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세계적 베스트셀러 '칩워' 저자 크리스 밀러 美 터프츠대 교수 | “AI 혁명, 반도체 산업 재편 촉발…새로운 기업 전면 등장할 것”

이주형 기자 2024. 3. 25.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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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 혁명은 반도체 산업 재편을 촉발할 것이다. 칩 설계, 제조, 패키징 등 분야에서 새로운 기업들이 전면에 등장할 가능성이 있다.”

반도체 업계 필독서인 세계적 베스트셀러 ‘칩워(Chip War·반도체 전쟁)’의 저자 크리스 밀러(Chris Miller) 미국 터프츠대 교수는 최근 인터뷰에서 이같이 내다봤다.

현재 AI 반도체 업계에서 실적과 주가 모두 ‘파죽지세’의 성장세를 보이는 기업은 단연 엔비디아다. 엔비디아는 AI 모델에 필수적인 그래픽처리장치(GPU) 세계시장의 8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엔비디아를 위협할 기업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 밀러 교수의 전망이다.

실제로 이미 ‘반(反)엔비디아’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한 빅테크들의 움직임이 활발히 이어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챗GPT를 개발한 오픈AI 최고경영자(CEO) 샘 올트먼은 자체 AI 반도체 개발과 생산능력을 확보하기 위해 중동 등 투자자들로부터 7조달러(약 9219조원) 자금 조달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외에도 아마존, 구글, 애플, 메타, 테슬라, 마이크로소프트(MS) 등도 자체 칩 개발에 착수하고 있으며, 기업 간 합종연횡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밀러 교수는 “이 모든 것은 업계의 기존 강자들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면서 엄청난 압박에 직면했다는 것을 시사한다”며 “빠르게 발전하는 AI 반도체 산업에서 선도 기업이 되기 위해 더 나은 기술을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크리스 밀러 미국 터프츠대 교수미국 하버드대 역사학, 미국 예일대 역사학 석·박사, 현 미국 외교정책연구소(FPRI) 유라시아 연구 디렉터, 현 미국기업연구소(AEI) 방문 연구원, ‘칩워’ ‘푸틴의 경제학(Putinomics)’ 저자 사진 크리스 밀러

오늘날 반도체 산업은 과거와 무엇이 다른가.

“칩 산업은 수요 증가를 주도하는 새로운 제품을 찾아낸다. 1990년대에는 그 제품이 PC였다. 그다음 (칩 수요를 주도했던) 제품은 스마트폰이었다. 오늘날 반도체 산업을 변화시키는 것은 바로 새로운 칩 수요, AI 프로세서다. 새로운 수요 동력이 등장할 때마다 업계가 뒤흔들리고 새로운 기업과 비즈니스 모델이 등장한다. AI 칩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면서 업계의 기존 비즈니스 모델이 겪게 될 혼란은 현재 초기 단계에 불과하다.”

AI 열풍이 반도체 산업에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나.

“AI 열풍은 AI 시스템을 훈련하고 실행하는 데 사용되는 데이터센터 칩의 수요를 많이 증가시키고, 엔비디아 같은 기업을 칩 산업의 선두에 올려놓았다. AI는 오픈AI의 챗GPT 모델 같은 대규모 AI 시스템을 훈련할 때뿐 아니라 이를 실행할 때 엄청난 컴퓨팅 성능을 필요로 한다. 이 모든 컴퓨팅 성능에는 대량의 하이엔드 칩이 필요하다. 엔비디아는 현재 세계에서 세 번째로 가치 있는 기업으로, AI 학습에 사용되는 대부분의 칩을 생산하고 있다. 메모리 칩 분야에서는 SK하이닉스가 선도적으로 생산하고 있는 ‘고대역폭 메모리(HBM)’라는 특수한 유형의 칩 수요가 증가하면서 업계가 발칵 뒤집혔다. 또한 MS와 구글 등 세계 최대 기술 기업들은 자체 칩을 설계하고 있다. 용도에 맞게 특별히 설계된 실리콘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반도체 업계의 판도는 어떻게 바뀔까. AI 열풍의 최대 수혜자인 엔비디아는 계속 고공행진을 이어갈 수 있을까.

“이미 강자로 떠오른 기업은 AI 시스템이 학습하는 대부분의 GPU 칩을 설계하는 엔비디아다. 하지만 나는 AI 혁명이 칩 산업의 재편을 촉발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칩 설계, 제조, 패키징 분야에서 새로운 기업들이 전면에 등장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예를 들어, MS부터 메타까지 모든 대기업이 자체 칩을 설계하고 있다. 패키징의 경우, HBM과 GPU를 결합해야 할 필요성으로 인해 메모리 칩 제조 기업들이 패키징 사업에 뛰어들고있다. 또한 인텔은 최근 MS의 AI 칩 생산 계약을 체결하며 파운드리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업계의 기존 강자들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면서 엄청난 압박에 직면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물론 엔비디아의 장점은 칩 설계 기술뿐만이 아니다. 엔비디아의 GPU 기반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밍 플랫폼인 ‘쿠다(CUDA)’는 전 세계 대부분의 주요 AI 시스템 생태계를 형성했다. 따라서 다른 반도체 기업의 칩을 사용하려는 기업은 전환 비용에 직면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엔비디아는 AMD와 같은 대형 클라우드 컴퓨팅 기업에서 자체적으로 설계한 칩과의 치열한 경쟁에 직면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GPU에 대한 장기적인 수요가 칩 기업의 희망만큼 클지 여부다.”

인텔은 최근 행사에서 2030년까지 세계 파운드리 2위가 되겠다고 선언했다. 목표를 이룰 수 있을까.

“인텔은 두 가지 측면에서 실질적인 도전에 직면했다. 먼저 (세계 파운드리 1, 2위 기업인) TSMC와 삼성을 따라잡기 위해 제조 기술을 향상시켜야 한다. 인텔은 비즈니스 모델을 조정해 다른 고객을 위해 칩을 생산하는 파운드리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제조 기술과 관련해 인텔은 TSMC, 삼성의 2㎚(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 공정과 유사한 1.8㎚라는 최첨단 제조 공정을 출시하는 목표를 수립한 것으로 보인다. 더 큰 과제는 파운드리 고객을 확보하는 것이다. 최근 MS가 자사가 설계한 AI 칩을 인텔이 제조하는 것에 대해 신뢰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인텔의 파운드리 사업이 충분히 수익성을 내기 위해서는 훨씬 더 많은 고객이 필요할 것이다.”

최근 샘 올트먼 오픈AI CEO는 엔비디아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직접 칩 제조 능력 확보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MS, 구글, 아마존, 메타 등 다른 기업도 자체 칩을 설계하고 있다. 그 이유는 두 가지다. 기업들은 더 효율적인 컴퓨팅과 에너지 소비 감소를 제공하는 자체 공정에 맞춤화된 칩을 원하기 때문이다. 또 기업들은 엔비디아와 경쟁을 원하며, 자체적 설계한 칩을 보유하면 다른 기업의 GPU를 쓰는 것에 비해 더 비용 경쟁력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일본은 자국 반도체 산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한국 정부도 이를 따라야 할까.

“한국도 이미 그 뒤를 따르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 정부는 이미 일본과 비슷하게 반도체 투자를 장려하기 위해 새로운 세제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은 서로 다른 도전에 직면해 있다고 생각한다. 일본에는 기계부터 화학까지 반도체 공급망의 여러 분야에서 업계를 선도하는 기업들이 있다. 하지만 칩 제조 분야에서는 일본 기업들이 대체로 뒤처져 있다. 반면 한국은 칩 제조 분야에서 매우 강하고, 다른 분야에서는 성공하지 못했다. 따라서 한국의 산업은 일본과는 다른 유형의 지원이 필요하다.”

최근 AI 열풍 속에서 한국 반도체 산업이 위기를 맞았다는 우려가 나오기도 하는데.

“한국 반도체가 위기라는 증거는 보이지 않는다. 한국 기업 중 하나인 SK하이닉스는 AI 애플리케이션에 특화된 HBM 칩 생산에서 세계 선두를 달리고 있다. 한국의 두 대형 메모리 칩 생산 업체인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는 메모리 칩 시장이 타이트해지면서 부분적으로 AI 수요에 힘입어 혜택을 보고 있다. 한국의 칩 산업은 AI가 필요로 하는 데이터센터 지출 급증의 주요 수혜자다.”

반도체 산업의 변화를 이끄는 선도 기업이 되기 위해 중요한 점은.

“가장 큰 과제는 기술이 어떻게 발전하고 있는지 이해하는 것이다. 시장에서 최고의 기술을 생산하는 것이 핵심이다. AI 시대에는 스마트폰이나 PC에서 지배적이었던 것과는 다른 기술이 필요하다. 빠르게 발전하는 산업에서 더 나은 기술을 만들어내는 것이 시장점유율을 확보하고 경쟁사보다 앞서 나갈 수 있는 열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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