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부동산PF탓에 밤새는 회계사들 "철근 개수까지 세야할 판"

김경렬 2024. 3. 24. 18:10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빅4' 회계법인에서 회계사로 일하는 정모(27·여) 씨.

올해 2년차인 정씨의 요즘 퇴근시간은 7시다.

정 씨는 "올해는 기업 관련 각종 이슈가 많고 금융당국에서 보다 철저한 회계 감사를 주문하면서 일이 작년보다 15% 이상 늘어난 것 같다"고 말했다.

회계법인 KPMG삼정은 지난 20일 태영건설의 감사보고서를 내고 '감사의견 거절' 의사를 밝혔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팔걷은 회계법인들… 막판 '감사 전쟁' 현장에 가다
월말 감사보고서 제출시한 목전
퇴근 포기하고 현미경 감사까지
변수 많은 해외 사업장 등도 검토
여의도 야경. <김경렬 기자>
여의도 한영 회계법인 건물 야경. <김경렬 기자>

'빅4' 회계법인에서 회계사로 일하는 정모(27·여) 씨. 올해 2년차인 정씨의 요즘 퇴근시간은 7시다. 저녁이 아니라 아침 7시다. 사람들이 회사로 떠날 때 정 씨는 집으로 돌아간다. 이어 두어시간을 쉬고 다시 출근한다. 이런 생활은 지난해 12월 초부터 계속됐다. 정 씨는 "올해는 기업 관련 각종 이슈가 많고 금융당국에서 보다 철저한 회계 감사를 주문하면서 일이 작년보다 15% 이상 늘어난 것 같다"고 말했다.

이달말 기업 감사보고서 제출시한을 앞두고 회계업계가 '시간과의 전쟁', '신뢰도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마감 시간이 다가오면서 '집으로의 퇴근'을 포기하는 회계사들도 있다. 회계감사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부실이나 오류 등을 막기 위해 '현미경 감사'를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회계업계에서는 매년 2~3월이면 되풀이되는 풍경이다. 하지만 올해는 업무 강도가 훨씬 세다.

우선 건설업계를 중심으로 한 줄도산 우려 탓이다. 특히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장의 경우 우발채무 등을 찾아내야 해 곳곳이 지뢰밭이다.

1년 넘도록 본 PF로 전환되지 않은 브릿지론이 늘고 있고, 본 PF에서도 중단된 사업장이 많아졌다. 새로운 수주가 없어 지표 연착륙을 기대하기도 어려워졌다.

태영건설이 단적인 예시다. 회계법인 KPMG삼정은 지난 20일 태영건설의 감사보고서를 내고 '감사의견 거절' 의사를 밝혔다. 한정의견을 받으면 회사 부실이 크다는 의미인데, 거절은 더 위험한 단계를 뜻한다. 이는 상장폐지 사유다.

워크아웃 돌입 후 또 다른 회계법인 PwC삼일이 실사를 하는 와중에 이같은 결정을 내린 것이다. 앞서 회계를 들여다본 딜로이트안진은 매번 '적정' 의견을 냈다. 건설업계가 관행처럼 지표를 감췄다면 안진의 적정의견은 '묻지마 감사'로 비춰질 수 있다.

금융감독원에서도 건설·조선 등 수주산업에서 공사예정원가 추정 등을 악용한 회계분식이 발생하지 않도록 관리·감독을 강화하겠다며 엄포를 놨다. 회사와 외부감사인이 협력할 것을 당부했다. 잠재 부실이 한꺼번에 터질 경우 금융위기로 번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위원회는 중과실 회계 부정을 저지른 두산에너빌리티에 대해 161억원 폭탄 과징금을 부과하며 업계를 긴장시켰다. 셀트리온 3개사에 대해 지난 2022년 회계처리 기준 위반으로 부과된 과징금(130억원)을 웃도는 역대 최대 규모다. 앞서 2017년 분식회계를 일으킨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에 대한 과징금(45억4500만원)의 약 3.8배다.

올해 감사 이슈는 건설사 '미청구 공사'의 안정성 검증이다. 미청구 공사는 소위 '외상값'이다. 공사를 맡긴 측으로부터 돈을 떼일 수 있다. 이는 부실의 단초가 된다.

미청구 공사를 제대로 들여다보기 위해 회계사들은 현장으로 나갔다. 올해 상황에서 건설사나 조선회사가 건내는 지표를 곧이곧대로 믿을 수 없었다. 지방에 출장을 가면 근처에 숙소를 잡고 며칠씩 밤을 샌다. 한 회계 재무담당자는 회계사들이 일하는 곳을 '창살 없는 감옥'이라고 표현했다.

분양 사업장에 대해서는 공실률, 분양률을 따져봐야 한다. 예전 같으면 몇 곳을 선택해 확인해도 크게 문제되지 않았다. 부동산 시장이 활황이다보니 분양까지 사업이 속속 마무리됐다. 올해는 경기가 침체되다보니 현장 상황을 알아야 실체를 파악할 수 있다. 재무지표상 문제없던 것들이 되레 핵심뇌관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보니 변수가 많은 해외 사업장도 면밀히 검토해야했다.

한 회계사는 "실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회계법인도 문닫을 수 있다. 지표 곳곳이 지뢰밭이다"면서 "이러다 현장에 가서 철근 개수까지 세봐야할 것 같다는 농담섞인 불만도 오간다"고 말했다.

글·사진=김경렬기자 iam10@dt.co.kr

Copyright © 디지털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