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력·AS 무장… 중국 가전도 알·테·쉬처럼 한국 공습

세계 TV 2위 TCL
한국 법인 만들고 패널 3년 무상 보증
하이얼·샤오미는 쿠팡과 AS 협력

사진=TCL 홈페이지, 로보락 홈페이지

지난해 세계 TV 시장 점유율 2위에 오른 중국 전자 업체 TCL이 작년 말 서울에 한국 법인을 세운 데 이어, 최근 국내 주요 이커머스에 입점하고 있다. 하이얼, 미디어, 샤오미 같은 중국 대표 가전 업체들도 TV, 세탁기, 건조기, 냉장고, 에어컨 등을 국내 대표 이커머스 업체 쿠팡에 입점시키고, 쿠팡을 통해 애프터서비스(AS)를 제공하기로 했다. 작년 국내 로봇 청소기 시장 점유율 1위(35.5%)는 중국 베이징에 본사를 둔 로보락이 차지했다. 160만원이 넘는 이 회사 제품은 완판 기록도 세웠다. 그동안 ‘싼 맛’에 쓰는 가성비 제품으로 인식되던 중국 전자제품들이 국내 AS 문제까지 해결하며 기술과 제품력을 앞세워 한국 시장을 본격적으로 공략하고 있다.

그래픽=김성규

직장인 임모(35)씨는 지난해 중국 전자 업체 TCL의 65인치 퀀텀닷발광다이오드(QLED) TV를 국내 한 이커머스를 통해 구매했다. 가격은 99만9000원. 일률적으로 비교하긴 어렵지만, 사양이 비슷한 국산 제품 절반 값이다. 임씨는 “싸다고는 해도 100만원 가까운 TV를 중국 제품으로 사기 망설였지만, 지금은 대단히 만족한다”고 했다.

몇 년 전만 해도 국내에서 팔리는 중국 전자제품은 주로 가습기·진공청소기·드라이기 등 소형 가전이나 프리미엄 제품을 모방한 저가 제품 위주였다. 하지만 최근엔 로봇 청소기나 프리미엄 TV, 냉장고 등 프리미엄 제품들을 앞세워 한국 시장을 파고들고 있다. 실제 이 제품들의 디자인이나 품질이 한국·일본 제품에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 가전 업체들의 ‘프리미엄 전략’에도 위협이 되는 것이다. 한 가전 업체 고위 관계자는 “실제 글로벌 프리미엄 가전 시장에서도 중국 제품들이 크게 치고 들어왔다”며 “한국이 일본 가전을 따라잡았던 전략을 지금 중국 업체들이 쓰고 있다”고 말했다.

◇기술력에 AS까지 강화해 진출

중국 브랜드 중 가장 적극적으로 국내 시장 진출에 나서고 있는 건 지난해 세계 TV 시장 점유율 2위에 오른 TCL이다. 작년 11월 한국 법인을 세운 뒤 기술력과 강화된 AS를 앞세워 한국 시장에 도전하고 있다. 네이버나 쿠팡 같은 국내 이커머스 업체를 통해 TCL이 직접 배송, 설치부터 사후 관리까지 일괄 제공한다. 최근에는 아예 ‘패널 3년 무상 보증’을 내걸고 진출 속도를 높이고 있다. TCL 관계자는 “한국 소비자들이 AS에 대해 높은 기준을 갖고 있는 만큼 사후 관리를 제일 신경 썼다”고 했다. 무역협회에 따르면 올해 1~2월 중국에서 TV를 수입하는 액수는 5200만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22%가량 늘었다.

중국 브랜드의 한국 시장 공략이 가시화되자 쿠팡, 11번가와 같은 국내 유통 업체들도 적극적으로 중국 브랜드를 입점시키고 나섰다. 2~3년 전부터 중국 브랜드를 입점시킨 쿠팡은 이달부터 자체적으로 하이얼, 메이디(Midea·미디어), 샤오미 등 중국 가전 업체들의 TV, 세탁기, 건조기, 냉장고, 에어컨 등에 대해 쿠팡안심케어를 적용키로 했다. 일정 금액의 보험료를 내면 플랜에 따라 최장 5년까지 애프터 서비스를 제공한다.

최근 한국 시장에 진출하고 있는 중국 브랜드의 새로운 무기는 기술력이다. 국내 브랜드에 뒤지지 않는 기술력으로 한국 시장을 장악한 로봇 청소기 분야가 대표적이다. 국내 로봇 청소기 시장의 절대 강자는 중국 베이징에 본사를 둔 로보락이다. 로보락은 지난해 국내 시장 점유율 35.5%로 1위를 차지했다. 로보락의 국내 매출은 2020년 291억원에서 지난해 2000억원으로 3년 만에 7배가량 뛰었다. 진공·물걸레 청소부터 자동 건조, 세척까지 청소의 전 과정을 자동으로 해결해주는 최신 제품 ‘로보락 S8 프로 울트라’는 169만원이라는 고가에도 지난해 국내에서 완판을 기록했다. 샤오미도 갤럭시S24 울트라 모델과 비슷한 2억 화소 카메라를 지원하는 신제품 레드미 노트 프로13으로 지난 21일 2년 만에 한국 시장에 재진출했다.

그래픽=김성규

◇국내 가전 “프리미엄 전략 수정 불가피”

국내 가전 업계는 중국 가전제품의 공세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중국 업체들은 브랜드 파워가 약해 그동안 어려움을 겪었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기술을 따라잡으며 프리미엄 시장을 파고들고 있다. 인공지능(AI) 등의 기술을 앞세워 빠르게 추격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올해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IT쇼 CES에서 삼성전자와 LG전자보다 큰 115인치 ‘퀀텀닷 미니LED’ TV를 전시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국내 가전 업계의 셈법도 복잡해졌다. 그동안 프리미엄 전략으로 영업이익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썼지만, 이제는 이마저도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국내 한 가전 업계 관계자는 “중국의 공세를 막아내기 위해 오히려 한국 가전 업체들이 보급형 저가 시장에 다시 들어가야 할지 고민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