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노동자, 사랑에 빠진 ‘죄’
아이돌과 팬의 관계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팬(fan)의 어원을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광적인 사람, 광신도를 의미하는 ‘fanatic’이란 단어와 만나게 된다. 이 ‘fanatic’과 팬은 신전·사원이란 뜻을 가진, 현재는 쓰이지 않는 고어 ‘fane’을 어원으로 공유한다. 이는 아이돌(idol)의 어원과도 서로 통하는 면이 있다. 아이돌은 라틴어 ‘가짜 신’(idolum)에서 유래해 ‘숭배의 대상’을 뜻하는 말로 이어졌다.
‘연애하더라도 팬들에게 들키지 말아야지’ 반응 이유
숭배하고 숭배받는 관계는 대체로 많은 것을 신비의 영역으로 밀어넣는다. 종교가 그러하듯 아이돌 산업도 그러하다. 아이돌 산업은 숭배라는 감정을 미끼로 아이돌의 특정한 부분은 신비화해 은폐하고, 상품 가치가 있는 부분만 신성한 영역으로 만들어 자본화한다. 이를테면 아이돌의 외모, 신체, 퍼포먼스, 취향 등이 대표적으로 상품 가치가 있는 영역일 것이다. 아이돌 산업에서 대표적으로 숨기는 영역은 무엇일까? 노동, 그리고 규범을 벗어난 사생활이다.
아이돌 숭배가 유지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은 아이돌에게 반짝이는, 말하자면 상품성 있는 영역과 숨겨진 영역이 영원히 분리되기를 바란다. 그래야 신비로움이 유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가 있다면 상품성 있는 영역과 그렇지 않은 영역은 절대 완벽히 분리될 수 없다는 점이다.
두 영역이 각자 점유한다고 여겨지는 영역은 실제 서로 다른 영역도 아니다. 두 영역을 구분 짓는 것은 오직 산업과 자본이 임의로 구획한 허구적인 기준일 뿐이다. 허구의 기준에 따라 어떤 부분은 적극적으로 감추고, 또 어떤 부분은 근사한 상품으로 수행하는 것은 아이돌 노동의 큰 부분이다. 문제는 아이돌 노동이 노동으로서 가시화하지 못하고, 그 때문에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도 쉽지 않다는 점이다. 왜냐면 아이돌도 노동자라는 부분 또한 아이돌의 신비로움을 위해 감춰야 할 영역처럼 다뤄졌기 때문이다.
2024년 3월5일 아이돌 그룹 ‘에스파’의 멤버 카리나(본명 유지민)는 인스타그램에 자필 사과문을 게재했다. 2월 말 배우 이재욱과 연애 중이라는 사실을 인정한 지 일주일 만의 일이다. 그사이 일부 팬은 카리나가 공개연애로 그룹에 피해를 줬다는 비난, ‘덕질’하는 데 막대한 돈을 쏟아부었음에도 배신당했다는 비난을 온·오프라인으로 표출했다.
팬들이 이렇게 비난하는 근본적인 배경에는, 앞서 말한 것과 같이 아이돌이 팬들에게 보여줘야 하는 영역과 숨겨야 하는 영역을 유지하는 일을 완수하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실망이 자리한다. 그렇다면 어떤 이유로 아이돌에게 ‘연애’는 팬들에게 반드시 숨겨야 할 영역이 됐을까? ‘순결성’은 왜 아이돌에게 상품성이 됐을까? 팬과 아이돌은 독점적 연애 관계가 아닌데도 말이다.
웹상에 공개된 카리나를 비난하는 일부 팬의 글에서 느껴지는 것은, 팬은 자신이 아이돌에게 쏟은 사랑만큼 아이돌로부터 사랑에 대해 보상받기를 바란다는 점이다. 이때 아이돌의 순결함은 팬들에게 일종의 보상으로 기능해왔고, 계속 기능한다는 점이 중요하게 살펴봐야 할 부분이다. 누가 아이돌의 순결함을 팬들에게 제물로 바쳐온 걸까? 아이돌의 순결함이라는 불가능한 환상을 지탱해온 것이 바로 산업이다.
‘유사 연애’ 관계 적극 활용하는 친밀성 비즈니스
친밀성을 판매하는 아이돌 상품의 등장은 아이돌 노동을 머나먼 무대 위 숭배의 영역에서 친밀함의 영역으로 숨 가쁘게 확장시켰다. 동시에 아이돌이라는 상품도 다각화했다. 이전의 아이돌 노동은 콘서트와 팬미팅, 앨범 판매에 그쳤기에 감정을 판매하는 영역이 제한적이었다면, 요즘 아이돌은 ‘버블’(bubble) 같은 구독 형태의 애플리케이션 채팅 서비스까지 판매하고 있다. 이런 채팅 서비스는 아이돌과 다수의 팬이 함께하는 일 대 다수의 서비스이지만, 코로나19 대유행이 화상 팬미팅 시대를 열면서 일대일 화상채팅도 아이돌 상품이 됐다. 이렇게 친밀성을 상품화할 수 있었던 기제에는 아이돌이 팬과 ‘유사 연애’ 관계를 적극적으로 수행함으로써 팬덤을 확장해온 배경이 있다.
카리나 역시 2021년 5월 버블 서비스를 시작한 뒤 ‘버블 효녀’라는 애칭이 붙을 정도로 구독 팬들에게 메시지를 자주 보내며 ‘입덕’ 효과를 톡톡히 봤다. 따라서 아이돌의 순결성은 팬에게 유사 연애적 감정을 유지하기 위해 언제나 상품적 가치를 지녔다. 하지만 과거에 아이돌의 연애가 아이돌을 향해 쏟고 있던 팬 정동(감정)의 추락으로 이어지는 데 그쳤다면, 이제 팬들은 아이돌의 연애를 자신이 팬으로서 누려야 하는 정당한 권리가 침해당한 것으로 쉽게 표현하곤 한다.
친밀함을 정식 상품으로 판매하기 이전에도 아이돌의 감정은 상품으로 기능해왔다. 하지만 지금과 같이 값을 매길 수 있는 형태의 상품으로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팬에게 아이돌의 감정은 구매자로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영역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반면 아이돌의 친밀성이 구독 서비스 같은 형태로 물화돼 값이 매겨지는 지금에 와서는 팬들로 하여금 자신이 아이돌의 감정을 구매한 적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한다.
그러니 그런 권리는 침해의 대상이며 구매자로서 보상 또한 필요하다고 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인간의 감정을 온전히 살 수 있다는 믿음은 어디까지나 허구에 불과하다. 하지만 화폐경제의 무서운 점이 여기에서 드러난다. 화폐경제는 화폐로 셀 수 있게 된 모든 것은 상품으로만 완전성을 가지며, 상품을 초과한 것은 허용될 수 없다는 허상을 만들어낸다. 아이돌뿐만 아니라 대다수 아이돌 팬도 다양한 일터에서 감정노동자인 경우가 많다. 이 말인즉 감정노동은 아이돌에게만 익숙한 노동이 아니라 팬들에게도 익숙한 노동이라는 의미다. 감정노동은 자기 감정을 화폐로 세는 데 모든 사람을 익숙해지게 한다.
그럼에도 팬이 아이돌을 감정상품으로만 소비하는 것은 아니다. 팬과 아이돌의 관계가 단순히 구매자와 상품으로만 얘기될 수 없다는 뜻이다. 또한 팬이 아이돌에게 느끼는 친밀감을 팬의 허상이라거나 착각과 같이 일방적 감정이라 축소하고 싶지도 않다. 아이돌과 팬은 분명 상호적 관계다. 다만 일대일의 독점적 관계나, 종교적 관계와 다른 고유함과 특수성을 띨 뿐이다. 팬은 이 애착을 손에 잡고 싶고, 피부로 느끼고 싶으며, 일상적 형태로 가공하고 싶어 한다. 산업 속에서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수단이 화폐이며 소비라는 방식인 것뿐이다. 우리는 이 사랑을 상품이 아닌 형태로 손에 잡히는 것으로 만들 수 있을까?
상품 아닌 형태로 사랑할 수 있을까
아이돌 팬덤은 유난히 자신의 아이돌의 대외적 성적(미국 빌보드 차트 순위 등)에 목매기도 한다. 이는 카리나가 연애를 인정한 것에 대해, 팬들로부터 “‘커리어’까지 버릴 만큼 그 사람을 사랑하냐”며 연애를 경력(커리어) 하락과 연결 짓는 성과주의적 비난을 받은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아이돌 팬을 능력주의적이라고 비난하기에 앞서, 아이돌 팬덤에 아이돌의 경제적 성취가 의미하는 게 무엇인지 들여다보는 일이 필요하다. 한국의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아이돌이 국외 차트에서 높은 성적을 가져오기 전까지 다른 뮤지션과 동등한 아티스트로 평가한 적이 드물다.
아이돌 팬덤은 언제나 ‘빠순이’ ‘소녀팬’과 같이 격하됐고, 아무리 팬덤이 커져도 아이돌의 인기는 실력이나 가치로 치환되지 않았다. 이런 역사 속에서 아이돌 팬이 아이돌의 대외적 성적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팬덤의 인정 투쟁 역사는, 아이돌 소속사로 대표되는 산업이 아이돌을 상품화의 극단으로 밀고 가도 성취를 위해서라면 못내 허용되는 분위기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아이돌이라는 인격체가 점점 더 노동으로부터 소외되고 상품으로만 파편화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콘서트 티켓 가격만 생각하더라도 아이돌이 상품화할수록 더 만만하게 착취되는 것은 팬덤이기도 하지 않은가?
아이돌의 대외적 성적과 경제적 성취에 대한 산업의 집착이 팬덤 착취로 악순환하는 것이 자명한 사실이라면, 이 거대한 산업에서 서로 연대해야만 할 대상 또한 아이돌과 팬일 것이다. 아이돌의 감정에 대한 불가능한 독점을 허황된 보상으로 삼기 이전에, 인격체로서 아이돌의 노동자성에 대해 팬덤이 함께 고민하는 것이 서로를 착취하지 않고 산업에서 서로를 소외시키지 않는 방식일 것이다. 아이돌 개개인이 노동자이듯, 팬도 무수히 다양한 일터에서 개개인의 노동자로 살고 있다. 아이돌과 팬은 고유한 인격체로 동등한 것만큼이나 노동자로 공통됐다.
극단적 상품화, 팬덤 착취의 악순환 끊을 방안은
아이돌 산업에 필요한 것은 노동자의 자리를 만들고, 그 자리를 바탕으로 아이돌이라는 판타지를 재구축해내는 일이다. 팬은 누구보다도 아이돌을 상품으로만 만나고 싶어 하지 않는 존재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품을 초과하는 아이돌의 인격과 노동자성을 들여다봐야 한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는 부유한 아이돌은 걱정해줄 필요 없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누군가를 아이돌이라는 이유로 특별하게 부유하게 만들어주는 과정이 바로 아이돌과 팬의 인격을 상품과 구매자로만 축소하는 구조다. 아이돌과 팬이 화폐경제 밖에서 인간과 인간, 노동자와 노동자로 만날 수 있을 때, 팬덤을 착취하는 아이돌 산업도 막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노동으로 이뤄짐에도 노동에 대해 침묵하는 판타지는 더 이상 존재해서는 안 된다.
연혜원 <퀴어돌로지> 공저자·사회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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