로 계승 발전시킨 것이 ‘화전시회’이다.


며칠 전 “뭐 좀 먹을 수 있을까”라는 말에 테이블에 있는 사과를 정확하게 집어 건네주는 휴머노이드 로봇을 보았다. 참 경이롭다. 그 로봇이 떡을 뒤집을 시간과 꽃을 놓을 정확한 자리를 계산하여 진달래 화전을 부칠 수 있는 날이 곧 올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전통문화 ‘화전놀이’와 ‘화전시회’를 이어갈 수는 없다. 이 전통의 계승은 친근하고 소박하지만 우리 민족의 감정이 흐르는 꽃, 진달래의 고운 빛깔과 풍류와 문화를 기억하는 인간만이 가능한 것이다. 휴머노이드 로봇과 챗GPT와 공존하는 시대, 인간이 더욱 인간다워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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