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정우칼럼] K팝 팬덤이 궁지로 몰린 까닭
앨범·굿즈 등 강박소비로 연결
팬심은 투자에 대한 대가 요구
존중과 배려 기반한 문화 절실
카리나·이재욱, 한소희·류준열 열애! 스타의 열애 보도는 늘 사람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다. 과거에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요즘은 달라진 점이 있다. 마치 이들의 행위를 부도덕한 것처럼 바라본다. 이 저변에 팬덤의 융성이 있다. 온라인 매체를 통해 고스란히 노출되는 스타의 일거수일투족을 보며 팬들은 기뻐하고 슬퍼한다. 가십은 그렇다 쳐도, 과몰입이 문제다. 아직 인간관계의 경험이 적은 10대나 20대의 경우 스타와 나와의 관계를 객관화하지 못하고, ‘내가 키워야 한다’는 강박에 빠져 상처와 고립을 경험하기도 한다.
뭐가 잘못된 걸까? 엔터 기업의 탐욕과 상업주의가 문제다. K팝을 국가 경쟁력의 원천으로 만든 이들의 공을 깎아내릴 의도는 없다. 다만, 단기간의 이윤 추구에 사로잡혀 팬들의 인성과 도덕에 미칠 수 있는 부정적 해악을 고려하지 못한 점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결국 엔터 기업들이 헤비 팬덤의 해악을 방치했고, 넓은 저변을 갖는 라이트 팬덤의 성장을 가로막았다. 결국 K팝 팬덤은 궁지로 몰렸다.
추앙하는 대상의 사생활과 행복은 도외시한 채, 투자하고 몰입하는 팬의 욕구 충족이 우선시되도록 팬덤의 규칙이 만들어진 것이 문제였다. 응원과 선망의 자연스러운 감정이 스타와 나를 동일시하는 판타지로 변질되고, 여기에 사회화 과정에 필수적인 다양한 관계 맺기가 뒤로 밀려나면서, 팬덤이 의도했던 새로운 공동체는 빛바랜 이상이 되었다.
엔터 기업들은 수십, 수백만 원을 지출해야 팬 사인회에 참여할 수 있고, 돈을 더 내야 스타와 일대일 소통을 한 번이라도 더할 수 있도록 철저히 상업주의적인 게임의 룰을 만들었다. 팬들이 물질화된 관계 형성을 당연시하도록 부추긴 셈이다. 이렇다 보니, 거금을 투자한 일부 팬들은 스타에게 도덕적인 완벽성을 촉구하는 비이성적 행동을 서슴지 않게 된다. 급기야 CNN, BBC 등 해외 언론이 K팝의 빈곤을 매섭게 추궁했다.
젊은 세대가 현실에서의 관계 맺기에 부담을 느끼는 이면에는 원하면 얼마든지 나의 욕구에 충실한 가상의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다. 코로나19로 수년 동안 정상적인 교우 관계를 맺지 못했고, 대학이 주는 의미를 학점과 졸업장 취득에 한정해 사고하는 현실 속에서, 스타의 존재와 팬덤이 주는 의미는 각별함 그 이상이다. 젊은 세대의 정체성 형성을 이끄는 거대한 동력과 같다.
젊은 세대가 건전한 관계 맺기의 의미를 깨닫고, 풍성한 관계 정립에 나서게 하는 것은 기성세대와 우리 사회 그리고 기업의 책무이다. 이를 저버리고 단기간의 돈벌이에 매몰돼 헤비 팬덤이 낳을 수 있는 부정적 효과를 애써 도외시한다면, K팝의 미래뿐 아니라 국가의 미래마저 어두워질 수 있다.
엔터 기업을 비롯한 우리 사회는 경험이 부족한 젊은 세대가 의미 있는 관계를 정립할 수 있도록 꾸준히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 좋아하는 스타에게 팬심을 아끼지 말되, 이기적이 아니라, 배려하고 존중하는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게임의 룰’을 재정립해야 한다. 내 존엄성과 프라이버시가 중요한 만큼, 아이돌이나 연예인도 똑같이 개인의 소중한 가치를 인정받아야 한다는 점을 깨달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팬들이 스타에게 과몰입하는 것에서 벗어나, 취향을 공유하는 다른 팬들과 밀접히 교류하고, 의미 있는 공동체를 만들어 경험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K팝의 방향 설정이 바뀌어야 한다. 엔터 기업들은 팬 플랫폼의 프로그램을 전면 재검토하고, 젊은 구성원들에게 미칠 수 있는 부정적 영향을 식별해서, 이를 제거 완화하는 데 전력을 다해야 한다, 모두의 인권을 존중하고 공동체를 배려하는 새로운 팬덤의 등장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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