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동물원] 나는 왜가리 위에 뛰는 스라소니...피비린내 나는 점프
호랑이 사자보다 작지만 스라소니는 강력한 맹수
신체 탄력성과 적응력 뛰어난 스라소니, 한반도에 생존 가능성 꾸준히 제기
지금 이순간에도 수많은 동물들이 먹잇감들로 희생되고 있습니다. 더러는 통째로 삼켜지고, 더러는 죽지도 않았는데 살과 가죽이 벗겨지고, 더러는 독에 쏘여 세상과 작별을 하고 있겠지요. 어차피 잡아먹힐 운명이라면 조금이라도 덜 고통스럽게 당하는게 먹잇감들의 마지막 소원일지 모릅니다. 그런 최소한의 배려조차 기대할 수 없는 가련한 족속들이 있어요. 바로 왜가리의 사냥감입니다. 우선 왜가리의 사냥 동영상(It’s Kawcher Gaming Facebook)을 한 번 보실까요?
이 땅다람쥐에게 재앙은 별안간 빛의 속도로 찾아왔습니다. 언제나처럼 땅에 파놓은 구덩이에서 평온한 일상을 즐기고 있었을 거예요. 순간 빛의 속도로 목덜미가 날카로운 무언가에 꿰뚫립니다. 끝이 뾰족한 왜가리의 부리였어요. S자형으로 굽어있는 목을 순간적으로 목표물을 향해 쭉 뻗는 특유의 사냥법인 데스블로(death blow·치명타)로 단 한번의 시도로 포획에 성공했습니다. 부리 끝에 매달려 버둥거리는 땅다람쥐의 얼굴에서 공포와 절망감이 뚝뚝 묻어납니다. 버둥거리는 녀석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삼켜지기 전까지 최대한 많이 세상구경을 하는 것 뿐이죠. 그 풍경을 담고 기억할 눈동자와 뇌까지 결국 왜가리의 뱃속에서 소화될 처지지만 말이죠. 왜가리는 이토록 무서운 사냥꾼입니다. 전광석화로 뻗는 부리에 걸린 설치류·새끼오리·악어·개구리·비둘기 등 먹잇감들은 종내에는 왜가리 뱃속으로 넘어갈 처지입니다. 하지만, 오늘의 사냥꾼이 내일의 사냥감이 되는게 야생입니다. 늪지의 괴수 왜가리가 먹잇감으로 전락하는 드문 장면이 포착됐습니다. 미국 어류야생동물보호국(USFWS)에서 최근에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을 한 번 볼까요?
왜가리 한 마리가 유유히 물가를 날아갑니다. 보통 왜가리는 수심이 얕은 곳이나 육지에서 사냥을 하기 때문에 놈의 뱃속은 이미 막 삼킨 쥐나 새끼오리 등으로 든든하게 채워져있었을 듯 합니다. 물새 특유의 우아한 자태를 뽐내며 수면을 비행하려던 놈의 계획은 이륙 불과 몇 초만에 처참하게 박살나고 맙니다. 이제 고도를 높이려던 찰나 뒤에서 숨죽이고 있던 보브캣이 기습공격을 했어요. 마법의 양탄자에 막 뛰어오르는 알라딘처럼 보브캣은 뒷다리를 쭉 뻗은 채 하늘다람쥐처럼 활공하는 모습으로 왜가리의 날개를 움켜쥡니다. 마치 보브캣이 왜가리의 등에 몸을 싣고 강을 건너려는 것처럼 보여요. 디즈니 애니메이션이라면 둘 사이에 이런 대화가 오갔을 수도 있어요.
왜가리: 아이씨, 깜짝 놀랐잖아.
보브캣: 강 건너까지 가려는데 혹시 데려다 주실 수 있을까요?
왜가리: 알았다.
코러스: 랄랄라~ 보브캣이 왜가리를 타고 강을 건넌다네/둘은 오래토록 우정을 쌓았다네~~
그리고 디즈니 특유의 유려한 배경음악에 맞춰서 왜가리를 타고 호숫가를 훨훨 날아가는 보브캣의 모습이 아름답게 클로즈업됐겠죠. 하지만 이 장면은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내셔널 지오그래픽입니다. 그래서 아마도 실제로는 이렇게 끝났을 거예요. 혼비백산한 왜가리가 어떻게든 보브캣을 떨궈내려고 했지만, 이미 날카로운 발톱으로 몸을 움켜쥔 보브캣을 이겨내기는 버거웠을 겁니다. 힘차게 날아오른 비행이 끔찍한 추락으로 마무리합니다. 날개를 푸드덕대는 왜가리를 짓누른 보브캣은 가슴팍의 깃털을 뽁뽁 뽑아내곤 살점을 파고들며 활화산처럼 뿜는 피맛에 광분하며 폭풍만찬을 시작할 거예요. 보브캣이 식사를 끝난 자리에는 아름다운 왜가리의 남색·흰색·회색 깃털과 뾰족한 부리, 늘씬한 다리 등의 잔해가 휑뎅그렁하게 뒹굴고 있겠죠. 보브캣이 속한 고양잇과 가문인 스라소니가(家)의 킬러 본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맹수의 본류인 고양잇과 하면 떠오르는 건 우선 호랑이·사자·표범·재규어·치타·퓨마로 구성된 큰고양이 6대 천왕이죠. 하지만 덩치만 조금 왜소할뿐 이들 6대 천왕 못지 않은 킬러 본능으로 초식동물에게 공포의 절대자로 군림하는 부류가 바로 스라소니입니다. 여느 고양잇과 맹수보다도 복슬복슬한 털로 덮여있고, 쫑긋 선 귀를 갖고 있어 대번에 ‘스라소니’라는 걸 알아챌 수 있어요. 털복숭이 외모가 말해주듯 서식지는 북반구에 몰려있습니다. 북극권과 멀지 않은 시베리아와 캐나다부터 유라시아, 그리고 남쪽 한계선은 지중해와 멕시코입니다. 크게 네 종류가 있어요. 한반도에도 일부 사는 것으로 알려진 게 북반구 북부에 널리 퍼져사는 유라시아스라소니이고, 중부·남부 유럽에 사는 이베리아스라소니와 북아메리카에 서식하는 캐나다스라소니가 있죠. 마지막이 붉은스라소니라고도 불리는 보브캣입니다. 우선 보브캣이 연어를 사냥하는 장면(National Geographic Facebook) 한 번 보실까요?
여느 고양잇과 맹수에 비해 평평한 발을 갖고 발바닥까지도 털이 푹신하게 나있어요. 최신 기능의 눈신인 셈이죠. 이런 첨단 장비를 갖고, 먹잇감에 최대한 가까이 몰래 접근한 뒤 단번의 기습으로 거꾸러뜨리는 전법으로 숲의 제왕으로 군림합니다. 가장 즐겨 먹는 먹이는 토끼지만, 기회가 되면 사슴까지 노립니다. 종을 불문하고 스라소니의 사냥에서 공통적으로 보여지는 특징이 있는데요. 바로 ‘먹잇감 갖고놀기’입니다. 만만한 토끼 등이 손쉬운 공격권에 들어오면 바로 덮치는게 아니라 일정한 거리를 두고 함께 뛰어다닙니다. 이런 ‘갖고 놀기’는 다른 고양잇과·갯과 맹수들에게서도 일부 보여지긴 하지만 스라소니에서 유독 두드러지는 편입니다. ‘음식이자 장난감’이 되어버린 먹잇감 입장에선 정말 죽을 맛일 거예요.
도망을 치려해도 코앞까지 달려오고, 그렇다고 막 잡힐만하면 놓아주고.... 이렇게 한참동안 먹잇감과 질주를 한 뒤 적당한 시점에 숨통을 끊고 먹어치우기 시작하죠. 시장이 반찬이라는 말뜻을 알아 최대한 뱃속을 비워두려는 책략일까요? 스라소니는 지형지물만 활용하면 최고높이 4.5m까지 훌쩍 뛰어오를 정도로 탁월한 신체 능력을 자랑합니다. 일각에서는 호랑이·표범이 사라지고, 이보다 훨씬 덩치가 작은 삵이 최고 포식자 노릇을 하는 한반도의 산하에 어쩌면 극소수일지언정 스라소니가 살아가고 있을 지 모른다는 의견도 제기합니다. 하지만 구체적인 발견·사례 보고가 없는 한 신빙성을 부여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어쩌다 휴전선을 훌쩍 넘어와 백두대간으로 접어들면 일대에 살아가는 산양·여우·멧돼지들은 바짝 긴장해야 할 거예요. 반달가슴곰과는 용호상박의 승부를 겨룰지도 모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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