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DT인] "배지·레진 등 바이오 의약품 소재 100% 국산화… 점프업 준비 끝났죠"

신하연 2024. 3. 26.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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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철 아미코젠 이사회의장 겸 최고전략책임자
국내 유전공학 1세대… 대학교때 접한후 40여년 한우물
"전자 산업 부품 만드는 삼성전자가 '국민기업'된 것처럼
아미코젠도 바이오 산업의 핵심 소재 기업 되는 것이 꿈"
신용철 아미코젠 이사회의장 겸 최고전략책임자(CSO).

"'점프업'을 위한 준비는 끝났습니다. 바이오 소재의 100% 국산화를 통해 3년 내로 꽃을 피우고, '국민기업'이 될 겁니다."

국내 유전공학 1세대로 꼽히는 신용철(64·사진) 아미코젠 이사회의장 겸 최고전략책임자(CSO)는 26일 바이오 핵심 소재인 배지와 레진의 국내 첫 전문 생산공장 가동을 앞두고 이같이 밝혔다.

지금은 바이오공학이나 생명공학이라는 이름으로 더 익숙한 유전공학은 카이스트(KAIST·한국과학기술원) 79학번인 그가 4학년이던 1982년에 국가 연구개발 프로그램에 편입되면서 국내에 본격 소개됐다. 신 의장 역시 이때 유전공학을 처음 접하게 됐다. 이후 1983년 '유전공학육성법'이 제정, 1985년 카이스트 부설 유전공학센터가 설립되는 등 육성 토대가 마련됐다. 유전공학은 기존의 돼지 췌장이 아닌 인간에게서 추출한 인슐린 유전자, 이른 바 '휴먼 인슐린'을 배양하는 데 성공한 보이어와 코헨의 연구 이후 유전자 재조합 기술이 세계적으로 주목받으면서 탄생한 학문이다.

시골에서 자라 어린 시절부터 '먹고 사는' 어려움을 체감했던 그는 종자를 개량해 식량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육종학자를 막연히 꿈꿔왔는데, 그야말로 새로운 세상이 열린 것이다. 신 의장은 "가만히 생각해보면 학생 때부터 사회가 저를 키워줬다"며 "나를 과학자로 길러준 국가에 늘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현재의 신 의장이 있기까지는 두 분의 은사가 있었다. 그는 "'농촌을 잘 살게 해보겠다'는 마음으로 농고를 지원하려고 했는데, '공부 잘하는데 농고에 진학하면 크기가 작아지니 인문계를 가라'고 추천해준 선생님이 계시다"면서 "또 가정형편이 어려웠는데 사립고등학교 이사장이 공부 잘한다고 장학금을 주면서 학교에 보내줬다. 덕분에 고등학교도 잘 마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신 의장은 카이스트 생물공학 석·박사 졸업 후 27세의 젊은 나이에 경상국립대학교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교수 생활 10년동안 논문 100여편을 썼고, 연구실에서 새벽 불을 밝혀가며 연구를 하다가 잠들어 아침에 등교한 학생들이 놀라는 일도 허다했다. 그는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가 '날이 새야 일하러 가는데 날이 왜 안새지'라고 했다는데 딱 제 마음이었다"며 "국가에 이바지하겠다는 마음으로 연구를 했고, 그게 또 즐거웠다"고 떠올렸다.

교수가 된지 10년째 되던 1997년,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국립대 교수도 창업할 수 있도록 한 특별법이 제정됐다. 구직에 허덕이는 학생들을 본 신 의장은 학생들 취업을 위해서라도 직접 창업에 나서야겠다는 생각으로 2000년 바이오 기업 아미코젠을 설립하게 됐다. 2013년 기술특례를 통해 코스닥 시장에 상장한 아미코젠은 비피도, 로피바이오, 스킨메드, 비욘드셀, 퓨리오젠 등 지난해말 기준 계열회사 24개를 거느린 기업으로 성장했다. 제약용 효소와 신소재 개발·생산뿐 아니라 사료첨가제 및 동물약품, 헬스케어(화장품·건강기능식품) 생산판매 등 생명공학 기술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아미코젠이 주력하고 있는 핵심 사업은 자체 개발한 유전자 진화기술을 바탕으로 한 바이오의약품 핵심 소재(크로마토그래피 레진, 세포배양 배지) 생산이다. 바이오의약품을 만들기 위해선 살아있는 세포의 수를 늘리고, 여기서 고순도 항체 단백질을 분리해야 한다. 세포를 배양하기 위해 먹이 역할을 하는 게 배지이고, 배양된 세포로부터 의약품 제조에 사용되는 목적 단백질만 분리 정제하는 물질이 레진이다. 배지와 레진은 바이오의약품 원가의 40% 가량을 차지하지만 현재 100% 해외에서 수입하고 있다. 국내 바이오 시장의 배제와 레진 수요 규모는 7000억~8000억원 수준으로, 2030년까지 1조4000억원 규모로 성장이 전망된다. 신 의장은 "소재 시장 규모가 전체 산업의 1~3%에 불과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국내 바이오산업 전체 규모는 (2030년까지) 140조원이 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100% 수입 중인 핵심 소재를 국산화하는 데 성공하면 제조원가를 낮추는 것은 물론 공급망 이슈에서 벗어나 산업 독립이 가능해진다. 이는 국내 바이오 시장의 경쟁력 강화와 지속가능한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

신 의장은 "바이오가 한국의 미래 전략산업 중 하나인데, 어느 산업이든 자체적인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시장을 확보하지 못하면 항상 의존적일 수밖에 없다"며 "자동차 산업의 소재가 되는 제철을 생산하는 포스코와 전자 산업의 부품이 되는 반도체를 만드는 삼성전자가 '국민기업'이 된 것처럼 아미코젠이 바이오 산업의 핵심 소재 기업이 되는 것이 꿈"이라고 밝혔다.

시장 플레이어로만 24년 이상 국내 바이오 시장을 지켜본 신 의장은 국내 시장의 성장성을 높게 평가했다. 그는 "미국은 우리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임상 설계를 해왔고, 데이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매년 어마어마한 신약을 개발해내는 데 반해 한국은 기초과학과 경험이 부족했다"며 "다만 시장이 성숙해지고 있는 만큼 앞으로 5~10년새 국내에서도 블록버스터급 신약들이 많이 나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특히 바이오시밀러 분야의 경우 전 세계 점유율의 10~20% 정도를 한국이 차지하고 있다"면서 "배지나 레진의 상용화 이후 바이오시밀러 분야에도 꽃이 피게 될 것"으로 덧붙였다.

배지와 레진의 국내 생산은 이제 초읽기에 나선 상황이다. 현재 인천 송도의 바이오 클러스터 내 배지 생산을 위한 공장 준공 완료 후 준공 승인을 앞두고 있고, 여수 국가산업단지에 레진 생산 공장이 올해 2분기 준공 완료를 목표로 하고 있다. 학자로 20여년 이상 유전공학만 연구해온 그가 회사를 운영하면서 부침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신 의장은 "돌이켜 보면 '바이오 소재 국산화'라는 목표를 향해 쉼 없이 질주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기술 성장을 위한 투자에만 올인했는데, 경영을 더 잘 관리하지 못한 부분은 아쉽다"고 말했다.

지난해 연결기준 연간 영업이익은 20억5600만원으로, 전년(48억9500억원 손실) 대비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배지와 레진 사업도 내년까지 흑자 달성이 목표다. 또 자체 생산한 소재를 이용해 바이오의약·바이오시밀러 자회사에서도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게 신 의장의 설명이다.

신 의장은 지난해 대표이사직을 내려놓고 이사회이장 겸 최고전략책임자(CSO)로 한발짝 물러섰다. 그는 "최고전략책임자로서 기술개발과 사업개발이라는 두 가지 큰 틀을 큼직큼직하게 보는 새로운 뷰를 가지게 됐는데, 즐겁게 수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목표는 2030년까지 매출 1조2000억원을 달성, 최종적으로 10조원 이상 가치를 지닌 회사로 아미코젠을 성장시키는 것이다.

경남 진주 본사 근처에서 한 달에 한 두번씩 초·중·고교생들을 모아놓고 과학과 경제 강의를 하고, 뛰어난 과학자들이 성장할 수 있게끔 액셀러레이터 역할을 하는 것도 소박한 목표다. 그는 "농사도 수확 전에 씨부터 뿌리는 것처럼 기회가 된다면 앞으로 과학 분야의 스타트업이나 벤처들을 지원하는 역할을 하면서 살고 싶다"며 "예전에 육종학자를 꿈꿨듯 식물을 기르고 기술을 키우면서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일하다 죽고 싶다"며 웃었다.

신하연기자 summer@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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