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실의 서가] 알수록 경이로운 뇌

이규화 2024. 3. 24.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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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은 이미 죽었다며 장례를 치러 달라는 힐데, 텅 빈 몸이 물에 휩쓸려 갈까 두려워 샤워도 하지 못하는 줄리아, 딸은 납치되고 남편은 살해당하고 그 자리를 사기꾼들이 차지했다고 믿는 마담 M, 절단을 향한 욕구로 손가락을 하나씩 자르다가 결국 손 전체를 잘라낸 칼, 숟가락으로 이를 닦고 칫솔로 밥을 먹는 로널드.

타당성을 검증하는 능력이 손상된 뇌는 비현실적인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나름의 자구책을 모색하는데, 바로 '날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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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의 흑역사
마크 딩먼 지음/이은정 옮김/부키 펴냄

자신은 이미 죽었다며 장례를 치러 달라는 힐데, 텅 빈 몸이 물에 휩쓸려 갈까 두려워 샤워도 하지 못하는 줄리아, 딸은 납치되고 남편은 살해당하고 그 자리를 사기꾼들이 차지했다고 믿는 마담 M, 절단을 향한 욕구로 손가락을 하나씩 자르다가 결국 손 전체를 잘라낸 칼, 숟가락으로 이를 닦고 칫솔로 밥을 먹는 로널드.

뇌가 고장 나 일어나는 현상이다. 대략 1300그램에 불과한 이 기관이 도대체 뭐길래 삶에 이토록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신경과학 박사 마크 딩먼은 여기서 그 질문에 답한다. 18세기부터 최근까지, 비교적 흔한 현상부터 희소한 병증까지 30건을 소개한다. 수많은 연구 자료에 흩어져 있는 기묘한 사례들을 저자는 꼼꼼히 챙겼다. 이 믿기 힘든 사례들은 모두 실존 인물들이 겪은 일이다. 병증의 원인으로 추정되는 뇌의 작용도 함께 소개한다. 수수께끼 같은 기관인 뇌에 한 발 더 다가갈 수 있는 계기다. 외상, 종양, 감염, 뇌졸중 등으로 뇌에 손상을 입으면 이러한 현상이 나타난다고 한다. 어떤 증상은 별다른 원인을 찾을 수 없다. 심지어 본인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일어나는 뇌 활동에서 기인한 행동에 관한 이야기도 있다.

뇌는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끊임없이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그중에는 정말 터무니없는 것도 있다. 신경과학자들은 뇌에 논리성을 판단하는 '타당성 검증 기제'가 있어서 그런 생각이 떠오르더라도 무시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부정망상' '걷는시체증후군'으로도 알려진 '코타르증후군' 환자의 경우 이 기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으로 추측한다. 타당성을 검증하는 능력이 손상된 뇌는 비현실적인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나름의 자구책을 모색하는데, 바로 '날조'다. 그 결과, 환자들은 다른 사람들이 망상이라고 하는 것을 확고히 믿게 된다. 자기가 죽었다며 장례를 치러 달라고 하거나, 자기 몸이 부패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뇌에 관한 한 이처럼 흥미롭게 이야기 해주는 책을 접하긴 어려울 것 같다. 미쳐 돌아가는 선거판에 내 뇌가 정상 작동하는지 점검해봄직하다. 이규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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