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 채상병 사망 사건? "조그마한 사고"
이종섭 호주대사에 대해 법무부가 출국금지를 해제시켜 준 지난 8일.
관심은 대통령실, 더 정확히는 윤석열 대통령에게로 쏠렸습니다.
출국금지까지 해제시켜 가며 이 대사를 이렇게 급하게 출국시켜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MBC는 설명을 듣기 위해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에게 전화 취재를 했습니다.
이 대사가 신임장을 받고 떠나는지, 언제 받는지 등을 물었습니다.
그리고는 출국금지 사실을 이종섭 대사 지명 이후에 알았다는 게 맞느냐고 물었습니다. 공수처로 고발장이 접수된 게 지난해 9월이니 충분히 알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냐는 취지였습니다.
그러자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거는 공수처의 문제고 시민단체의 문제다" "정부 입장에서는 조그마한 사고가 있는데 그것이 불행하긴 하지만 지금 전 해병대 지휘관이 이제 법적인 문책을 받아야 된다는 거에 대해서는 국방장관이 의견을 가질 수는 있다. 정부는 그거를 사법적인 대상으로 보지는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구명조끼도 없이 수색에 나섰다가 급류에 휩쓸렸던 군인이었고, 청년이었고, 그리고 부모에게는 소중한 아들이었습니다.
나라가 지켜주지 못한 청년의 안타까운 죽음을,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가 그저 "조그마한 사고"로 규정한 겁니다.
채 상병 죽음이 억울한 희생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사건 진상 규명이 첫 번째입니다.
어디까지 책임을 물어야 하는지, 누가 수사 결과에 외압을 행사했는지, 여러 의혹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상황에서 "조그마한 사고"라는 표현에는 진상 규명의 의지를 발견할 수 없습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가 채 상병의 죽음을 이렇게 인식하고 있으니, 채 상병 사건을 바라보는 대통령실 전반적인 시각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실제 대통령실은 지난 18일, 피의자 신분인 이 대사에 대해 "검증 과정에서 고발 내용을 검토한 결과 문제 될 것이 전혀 없다"고도 했습니다.
공수처가 고발 내용을 제공한 적도 없다고 한 만큼, 고발 내용을 대통령실이 어떻게 미리 확인한 것도 의문이지만, 대통령실이 사실상 결론까지 내린 걸로 판단됩니다.
대통령실로선 채 상병 사망 사건 자체가 "조그마한 사고"이다 보니, 이후 벌어진 수사 외압 의혹 역시 문제가 없다는 게 어쩌면 당연한 귀결인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대통령실이 채 상병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은 또 다른 곳에서도 드러납니다.
지난 14일 대통령실이 이종섭 대사 도피 논란과 관련해 '공수처-야당-좌파 언론이 결탁한 정치공작'이라고 규정했던 날.
또 다른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윤석열 대통령이 이 대사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이 관계자는 채 상병 수사 외압 의혹으로 작년 10월 장관직에서 물러난 만큼, 그에 대한 보답 형식으로 호주대사에 임명됐다는 취지로 설명했습니다.
지휘관 지시로 안전 장비 하나 없이 물에 들어가, 급류에 휩쓸려 목숨을 잃은 장병에 대해서는 "조그마한 사고".
그 때문에 장관직에서 물러난 사람에 대해서는 "미안한 마음".
어쩌면 이 말들이 윤석열 정부가 채상병 사건과 이종섭 대사 의혹을 바라보는 인식을 설명해 주는 키워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러는 중에도 채 상병 수사 외압 의혹 관련자들은 줄줄이 영전했습니다.
임종득 전 국가안보실 2차장, 신범철 전 국방부 차관은 국민의힘에서 총선 단수 공천을 받았습니다.
박진희 전 국방부 군사보좌관, 임기훈 전 안보실 국방비서관은 각각 육군 56사단장, 국방대 총장으로 한 단계씩 진급했습니다.
지난 1월, 채 상병과 함께 급류에 휩쓸렸다가 가까스로 구조되었던 생존 장병 어머니는 국회 국정조사를 요구하며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사고의 원인을 알고 싶습니다. 세상을 떠난 채 상병과 제 아들, 그리고 동료들에게 이 사건이 ‘너희 책임이 아니다’라는 말을 꼭 건네주고 싶었습니다. 그러려면 사고의 원인과 책임을 명백히 밝혀야만 합니다. 그게 평생 잊을 수 없는 끔찍한 기억을 안고 살아가야 할 아이들과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채 상병을 위해 조금 더 먼저 산 어른들이 해야 할 몫이라 여겼습니다."
김민찬 기자(mckim@mbc.co.kr)
기사 원문 - https://imnews.imbc.com/news/2024/politics/article/6583133_3643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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