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세기만에 돌아온 ‘백제의 미소’ 만난다

김슬기 기자(sblake@mk.co.kr) 2024. 3. 26.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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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암미술관 불교미술 기획전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
미·독·일 등서 걸작 92점 모아
‘금동관음보살입상’ 등 공개
“여성은 불교의 열렬한 후원자”
금동 관음보살 입상
입꼬리를 올린 미소는 한 번 보면 잊을 수가 없다. 머리에는 아미타여래의 화불을 모신 삼면 보관을 쓰고 왼손에 정병을 들었다. 계란형 얼굴의 코는 오똑하고 인중은 짧다. 높이 26.7㎝ 크기로 7세기 중반 백제에서 만들어진 걸작 ‘금동 관음보살 입상’이 1929년 대구에서 전시된 지 95년만에 일반에 공개된다.

1907년 부여 규암면 절터에서 발견됐지만, 일본인 수집가 이치다 지로가 사들여 일본으로 반출된 이 불상은 2018년에야 행방이 알려졌다. 당시 국내 연구자들이 42억원의 감정가를 도출해 국립중앙박물관이 환수를 시도했지만 소장자가 150억원을 제시해 협상은 불발됐다. 호암미술관은 “전시 준비 초기부터 이 불상을 빌려오려고 소장자 측과 접촉했다가 막판에 성사됐다”고 밝혔다.

1세기 만에 돌아온 ‘백제의 미소’를 만날 수 있는 전시가 열린다. 호암미술관은 동아시아 불교미술을 조망하는 전시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을 6월 16일까지 연다. 2023년 재개관 후 첫 고미술 기획전으로 한국, 중국, 일본 3국의 불교미술에 담긴 여성들의 번뇌와 염원, 공헌을 세계 최초로 본격 조망한다. 전시를 담당한 이승혜 큐레이터는 “금빛찬란한 불교미술 속에서 금빛 너머 수많은 여성들이 있었다는걸 보여주고 싶었다. 여성은 불교를 지탱한 옹호자이자 불교미술의 후원자와 제작자로서 기여해왔다”라고 설명했다.

2점 중 1점 꼴로 ‘최초’가 붙는 초대형 전시다. 전세계 27개 컬렉션에서 모은 불화, 불상, 사경과 나전경함, 자수, 도자기 등 다양한 장르의 귀중한 불교미술 걸작품 92건을 한자리에 모았다. ‘이건희 회장 기증품’ 9건과 국보 1건, 보물 10건 등도 포함됐고, 전시 작품 중에 ‘금동 관음보살 입상’ ‘감지금니 묘법연화경 권1-7’ ‘아미타여래삼존도’ ‘수월관음보살도’ 등 9건을 국내에서 일반에 처음 공개한다. 아울러 ‘석가여래삼존도’(미국 메트로폴리탄미술관) 등 47건의 작품은 한국에서 처음 전시한다.

중국 17세기 ‘백자 관음보살 입상’이 전시 되고 있다. [호암미술관]
‘다시 나타나는 여성’을 주제로 한 1층 전시장 1부 1섹션 초입에는 송광사 ‘팔상도’가 걸렸다. 8점 중 4점만 걸린 건 여성이 등장하는 특별한 그림이어서다. 보스턴미술관에서 온 중국 원나라 불화 ‘이모육불도’는 석가모니의 이모이자 최초의 여성 출가자가 된 대애도(大愛道)가 그려졌다.

해외로 흩어진 불전도(석가모니 일생의 주요 장면을 그린 그림) 세트의 일부인 두 작품도 세계 최초로 한 자리에서 전시된다. 15세기 조선의 작품으로 마야부인이 그려진 ‘석가탄생도’(일본 혼가쿠지)와 석가모니의 부인인 구이(俱夷)가 등장하는 ‘석가출가도’(쾰른동아시아미술관)다.

원래는 남성이지만 자유로운 육체를 가질 수 있었던 관음보살의 변천을 보는 재미도 있다. 성모마리아상을 연상케 하는 중국 17세기 ‘백자 관음보살 입상’은 머리를 두건으로 가린 여성형이고, 조명 아래 영롱하게 빛나는 7세기 백제의 ‘관음보살 입상’은 젊은 청년의 육체다. ‘화엄경’에 나오는 선재동자가 보타락가산에 머무르고 있는 관음보살을 만나뵙는 장면을 그린 ‘수월관음보살도’는 고려시대 이래 널리 유행했다. 보물인 고려 14세기 ‘수월관음보살도’는 5월 7일부터 6월 16일까지만 전시된다.

한·중·일의 만남이 다채롭게 펼쳐지는 1부 3섹션 ‘여신들의 세계’에는 고려시대 승리의 여신을 표현한 ‘은제 마리지천 좌상’과 일본 14세기 귀부인 모습의 나찰녀를 그린 ‘석가여래오존십나찰녀도’를 나란히 볼 수 있다. 중국 17세기 모성의 여신인 귀자모(鬼子母)를 그린 ‘게발도’가 메트로폴리탄미술관에서 첫 한국 나들이를 한다. 1만명의 아이를 잡아먹은 귀자모의 악행을 어머니들이 부처에게 호소하자 부처가 여신을 교화시킨 이야기가 담겼다.

숭유억불(崇儒抑佛) 정책을 펼쳤음에도 조선의 불교미술은 전성기를 구가했다. 2층에서 이어지는 2부 전시에서는 불상·불화를 조성하며 과정을 적은 발원문에 여성들의 이름이 빼곡한걸 볼 수 있다. 처음으로 한자리에서 선보이는 문정왕후(1501~1565)가 발원한 ‘영산회도’와 ‘석가 여래삼존도’, ‘약사여래삼존도’는 16세기 금선묘(金線描) 불화를 통해 한 시대의 불화 양식을 선도한 독보적인 후원자로서 왕실 여성의 영향력을 살필 수 있다. 이 큐레이터는 “왕실 여성의 불상 후원은 개인 기복의 목적만이 아닌 공적인 측면도 있었다”라고 말했다.

이 방대한 전시에서도 여성이 직접 창작한 작품은 마지막 전시장에 일부 등장한다. 일본의 중요문화재로 한국에 온 13~14세기 ‘자수 아미타여래삼존내영도’는 부정하다고 여겨진 여성의 머리카락을 일부 재료로 삼기도 했다.

일본 혼가쿠지에서 한국에 온 ‘석가탄생도’ [호암미술관]
감지금니 묘법연화경 권1-7 [호암미술관]
메트로폴리탄미술관에서 온 ‘게발도’ [호암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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