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 ‘공천 혁명’…권리당원 뜨면 비명횡사 일어났다

임재우 기자 2024. 3. 26.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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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BAR_임재우의 여의도 스밍
김동아 더불어민주당 서울 서대문갑 후보(왼쪽)와 조수진 전 민주당 강북을 후보(오른쪽). 김동아 후보 페이스북,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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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이 바야흐로 ‘권리당원’의 시대를 맞이한 듯합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4·10 총선 공천에 대한 평가는 민주당 안에서도 계파와 처지에 따라 갈리지만, 권리당원의 위력이 입증된 공천이었다는 점에는 대부분 동의합니다. ‘비명횡사·친명횡재’라고 비판하든 ‘혁신 공천·공천 혁명’이라고 상찬하든, 이번 공천에서 권리당원들이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했다는 점을 부인하기는 힘들기 때문입니다.

‘서울 강북을·서대문갑’만 예외…120만 권리당원 투표 끌어들여

권리당원이 민주당 공천의 향방을 가른 결정적 두 장면이 있습니다. 서울 강북을과 서울 서대문갑 경선입니다. 이 두 지역구는 모두 전국 권리당원 70%와 지역구 권리당원(혹은 지역구 유권자) 30%의 비율로 전략경선을 치러 후보를 결정했습니다. 120여만명에 이르는 권리당원이 14만 인구의 특정 지역구의 국회의원 후보를 고르는 특이한 방식을 택한 셈입니다.

민주당의 지역구 경선 투표는 대부분 두 가지 방식으로 이뤄졌습니다.

가장 일반적인 방식은 지역구 당원과 지역구 유권자의 의사를 5 대 5로 반영하는 ‘국민참여경선’이었습니다. 민주당의 특별당규인 ‘22대 국회의원 후보 선출 규정’은 “경선 방법은 국민참여경선을 원칙으로 실시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다만 정치 신인들이 참여한 일부 전략 지역구는 해당 지역구 일반 국민들의 의사로만 후보를 선출하는 ‘국민경선’ 방식을 택했습니다.

서울 강북을·서대문갑 두 지역구는 ‘유이’한 예외입니다. 전국 권리당원을 유권자로 하는 투표는 보통은 당의 대선후보나 당대표를 뽑을 때 쓰입니다. 전당원의 의사를 묻는 일인 만큼, 공당의 가장 최종적이고 권위 있는 의사결정 방식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비용이 많이 들고, 선거 관리도 쉽지 않습니다. 실제로 서울 강북을·서대문갑의 경우 모바일 투표를 진행하다가 서버가 다운되거나, 투표 문자가 뒤늦게 전달되는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서둘러 전당원 투표를 진행하다 보니 생긴 일들입니다.

그래서 지역구 경선에 ‘전국 권리당원 투표’를 끌어들인 지도부의 기준에 의구심이 적지 않았습니다. 지역구 주민의 의사가 중요한 국민참여경선과 달리, 전국 권리당원 투표는 지역구 경쟁력이나 인지도가 부족하더라도 ‘친명 인증’으로 한순간에 특정 후보가 부상하기 좋은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달 22일 공천관리위원회의 평가 재심 기각 관련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지역 연고 없어도 ‘친명 인증’ 하면 권리당원 등 업고 경선 승리

실제로 두 지역구에서는 지역 연고가 없는 후보가 ‘친명 인증’을 받은 뒤 경선에서 승리했습니다.

서울 강북을만 놓고 봐도 그렇습니다. ‘목발 경품’ 발언으로 정봉주 전 의원의 공천이 취소된 뒤, 이 곳엔 지역 연고는 없지만 ‘친명’을 자처하는 후보들이 뛰어들었습니다. 그중에서 당 지도부가 박용진 의원과 전략 경선을 할 상대로 고른 인물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출신 조수진 변호사였습니다.

전략경선이 확정된 직후 조 변호사는 곧바로 ‘친명 유튜브’를 섭렵하기 시작합니다. 조 변호사는 하루 동안에만 강성범 티브이(TV)·박시영 티브이(TV)·새날에 연이어 출연했습니다. ‘알릴레오 진행자’로 이름이 알려지긴 했지만 정치적으로는 무명에 가까웠던 조 변호사는 이 방송들을 통해 ‘박용진 대항마’로 부상했고, 투표에 참여한 전국 권리당원 중 69.93%의 지지를 받아(박용진 의원 23.15%) 경선에서 승리했습니다. 서울 강북을 후보로 지원한 지 불과 사나흘 만의 일입니다.

서울 강북을에 앞서 ‘전국 권리당원 70%·지역구 유권자 30%’의 투표로 경선을 치른 서울 서대문갑의 패턴 역시 유사합니다. 서대문갑이 청년들끼리 경쟁하는 ‘청년 전략 특구’로 지정되자, 경기 평택갑 출마를 준비 중이던 김동아 변호사가 갑자기 이 곳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정치 신인인 김 변호사는 이재명 대표 측근(정진상 전 당대표 정무조정실장)의 변호를 맡은 ‘대장동 변호사’라는 점을 경선 기간 내내 강조했습니다.

그럼에도 김동아 후보는 공개 오디션에서 최종 경선 후보 3인에 들지 못해 탈락했습니다. 그런데 순위 안에 들었던 성치훈 후보가 안희정 전 충남지사 성폭력 사건 관련 2차 가해 의혹이 불거지면서 후보 자격을 잃고, 그 대신 김동아 후보가 당 지도부의 결정으로 ‘부활’하게 됐습니다. 이는 ‘친명횡재’라는 비판을 샀지만, 지지자들에게는 결정적인 ‘친명’ 인증 계기가 되었습니다. 마침 이재명 대표의 측근으로 꼽히는 김지호 민주당 부대변인은 투표 기간 중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김동아 후보 지지 글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서울 서대문갑 투표에는 서대문갑 인구수(14만여명)를 넘는 30여만명이 참여했고, 이중 절반 이상이 김 후보에게 표를 던졌다고 합니다.

7일 더불어민주당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서대문갑 청년 후보자 공개 심사에서 참석자들이 공정경쟁 실천 서약식을 하고 있다. 민주당은 서대문갑을 우상호 의원 불출마 선언 뒤 ‘청년 전략특구’로 지정했다. 연합뉴스

“축구·농구·씨름선수 모아놓고, 농구경기 하면 공정한가”

어찌 됐건 권리당원들 다수의 선택이었으니 공정한 경쟁에 따른 결과라고 볼 수 있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그러나 서대문갑 경선을 가까이에서 지켜봤던 청년 정치인 ㄱ씨는 “전국 권리당원 투표 방식 자체는 선거 전략상 흥행을 위해 택할 수도 있다고 본다”면서도 “올림픽 경기를 연다면서 축구 선수와 씨름 선수, 농구 선수를 일단 모아놨는데, 국제올림픽위원회와 가까운 농구선수가 유리한 농구 경기를 치르겠다고 선언한다면 그게 공정한 게임인가”라고 반문했습니다. 규칙 그 자체보다는, 규칙을 정한 방식에 문제가 있었다는 겁니다.

당 지도부는 서울 강북을에서 지역구 내 인지도가 높지만 열성 권리당원 사이에 ‘비토’ 정서가 강한 비명계 박용진 의원에게 불리한 전국 권리당원 투표 방식을 선택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서대문갑에서는 ‘대장동 변호사’ 김동아 후보가 지원한 뒤에 친명계 후보에게 유리한 전국 권리당원 투표 방식이 결정됐습니다. “게임에 누가 참여하는지 아는 상황에서 지도부가 특정인에게 유·불리한 규칙을 선택한다면, 지도부나 전략공관위가 설사 누군가를 유리하게 할 의도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경선은 요식행위’라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ㄱ씨)는 겁니다.

‘당원 민주주의’라는 깃발

결과적으로 권리당원을 등에 업고 순식간에 서울 강북을 후보로 공천된 조수진 변호사는 불과 사흘 만에 자진해서 사퇴했습니다. 속전속결로 치러진 공천 과정에서 제대로 검증되지 않았던 ‘다수 성범죄 가해자 일방 변호’ 이력을 둘러싼 논란이 걷잡을 수 없이 쏟아졌기 때문입니다. ‘공천 혁명’이라는 이재명 대표의 말이 무색해지는 순간이었지만, 이 대표는 조 변호사의 빈 자리를 자신과 가까운 한민수 대변인으로 채웠습니다.

‘당원이 당의 주인’이라는 ‘당원 민주주의’는 그럴듯한 깃발입니다. 하지만 특정인의 이해관계에 부합하거나, ‘주류 내리꽂기’를 위한 요식절차라는 의구심을 산다면 깃발의 빛이 바랠 수밖에 없습니다. 정치에서는 실제로 공정한 것만큼이나 공정해 보이는 ‘외관’을 갖추는 것 역시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지역구민의 대표를 뽑는 지역구 국회의원 후보를 뽑으면서, 전국 권리당원 투표 방식으로 지역구민을 사실상 소외시키는 게 맞는지도 의문입니다. 자진 하차한 조수진 변호사를 대신한 한민수 후보는 선거인 명부 작성일을 기준으로 주소지가 서울 송파구였기 때문에, 정작 자신의 출마지인 서울 강북을에서 투표할 수 없습니다. 기자 출신인 한 대변인은 지난 2016년 칼럼에서 당시 민주당과 새누리당의 ‘졸속 공천’을 두고 “정치권이 지역주민을 ‘장기판의 졸(卒)’로 여기는 게 아니라면 이럴 순 없다”고 따끔하게 비판한 바 있습니다.

임재우 기자 abbad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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