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을 전쟁터로 만든 ‘복수혈전’의 판타지 [아침햇발]

강희철 기자 2024. 3. 24. 15:3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윤석열 검찰총장 임명장 수여식이 열린 지난 2019년 7월25일 조국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강희철│논설위원

윤석열과 조국의 ‘리턴 매치’다. 어쩌다 총선판이 그렇게 돼버렸다.

조국이 항소심에서도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받았을 때, 지금 상황을 예견한 사람이 있을까. “비법률적 방식의 명예 회복”은 특유의 허장성세로 들렸다. 그런데 뜻밖의 ‘귀인’이 나타났다. 이재명의 대선 공약 파기와 위성정당 선택은 조국에게 더 큰 반사이익으로 돌아갔다. 그래도 바늘구멍이던 가능성을 “15석 목표”(황운하)로 증폭시킨 건 윤석열이다.

그 이종섭 대사 임명이 미스터리라고 한다. 총선이 코앞인데 웬 자충수냐고 묻는다. 무심코 저지른 실수가 아니라 필연 속 우연이 패착을 초래했다. “윤이 ‘그림자’를 보고 대경실색한 것으로 보인다.” ‘용산’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검찰의 전·현 특수통들 얘기를 들어보니 대강 그림이 그려진다.

이종섭이 대사로 검토된 건 지난해 10월 장관직 사퇴 직후부터다. 프랑스, 폴란드가 거명되다 오스트레일리아(호주)로 정해졌다. “이종섭은 채 상병 사건의 ‘키맨’이다. 브이아이피 운명이 그 사람에게 달렸다. 입단속? 대기업은 돈으로 한다. 공무원은? ‘자리’ 말고 뭐가 있겠나.”

공수처만 아니었다면 대사 임명은 총선 이후가 됐을 것이다. 1월17~18일 공수처가 해병대 사령관 등을 압수수색했다. 그 직후 처장과 차장이 연달아 임기 만료로 떠나 지도부 공백 상태가 됐다. 수사팀의 독자적 행동 공간이 열렸다. 그런데 수사팀엔 ‘친윤’이 전무하다. 대통령실은 수사 상황을 잘 몰라 답답해했다.

“판례에 비추어, 이종섭의 행위 중 최소 두가지는 직권남용이 된다. 경찰에 보낸 기록 회수와 ‘누구누구는 빼라’는 지시.” 관련자 진술도 이미 많이 확보돼 있다. 이종섭의 지시가 자의냐 타의냐를 밝히는 문제만 남았다. “총선 전에 이종섭의 구속영장이 청구되지 않을까, 지레짐작을 한 것 같다. 검사라면 당연히 ‘입고’(구속)하려고 했을 테니까.” 일단 구속되면 열에 아홉은 심적 동요를 일으킨다. ‘독박’과 ‘자백’ 사이에서 고민한다. ‘검사 윤석열’이 누구보다 잘 안다. “퍼즐을 못 맞추게 하려면 조각을 치우는 수밖에.”

‘디올백’에 이어 윤석열식 공정과 정의가 다시금 바닥을 드러냈다. 과거 조국의 내로남불이 오늘의 윤을 만들었다면, 이젠 윤의 내로남불이 조국을 부활시키는 아이러니가 펼쳐지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조국은 4년 전 ‘결백호소인’ 조국이 아니다. 기나긴 1, 2심 재판에서 무죄를 입증하지 못했고, 이젠 대법원 판결에 명운을 맡긴 피고인일 따름이다.

자녀 입시비리는 7개 혐의 사실 중 6개에 유죄가 선고됐다. 개천의 용 말고 “붕어, 개구리, 가재로 살아도 행복한 세상을” 만들자던 달콤한 트위트는 허황한 판타지로 드러났다. 청와대 민정수석 때 딸이 받은 부산대 의학전문대학원 장학금 600만원은 부정청탁금지법 위반으로 판명됐다. 청와대 특별감찰반에 대한 감찰 중단 지시도 유죄(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로 결론이 났다. 법률심인 대법원에선 더 이상 사실관계와 형량을 다루지 않는다.

항소심 판결문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조국이) 객관적 증거에 반하는 주장을 하면서 그 잘못을 인정하거나 진정한 반성의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2심 재판부가 1심 형량을 깎지 않은 이유다. 그런 조국이 윤을 향해 “수오지심(옳지 못한 행동을 부끄러워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없는 것 같다”고 공박하고 있다.

애초에 조국은 윤을 “심판하겠다고 나설 자격이 없다”(녹색정의당). 판결문에 또박또박 적혀 있는 그대로다. 어떤 미사여구를 동원해도 자신이 저지른 불공정과 부정의는 가려지지 않는다. 검찰 특수부를 역대 최대 규모로 확대하고, 윤석열을 서울중앙지검장, 검찰총장으로 수직 발탁한 양호유환의 원죄 또한 부인할 수 없다. 대의와 명분이 없는 정치 참여는 한풀이 이상이 되지 못한다.

조국을 무동 태운 지지율은 윤을 향한 적개심에서 발원한다. 이재명에게 만족 못 한 사람들이 조국을 중심으로 뭉치고 있다. 예의, 염치, 상식 같은 고래의 도덕률은 일찌감치 추방됐다. ‘대학입시 기회균등 선발’이라는 정치인 조국의 자가당착도 전혀 개의치 않는다. 피고인, 피의자가 즐비한 조국당 비례후보 면면조차 괘념 대상이 아니다. 이들을 향해 조국은 “망치”와 “돌격”을 외치고 있다. 절멸의 구호 앞에 이성이 발붙일 공간은 없다.

두 사람의 질긴 악연, 복수혈전의 판타지가 선거를 집어삼킬 기세다. 그래서 ‘총선 이후’가 더 아뜩하다.

hckang@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