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 이른바 '얼굴천재'에 사람은 늘 속을 준비가 돼 있다?

심영구 기자 2024. 3. 26.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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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자엔 양자(楊子, 본명 楊朱)와 관련한 스케치 몇 편이 나옵니다.

맹자(孟子)가 "천하를 위해 자기 정강이 털 한 올도 뽑지 않겠다는 이기적 인간"이라며 맹비난을 퍼부었던 바로 그 사람입니다.

어쨌든 한비자의 기록에 따르면 양자는 천하를 위한다는 명분이 있더라도 내 정강이 털을 뽑으려고 해선 안 된다, 누구도 사람에게 천하를 빌미로 희생을 강요해선 안 된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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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자-정치적 인간의 우화 ③] "다들 왜 나의 내면을 몰라줄까요" (글: 양선희 소설가)
#1
양주(楊朱)의 동생 양포가 흰옷을 입고 외출했다. 비가 내리자 흰옷을 벗고, 검정옷으로 바꿔 입고 돌아왔더니 개가 알아보지 못하고 짖어댔다.
양포는 화가 나서 때리려고 했는데 양주가 말했다.
"때리지 말게. 자네라도 그러했을 것이야. 자네 개가 흰색으로 나갔다가 검정색으로 돌아오면 자네도 어찌 괴이쩍다 생각하지 않겠는가?"
#2
양자(楊子)가 송나라를 지날 때 동쪽에 있는 숙소로 갔다. 여기엔 두 명의 하녀가 있었는데 못생긴 여자가 직위가 높았고, 예쁜 여자가 낮았다. 양자가 연유를 물었더니 숙소의 주인 남자가 대답했다.
"예쁜 아이는 스스로 예쁘다고 하는데 저는 예쁜지 잘 모르겠습니다. 못생긴 아이는 스스로 못생겼다 하는데 저는 못생겼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양자가 제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눈과 마음이 참으로 현명하다. 현명하게 행동하면서도 스스로 현명하다며 우쭐한 마음을 버린다면 어딜 간들 아름답다 하지 않겠는가?"

한비자엔 양자(楊子, 본명 楊朱)와 관련한 스케치 몇 편이 나옵니다. 맹자(孟子)가 "천하를 위해 자기 정강이 털 한 올도 뽑지 않겠다는 이기적 인간"이라며 맹비난을 퍼부었던 바로 그 사람입니다. 양자의 책은 남아있지 않아 그의 사상을 전부 알기는 어렵지만, 한비자에 남아있는 그의 흔적을 쫓아보건대 그는 선진시대에 이미 '천부인권설'을 주장했던 자유인이었습니다. 물론, 이건 내 주장이 아닙니다. 많은 학자가 그렇게 추정하고 있지요. 잠깐 곁길로 새는 말 한마디만 하자면, 선진시대 사상은 현대보다 더 현대적이고 자유로웠습니다. 이 자유로운 사상이 점차 고루해졌다고 보는 게 맞을 겁니다.

어쨌든 한비자의 기록에 따르면 양자는 천하를 위한다는 명분이 있더라도 내 정강이 털을 뽑으려고 해선 안 된다, 누구도 사람에게 천하를 빌미로 희생을 강요해선 안 된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인간에겐 자기 인권을 지킬 권리가 있다는 의미죠.

위의 스케치는 사람이 사람을 겉만 보고 판단하는 본성에 대해 말합니다. '사람들이 왜 내 진심을, 나의 내면을 몰라주느냐'고 한탄하지 마십시오. 사람이란 남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타인을 위해 심사숙고하도록 프로그램화돼 있지 않습니다. 대략 겉모습을 보고 판단합니다. 옷만 갈아입었는데도 자기가 키우는 개조차도 그를 알아보지 못합니다. 겉모습은 그렇게 모두의 의식을 지배합니다.

둘째 스케치에서 양자는 주인이 외모에 치우치지 않고 못생긴 여자 하인을 더 높은 계급에 둔 것에 감탄을 늘어놓습니다. 인간이 외모와 겉치레에 넘어가지 않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알기에 이런 현장을 보면 감탄하게 되는 것입니다.

한비자 스케치 중 이런 대목도 있습니다.
#3
제나라 전성자가 연나라로 달아났을 때의 이야기다.
그의 통관에 필요한 부절을 짊어지고 따랐던 시종 치이자피는 국경 지역 망읍에 도착하자 이렇게 말했다.
"어르신은 저 고택의 뱀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으십니까? 연못이 말라 뱀이 이주하려 하였답니다. 작은 뱀이 큰 뱀에게 이렇게 말했답니다. '그대가 앞서고 내가 뒤따르면 사람들은 뱀이 지나가는구나하며 반드시 그대를 죽일 것이네. 그런데 우리가 서로 입을 물고 그대가 나를 짊어지고 간다면 사람들은 나를 신군(神君)이라 여길 것일세.' 이에 서로 입으로 물고 큰 뱀이 작은 뱀을 등에 업고 큰길을 건넜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이를 피하며 '신군이다'고 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이렇게 제안했다.
"지금 어르신은 외모가 출중하고 저는 추합니다. 이제 어르신을 저의 중요한 손님인 듯 위장해 모시고 다니면 사람들은 저를 작은 나라의 군주 정도로 생각할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어르신이 제 시종이 된다면 저는 아주 큰 나라의 귀족 정도로 보일 것입니다. 어르신께서 제 시종으로 위장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이 말을 듣고 전성자는 차이자피가 짊어지고 있던 전을 받아 짊어지고 그를 수행하여 숙소에 도착했다. 그러자 숙소의 주인은 크게 공경하여 대접하면서 술과 고기를 바쳤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심영구 기자 so5what@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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