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노멀-혁신] 다낭과 오사카, 연결된 미래

한겨레 2024. 3. 24.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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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 연휴를 하루 앞둔 지난달 29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에서 외국으로 향하는 여행객들이 탑승 수속을 위해 줄을 서고 있다. 연합뉴스

김진화 | 연쇄창업가

팬데믹으로 눌렸던 여행 수요가 폭발하며 다시 가방을 꾸려 공항을 찾는 이들이 많아졌다. 치솟은 항공운임에도 불구하고 나라 밖을 향한 발길은 주춤할 일 없어 보인다. 멀지 않으면서 상대적으로 저렴한 물가로 각광받는 일본과 베트남 여러 도시가 한국인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요즘 이 두 나라를 방문하는 이들은 예전보다 여행이 무척 편해졌다는 반응이다. 한국 사람들이 많이 찾는 만큼 한글 표기 등 한국인을 위한 배려가 증진된 덕도 있지만 무엇보다 기술과 서비스의 발전으로 여행의 스트레스가 상당 부분 제거된 덕이다.

먼저 환전. 예전처럼 베트남 동이나 엔화를 미리 환전해 가져가거나 공항 환전소를 찾지 않아도 무방하다. 몇몇 은행이 내놓은 여행자 지갑 서비스를 이용하면 현지 은행 자동화기기(ATM)에서 현지 통화를 찾는 게 가능해졌다. 수수료 등 제반 비용도 환전해 가던 시절보다 저렴해졌다. 앱에서 원화를 현지 통화로 바꾸는 데 드는 환전수수료는 기존에 은행들이 생색내던 브이아이피(VIP)급 우대 조건 수준이다. 바꿔둔 현지 통화를 인출할 때는 앱이나 한국에서 사용하던 체크카드를 그냥 사용하면 되는데 이 역시 수수료는 무료인 경우가 많다. 행여나 현금이 부족할까, 불리한 조건으로 환전을 많이 해서 현찰이 남을 경우 다시 또 불리한 환전 조건으로 재환전해야 하는 일련의 불편함이 말끔히 사라진 셈이다.

스마트폰의 데이터 로밍 역시 예전과 비교하면 저렴해지고 편해졌다. 이심(eSIM) 덕분이다. 물리적인 심카드를 발급받고 교체할 필요가 없어지고 여러개의 심을 중복해서 등록해 사용할 수 있으니, 여행지마다 필요한 만큼만 현지 이동통신 데이터를 구매해 사용하는 게 용이해졌다. 하루 1만원 가까이하던 데이터 로밍 요금이 2천원, 3천원 정도로 절감되었다. 걸려온 전화는 기존에 쓰던 한국 번호 로밍으로 받고, 스마트폰에 필요한 무선인터넷은 구매한 이심으로 저렴하게 이용하는 식이다. 불과 몇년 전만 해도 울며 겨자 먹기로 비싼 통신사 로밍을 이용하거나 휴대용 접속기기를 임대해 들고 다녀야 하는 불편함을 찾아볼 수 없게 됐다.

여기에 놀랄 만큼 서비스 질이 개선되고 있는 각종 통번역 앱까지 더해지면 다른 환경과 제도 등 낯섦에서 야기되는 여행의 피로감이 현저히 낮아졌다. 여행이 편해진 만큼 설렘 또한 줄었다고 불평하는 ‘배부른 소리’를 늘어놓는 지인이 있을 정도니 말이다. 그런데도 달라진 여행 풍속이 시사하는 ‘더 연결된 미래’에 대한 기대감은 우리를 설레게 하기에 충분하다.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제거된 애로사항 대부분은 제도와 기술의 한계를 이용해 여행자의 불편을 전제조건으로 규제를 등에 업은 은행, 통신사 등 중개자들이 과도한 이득을 취해온 기반이었다. 기술이 발전하고 경쟁이 촉진되니 이 ‘꿀 빠는 조건’이 자연스레 소멸했다. 스마트폰의 등장과 보편화는 통신사들이 쥐고 있던 과도한 권력을 분산시켰다. 이심을 넘어 위성인터넷이 본격적으로 상용화되면 분산의 폭과 깊이는 더할 것이다. 인터넷 은행을 넘어 블록체인과 인공지능의 고도화는 금융 역시 탈중앙화의 물결에서 더욱더 자유롭지 못하게 할 것이다.

기술의 한계와 규제 일변도로 인해 인터넷 시대에도 인류는 개인 간 거래(P2P)보다는 통신사와 은행 등의 중개자를 매개로 한 거래에 의존해왔다. 이른바 플랫폼 기업들 역시 새로운 수요 독점의 기회를 포착해 중앙화, 집중화를 견인해온 게 사실이다. 거기에 조금씩 균열이 생기고 있다. 분산화 기술은 더 발전하고 있으며, 모르쇠식으로 저항해온 규제 체계의 강고함 역시 예전만 못하다. 더 연결된 세상에서 주도권을 가지고 싶다면 ‘중앙화-규제’ 대열에서 먼저 이탈해 새로운 싸움터에서 진지 구축을 시작하는 게 낫지 않을까. 다낭과 오사카에서 힌트를 찾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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