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준헌과 묄렌도르프 [유레카]

길윤형 기자 2024. 3. 24.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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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있었던 충격적인 북-러 정상회담 이후 한국 외교의 가장 큰 고민거리는 러시아가 됐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러시아 대선에서 17일 87%의 득표율로 압승하며 2030년까지 임기를 연장하자, 머뭇거리는 한국과 달리 북한은 곧바로 양국의 "선린우호 관계는 백년대계의 전략적 협조 관계로 승화·발전하고 있다"고 축전을 보냈다.

미국 등과 힘을 합쳐 러시아의 무도한 '침략'에 맞서야 할까, 살살 달래가며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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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있었던 충격적인 북-러 정상회담 이후 한국 외교의 가장 큰 고민거리는 러시아가 됐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러시아 대선에서 17일 87%의 득표율로 압승하며 2030년까지 임기를 연장하자, 머뭇거리는 한국과 달리 북한은 곧바로 양국의 “선린우호 관계는 백년대계의 전략적 협조 관계로 승화·발전하고 있다”고 축전을 보냈다. 이 추세대로 북-러의 ‘전략적 협력’이 깊어지면, 북핵 문제의 해결은 불가능해진다. 한국은 실로 깊은 위기에 빠진 것이다.

‘대국’ 러시아와 어떻게 사귈지는 두 나라가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국경을 접하게 된 1860년 이후부터 우리를 괴롭혀온 ‘오래된 고민’이었다. 중요한 문제인 만큼 ‘조언’ 역시 많았다. 이 가운데 조선에 가장 강렬한 영향을 끼친 것은 주일 청국대사관의 참찬관이던 황준헌(황쭌셴, 1848~1905)이 2차 수신사로 일본에 갔던 김홍집에게 1880년 건넨 ‘조선책략’이었다. 황은 이 글에서 러시아를 “지구상에서 더없이 큰 나라”이자 “범이나 이리같이 탐욕스러운 나라”라고 평하며 조선에 “러시아를 막는 것만큼 급한 일은 없다”고 밝혔다. 이렇게 겁을 주면서 러시아에 맞서 ‘친중국·결일본·연미국’하라고 조언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며 전국의 유생들이 벌떼처럼 들고일어났다.

정반대 조언을 한 이는 조선 개국 이래 정식으로 입국한 최초의 서양인인 파울 게오르크 폰 묄렌도르프(1847~1901)였다. 그는 통상 업무에 문외한인 조선을 위해 청의 북양대신 이홍장(리훙장)이 ‘헤드헌팅’한 인재(전 주톈진 독일영사관 부영사)였다. 묄렌도르프는 임오군란 이후 청에 사은사로 간 조영하와 함께 1882년 12월10일 제물포에 상륙해 그달 26일 고종과 만났다. 아내인 로잘리가 1930년 편집해 내놓은 ‘묄렌도르프 자전’을 보면, 이 자리에서 “Sini Guikuke wa pollo posini”(신이 귀국에 와 불러 보시니) 감사하다며 우리말로 인사했다. 묄렌도르프는 청과 일본이라는 두 개의 강력한 힘에 둘러싸인 조선이 살아남으려면 “이보다 더 강력한 제3의 힘”인 러시아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이번엔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냐며 청과 일본이 침을 튀기며 분노했다.

140년 전이나 지금이나 고민은 그대로다. 미국 등과 힘을 합쳐 러시아의 무도한 ‘침략’에 맞서야 할까, 살살 달래가며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야 할까. 한반도의 지정학은 우리에게 천형이다.

길윤형 논설위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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