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립쇼 하는 게이 노인을 지원?… 美도 ‘쪽지 예산’ 논란

워싱턴/이민석 특파원 2024. 3. 25.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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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예산안 상·하원 통과… 쪽지 예산 싸고 상원서 막판까지 갈등
마이크 존슨 미국 하원의장(가운데)이 22일 미국 워싱턴DC 연방의사당에서 1조2000억 달러 규모의 예산안 표결을 위해 하원 본회의장으로 걸어가고 있다. 이날 하원이 예산안을 통과시킨 데 이어 다음 날인 23일 상원도 예산안을 처리하면서 연방 정부 셧다운 위기를 해소했다. /EPA 연합뉴스

미국 2024 회계연도(2023년 10월~2024년 9월) 예산안이 토요일인 23일 새벽 미 의회의 문턱을 넘었다. 지난해 9월 말 진작 끝냈어야 할 미국의 예산안 처리는 우크라이나·이스라엘 추가 무기 지원 예산을 둘러싼 민주당과 공화당 간 갈등 등으로 6개월 가까이 지연됐다. 셧다운(공무원 급여 지급 등 연방 정부 업무 중지) 위기를 피하고자 여러 차례 시한부 임시 예산안을 마련하는 방식으로 처리 시한을 연장해 왔는데, 마지막 남은 국방·보건복지 등 6분야의 1조2000억달러(약 1600조원) 규모 예산을 미 상원이 이날 오전 2시 찬성 74표, 반대 24표로 통과시켰고, 조 바이든 대통령이 이날 오후 예산안에 서명했다.

마지막으로 연장된 예산 처리 시한은 22일 자정이었는데, 시한을 2시간 넘길 정도로 상원에서 막판 진통을 겪었다. 반년간 예산안 처리의 걸림돌이 된 우크라이나 등 무기 지원 예산 때문이 아닌 이민 정책 관련 예산과 국방부 내 성소수자 지원안 등이 문제가 됐다. 특히 한국의 ‘쪽지 예산’에 해당하는 지역구 선심성 예산 갈등도 영향을 미쳤다. 야당인 공화당은 민주당이 지역구 선심성 예산을 뜻하는 ‘이어마크(earmark·지역구 쪽지 예산)’를 과도하게 포함시켰다고 항의하면서 막판까지 갈등을 빚었다. 우크라이나 등 무기 지원을 위한 ‘안보 예산 패키지’ 예산의 경우 정부 예산을 아껴 마련한 3억달러를 지원하기로 최근 결정했다.

◇노인 성소수자 단체에 100만달러 지원

“미국인들이 힘들게 벌어 낸 세금을 개별 의원들이 흥청망청 쓰고 있습니다. 이 수치스러운 예산안들을 보십시오.” 미 연방 상원의 랜드 폴 공화당 의원은 전날 예산안 세부 내역이 공개되자 이같이 밝혔다. 그는 논란이 될 만한 예산안 16개를 자체 선정해 자신의 X(옛 트위터) 계정에 공개한 뒤 ‘최악의 쪽지 예산’을 뽑아달라고 했다.

그가 공개한 안건은 ‘다시마 및 조개류 종묘장 건설을 위해 지역 대학교에 200만달러 지원’ ‘(민주당 부유층이 자주 찾는) 매사추세츠주의 고급 휴양지 마서스비니어드의 병원에 170만달러 지원’ 등 상원 다수당을 차지하고 있는 민주당 의원들의 지역구용 예산안이었다. 이 중 네티즌들이 투표를 통해 ‘최악의 예산안’으로 꼽은 건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가 제출한 ‘노인 LGBTQ(성소수자) 단체의 문화 역량 강화를 위한 100만달러 지원안’이었다.

미 상원 미치 매코널 공화당 원내대표가 23일 2024 회계연도 예산안이 통과된 뒤 의사당을 나서면서 엄지 손가락을 치켜 올리고 있다. /AFP 연합뉴스

민주당 존 페터먼 상원 의원도 이달 초 지역구인 펜실베이니아주(州) 필라델피아에 있는 한 성소수자 단체에 100만달러를 지원하는 안을 제출했다가, 이곳에서 성소수자 간 스트립쇼 등 부적절한 행사가 열리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온 직후 철회했다. 이를 두고 공화당 의원들은 “민주당이 불법 이민, 범죄 대응을 위한 지출에는 반대하면서 쓸데없는 곳엔 거액을 펑펑 쓰고 있다”고 맹폭했다. 그러나 민주당 의원들의 쪽지 예산들은 이번에 대부분 통과됐다고 미 언론들은 전했다.

◇쪽지 예산 규모 24조 육박, 대선 앞두고 급증

미 의회는 2011년 예산 심사 과정의 투명성을 강화하겠다며 선심성 예산 편성을 10년간 법으로 금지했다. 하지만 법이 효력을 다한 2021년부터 쪽지 예산 편성 경쟁이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 오는 11월 대선과 상·하원 선거를 앞두고 그 규모는 계속 커지고 있다고 미 언론들은 전했다. 워싱턴 정가에서 “국가 재정 건전성은 뒷전인 채 의원들이 재선에만 골몰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미 의회 전문 매체 롤콜은 자체 추산 결과 2024 회계연도 기준 쪽지 예산 규모는 178억달러로 전년 대비 19% 증가했다고 최근 보도했다.

AP는 “쪽지 예산 논란은 연방 정부의 과도한 지출을 경계하는 공화당이 주로 민주당을 공격하는 데 쓰이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쪽지 예산이 민주당만의 문제는 아니다. 롤콜에 따르면 2022년 중간선거에서 다수당을 차지한 하원 공화당은 작년 74억달러의 쪽지 예산을 배정했다. 반면 민주당은 28억달러에 그쳤다. 예산 지출 규모를 결정하는 하원 세출위원회 요직을 다수당인 공화당이 차지한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지난 7일 릭 스콧 상원 의원 등 공화당 의원 9명은 “기록적인 인플레이션 기간에 의회가 정부 예산을 펑펑 써서는 안 된다”며 쪽지 예산 편성을 중단해야 한다는 결의안을 제출했다. 그러나 한 연방 의회 관계자는 “선거철을 앞두고 한 표가 아쉬운 의원들이 지역구용 예산을 앞다퉈 끼워 넣고 있어 당분간 쪽지 예산 금지 법안이 통과되긴 쉽지 않을 전망”이라고 했다.

☞이어마크(earmark)

미국 의회 의원들이 국가 전체의 발전보다 지역구 유권자들의 이익을 목적으로 배정하는 도로·공항 신설 등 지역 선심성 예산이다. 한국 국회의원들의 지역구 끼워넣기 예산을 뜻하는 ‘쪽지 예산’의 미국판이다. 이 단어는 공유지에서 풀을 뜯는 가축의 소유권을 구분하기 위해 가축의 귀(ear)를 특정한 방식으로 자르는 관습에서 비롯됐다. 이어마크를 ‘포크 배럴(pork barrel·돼지고기 통)’이라고도 부른다. 지역구 예산을 따내려는 의원들의 모습이 마치 농장주가 돼지고기 통에 고기 한 조각 던져줄 때 이 통에 모여드는 노예들 같다는 비아냥에서 유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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