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 대박 비결은 100억 달러 들어간 무료 소프트웨어 ‘CUDA’
필자가 엔비디아라는 회사를 처음 만난 것은 1998년 즈음 서울 용산전자상가에서였다. 당시 컴퓨터 조립의 메카였던 용산에서는 수많은 종류의 컴퓨터 부품이 판매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게임을 즐기고자 새 컴퓨터를 장만하려는 마니아 사이에서 최고 인기 부품은 단연 그래픽카드였다. 컴퓨터 화면에서 처리되는 게임의 속도와 화질을 높일 수 있기에 고성능 그래픽카드가 큰 인기였다. 여기서 그래픽카드의 성능을 결정하는 핵심 부품이 바로 그래픽카드 칩셋이었다. 당시 대표적인 칩셋 브랜드로 ATi(AMD에 인수), 쳉(Tseng), 매트록스(Matrox), S3 등이 있었다. 1990년대 후반에는 3D(3차원) 가속 처리 성능을 최적화한 3dfx 인터랙티브(3dfx)와 엔비디아가 등장했다. 2000년대 들어 엔비디아의 그래픽카드 칩셋이 큰 인기를 얻으며 성장 가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섣부른 B2C 사업 확대로 망한 3dfx
엔비디아는 그래픽카드 칩셋으로 사업을 시작했고 당시 최대 경쟁사는 3dfx였다. 3dfx는 1990년대 후반 업계 선두 주자로, 엔디비아에는 막강한 경쟁자였다. 그래픽카드 제조사에 부품을 공급하며 성장한 3dfx는 그래픽카드를 직접 생산, 판매하기 시작했다. 그래픽카드 제조사에 부품을 공급하는 B2B(기업 간 거래)에서 자체 그래픽카드를 판매하는 B2C(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로 사업을 확대한 것이다. 그런데 3dfx의 이런 전략이 엔비디아로선 뜻밖의 호재가 됐다. 일단 3dfx의 그래픽카드가 경쟁 상품보다 비싼 데다, 소비자 입장에선 더 매력적인 그래픽카드 제품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 틈을 타 엔비디아는 철저히 B2B에 집중해 여러 그래픽카드 제조사에 자사 칩셋을 공급했다. 시장점유율을 확대해 몸집을 키운 엔비디아는 2000년 3dfx를 인수했다. 이때부터 엔비디아는 개인용 컴퓨터(PC) 게임 시장에서 전문가용 그래픽, 모바일 프로세싱, 궁극적으로 서버용 그래픽처리장치(GPU)로 사업 영역을 점차 확장했다.
2010년대 들어 인공지능(AI) 연구와 딥러닝 개발에서 엔비디아 GPU는 필수 요소가 됐다. CUDA(Compute Unified Device Architecture·쿠다)라는 개발 툴 덕분이다. 100억 달러(약 13조4000억 원) 이상을 투자해 2006년 출시한 CUDA는 엔비디아의 지금을 있게 한 기술이다. 당시 엔비디아는 이미 GPU를 중심으로 시장을 탄탄하게 확보한 상태였다. 하지만 경영진은 기업·개인 소비자로 하여금 꾸준히 엔비디아를 찾게 하려면 자체 상품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봤다.
이에 따라 등장한 CUDA는 AI, 자율주행, 데이터 사이언스, 로봇 등 대량의 데이터를 처리해야 하는 개발자를 겨냥해 나온 무료 소프트웨어다. 컴퓨팅 자원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데 CUDA는 점차 필수재가 됐다. 엔비디아 GPU에 기반한 CUDA가 많이 쓰일수록 GPU 판매량도 늘어났다. 그 결과 엔비디아는 GPU 시장의 80%를 장악하게 됐다. 무료 소프트웨어를 중심으로 독점적 상품 생태계를 갖춘 덕에 엔비디아는 인텔, AMD 등 경쟁자를 막을 진입 장벽을 만들 수 있었다.
애플·MS도 '독자 생태계 구축' 닮은꼴
이처럼 독자 생태계는 빅테크 기업의 성장과 경쟁력 확보에서 핵심이다. 비근한 사례가 스마트폰의 급성장이다. 오늘날 스마트폰이 전 세계 디지털 세계의 중심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기기 자체뿐 아니라, 각종 애플리케이션(앱)이 유통되는 스토어를 중심으로 생태계가 정착됐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스마트폰 시장 최강자 애플의 생태계 구축은 엔비디아와 닮아 있다. 애플은 2008년 전 세계 개발자가 손쉽게 아이폰용 앱을 개발할 수 있도록 SDK(Software Development Kit)라는 개발 도구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또한 앱스토어를 통해 소비자가 다양한 앱을 접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했다. 마이크로소프트(MS)가 오픈소스 플랫폼 '깃허브(GitHub)'를 75억 달러(약 10조 원)에 인수하고, 2019년부터 오픈AI에 3번에 걸쳐 100억 달러를 투자한 것도 따지고 보면 비슷한 전략이다. 더 많은 개발자와 기업으로 하여금 MS의 클라우드 '애저(Azure)'와 각종 개발 툴을 쓰도록 유도하는 것이다.김지현 테크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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