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교수들 ‘줄사표’, 전공의들도 ‘요지부동’… 출구 없는 의·정 충돌 [의대 증원 갈등]

이정우 2024. 3. 26. 06:1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고대 의대 총회 열고 전원 일괄사직
울산대도 “교수 번아웃” 433명 동참
정부 “면허정지 유연처분” 달래기에도
전공의들 “건설적 협의체는 쇼” 냉랭
총리실 대화채널 추진… 실효성 ‘글쎄’
정부 “전공의 복귀 방해 직장내 괴롭힘”
정부가 의료계와의 대화를 제의하고 양보했지만 의사들의 집단사직을 막지는 못했다. 전국 의대 교수들은 예고한 대로 25일 사직서를 냈고, 전공의들은 정부의 면허정지 유연 처리 방침에도 싸늘한 반응을 보였다. 의료계는 2000명 증원을 철회하지 않으면 논의가 무의미하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정부도 증원 규모에 양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내비치면서 대화 국면은 하루 만에 다시 교착 상태로 전환됐다.
정부의 의대 정원 배분에 반발한 전국 의대 교수들이 집단 사직을 시작한 25일 대구의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뉴시스
◆의대 교수들 “환자 진료하고 떠난다”

의료계에 따르면 전국 40개 의대 교수 상당수가 사직서 제출을 시작했거나, 사직하기로 결의했다.

이날 오전 고려대 의대 교수들이 총회를 열고 전원 사직서를 낸 데 이어 서울아산병원·울산대병원·강릉아산병원을 수련병원으로 둔 울산대 의대 교수 767명 중 433명도 사직서를 냈다.

울산대 의대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는 이날 “2000명 의대 증원으로 초래된 지난 한 달간의 의료 파행으로 중환자와 응급환자 진료를 담당하는 교수들의 정신적·육체적 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했다. 비대위는 “파국을 막지 못한 책임을 통감하며 교수직을 포기하고, 책임을 맡은 환자 진료를 마친 후 수련병원과 소속 대학을 떠날 것”이라며 증원 철회와 진정성 있는 대화의 장을 마련할 것을 정부에 촉구했다.
“환자들은 어쩌란 말입니까” 25일 오전 서울 고려대학교 안암병원에서 열린 ‘고려대학교 의료원 교수 총회’에서 교수들이 사직서를 제출하고 있다. 전공의 집단이탈 사태 이후 병원을 지켜온 교수들마저 병원을 떠나면 환자 피해가 확산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대 의대 교수들도 사직서 제출을 시작했다. 방재승 서울대 의대 교수협의회 비대위원장은 이날 “최근 투표에 응한 교수 900여분 중 절반 이상이 사직서를 제출하자고 답했다”며 “상당히 많은 분이 제출한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순천향대 의대는 교수 233명 중 사직서를 낸 93명 외에 추가 사직이 이어지고 있고, 조선대 의대 교수 10여명도 사직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화여대, 한양대, 연세대, 충북대, 건양대, 경상국립대 등 전국 각지 의대에서 교수들이 잇따라 사직서를 내고 있다. 대학이나 병원에 일괄적으로 사직서를 제출하는 교수가 대부분이고 개인적으로 사직서를 낸 교수들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의 대화 제의에도 의대 교수들의 ‘사직 러시’가 이어지는 건 2000명 증원 철회 요구에 대한 정부 입장이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날 사직서를 제출한 한 대학병원 교수는 “2000명 규모 조정에 대한 정부 언급이 없기 때문에 전과 달라진 것은 없다”며 “대화를 하려는 건지 말장난만 하려는 건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정부의 의대 정원 배분에 반발한 전국 의대 교수들이 집단 사직을 시작한 25일 서울 시내 대학 병원에서 의료진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뉴스1
병원을 떠난 전공의 반응도 냉랭하다. 전날 정부의 ‘건설적 협의체 구성’은 ‘보여주기식 쇼’라는 것이다. 대전성모병원 사직 전공의 류옥하다씨는 “윤석열 대통령은 ‘2000명은 필수이며 타협은 안 된다’고 말했는데, 이에 대한 설명 없이 ‘대화하자’는 것은 진의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정부가 면허정지에 대해 유연한 처분을 검토하는 것에 대해서도 “법적으로 옳고 당당하다면 즉시 면허정지 처분을 내려 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의대 교수들이 전공의 대신 정부와 협상에 나선 것과 관련해서 그는 “어느 전공의도 교수협의회에 중재를 요청하거나 권한을 위임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비대위원장은 전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물음표) 하나만 남겼다. 뜬금없는 제안이라는 의미를 담은 것으로 보인다.
김창수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 회장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대전협과 계속 소통하고 있고, 전의교협 결정과 크게 충돌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다만 “이후 협의하는 과정은 대전협이 주축이 돼야 한다”고 했다.
복지부 장관 “의료계와 대화 환영”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가운데)이 25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조 장관은 이날 “의료계와 대화를 환영한다”고 밝혔지만, 전국 의대 교수들은 중대본 회의 직후 “의대 증원 철회 없이는 사태 해결이 불가능하다”며 예정대로 집단 사직에 나서고 있다. 세종=연합뉴스
◆여권 “새로운 시작점” 평가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날 한덕수 국무총리와 용산 대통령실에서 주례회동을 갖고 의료 현장 이탈 전공의 면허정지 행정처분 방안 등 의료 개혁에 대해 논의했다. 윤 대통령이 전날 ‘유연한 처리’와 ‘의료계와의 대화 협의체 구성’을 주문함에 따라 수일 내 총리실 주도의 협의체가 구성될 예정이다.

윤 대통령은 이날 한 총리에게 “의료계를 비롯한 사회 각계와 더욱 긴밀히 소통해 달라”고 주문했다고 김수경 대통령실 대변인이 전했다.

윤 대통령의 메시지가 짧게 나온 것은 정부의 대화 제의를 거절하며 반발하는 의료계를 더 이상 자극하지 않고 정부 채널을 가동하기 위한 차원으로 보인다. 정부가 의대 2000명 증원 방침을 고수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전처럼 개혁 당위성을 강조하며 규탄하기보다는 대화 제의 입장을 이어 가려는 취지로 해석된다.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은 정부와 의료계 사이에 대화의 가능성이 생긴 것을 두고 “새로운 시작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 위원장은 이날 중앙선거대책위원회 현장 회의에서 “이제 대화의 물꼬가 트인 것이고 국민의 건강이라는 중요한 문제를 두고 국민이 걱정하지 않도록 정부가 정책을 잘 추진해 줄 거라 생각한다”며 “국민의힘도 중재와 대화의 장을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의대 증원 추진에 반발해 전국 의대 교수들이 집단 사직한 25일 광주 동구 조선대학교 병원이 한적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뉴스1
그럼에도 의사 측이 대화의 의지를 보이고 있지 않아 협의체는 형식적 구성에 그칠 가능성이 있다.

한편 고용노동부는 이날 보도설명자료를 내고 전공의들이 집단행동에 동참하지 않는 다른 전공의들의 현장 복귀·업무 수행을 방해하는 것은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경우 전공의들은 각 병원 관할 지방고용노동관서 및 노동포털에 신고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정우·이지민·조희연·이현미·박지원 기자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