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의 ‘구세주’ 윤석열-이재명…총선 이후가 더 두렵다

성한용 기자 2024. 3. 24.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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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525
그래픽_박민지

‘다이내믹 코리아’에서 정치의 가장 중요한 동력은 어쩌면 ‘손님 실수’(상대방의 잘못)로 인한 반사이익인 것 같습니다.

2022년 3·9 대통령선거와 6·1 지방선거 및 재보궐선거에서 잇따라 패배한 더불어민주당의 앞날은 캄캄했습니다. 이재명 대표의 민주당이 2024년 4·10 22대 국회의원선거(총선)에서 승리할 가능성은 희박해 보였습니다. 이 대표를 위기에서 구해준 것은 윤석열 대통령이었습니다. 2023년 10·11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윤 대통령은 김태우 전 강서구청장을 사면·복권해 공천하도록 했습니다.

민심은 정권의 오만과 몰상식을 응징했습니다. 진교훈 민주당 후보가 김태우 국민의힘 후보를 56.52% 대 39.37%로 꺾었습니다. 총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희망의 불씨가 민주당 안에서 살아났습니다. 정권심판론이 힘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친명 체제’ 구축하려 불공정 경선까지

이 대표의 위기 탈출은 윤 대통령의 위기를 의미했습니다. 윤 대통령은 극약 처방을 했습니다. ‘현재 권력’인 자신의 위상이 깎이는 위험을 무릅쓰고 ‘미래 권력’인 한동훈 법무부 장관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차출했습니다. 승부수는 통했습니다. 한 위원장은 국민의힘 지지층을 결집했습니다. 김건희 여사 명품백 사건을 적절히 비판하는 ‘기술’도 발휘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에는 이 대표가 윤 대통령을 돕고 나섰습니다. 이 대표는 4·10 총선을 통해 민주당 의원들을 자기편으로 교체하고 싶어 했습니다. 현역 의원 평가 하위 10% 감점을 30%로 늘렸습니다. 임혁백 공천관리위원장, 안규백 전략공천관리위원장, 조정식 사무총장, 김병기 수석사무부총장으로 ‘친정 체제’를 갖췄습니다.

2월6일 임 공천위원장의 “윤석열 정권 탄생에 기여한 이들의 책임 있는 자세” 발언을 시작으로 공천 갈등이 불거졌습니다. 국회 본회의 표결에서 이 대표 체포동의안에 찬성한 것으로 의심을 받아온 의원들이 현역 의원 평가에서 하위 10%나 20%에 포함된 것으로 속속 드러났습니다. 2월19일 김영주 국회부의장 탈당을 신호탄으로 ‘공천 파동’이 시작됐습니다. 공천 심사와 경선을 통해 임종석·홍영표·박광온·신동근 등 수많은 비명계 정치인들이 줄줄이 나가떨어졌습니다.

누가 봐도 ‘비명횡사-친명횡재’였습니다. 공천 파동의 ‘끝판왕’은 지난 19일 서울 강북을 박용진 의원과 조수진 변호사의 경선이었습니다. 불공정 경선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이 대표는 두 후보의 득표율 수치를 직접 소개하며 “이제 이 얘기 여기서 끝내자”고 ‘확인 사살’까지 했습니다. 결국 조 변호사가 후보등록일에 사퇴하는 사달이 났습니다.

상대 힘들 때마다 사달을

민주당 공천 파동이 한달 이상 진행되는 동안 민심은 이 대표와 민주당에 등을 돌렸습니다. 민주당의 수도권 의원들은 “이러다가 120석으로 주저앉게 생겼다”고 비명을 질렀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8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열린 제3차 민주주의 정상회의 장관급 회의 개회식에서 환영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이 대표에게는 윤 대통령이라는 ‘숨은 구세주’가 있었습니다. 윤 대통령은 ‘채아무개 상병 수사 외압 의혹’ 사건 핵심 피의자인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을 3월 초에 느닷없이 주오스트레일리아 대사로 임명했습니다. 이 대사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의해 출국이 금지된 상태였습니다. 법무부는 부랴부랴 출국금지를 해제했습니다. ‘런종섭’, ‘도주대사’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때마침 황상무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의 ‘회칼 테러’ 발언 사건도 터졌습니다. 윤 대통령은 이 대사 귀국과 황 수석 사퇴라는 한 위원장의 두가지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이종섭 리스크’와 ‘황상무 리스크’는 순식간에 ‘윤석열 리스크’로, ‘여권 전체의 총선 리스크’로 번졌습니다. 여기에 국민의힘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 비례대표 후보 문제까지 터지며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의 ‘격투’가 벌어졌습니다. 조선일보는 애가 탔던지 이 문제를 연일 1면 머리기사로 다뤘습니다.

“총선 3주 앞두고, 윤·한 2차 갈등”(3월19일치 1면)
“한, ‘패배 땐 윤 정부 뜻 못 펼치고 끝나’”(3월20일치 1면)

윤 대통령이 버티는 며칠 동안 국민의힘 표는 뚝뚝 떨어졌습니다. 김은혜 전 홍보수석, 이용 전 수행실장 등 핵심 측근들의 아우성이 쏟아지자 윤 대통령은 뒤늦게 이 대사를 귀국시키고 황 수석을 사퇴시켰습니다. 먹을 욕은 다 먹은 뒤에 말입니다.

‘이재명 대표 구하기’에 그 정도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던지 윤 대통령은 지난 18일 서울 하나로마트 양재점에서 “저도 시장을 많이 봐봐서 대파 875원이면 그냥 합리적인 가격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해 서민들과 농민들의 염장을 질렀습니다.

이 대표는 이틀 뒤인 지난 20일 인천 미추홀구 토지금고시장에서 “850원짜리 (대파를) 봤느냐. 이게 5천원이다. 정부가 국민 삶에 관심이 없어서 그렇다”고 윤 대통령을 직격했습니다. 두 사람은 호흡이 척척 잘도 맞는 것 같습니다.

4월10일 선거일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았습니다. 앞으로도 윤 대통령과 이 대표가 서로를 위기에서 구해주는 역설적인 장면을 몇차례 더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두 사람의 이런 관계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참 난감합니다. ‘적대적 공생’이라는 표현이 그런대로 가장 적합한 것 같습니다. 치열하게 싸우면서 그 힘으로 함께 살아간다는 의미에서 그렇습니다. 왜 그럴까요? 윤 대통령과 이 대표의 적대적 공생은 어떻게 해서 가능한 것일까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21일 광주 전남대 후문 상가 밀집 지역을 방문해 거리 인사를 하던 도중 흉기로 찔린 상처를 지지자에게 보여주고 있다. 연합뉴스

‘정서적 내전’ 부추기는 그들

‘정치 양극화’로 많은 부분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정치 양극화는 21세기 정보화 혁명과 모바일 혁명을 계기로 미국과 유럽에서 시작됐습니다. 2016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 영국의 브렉시트(유럽연합 탈퇴)가 정치 양극화의 부산물입니다. 지금 미국에서 벌어지는 트럼프와 조 바이든의 ‘리턴 매치’도 그 연장입니다.

정치 양극화가 극심한 상황에서는 기존의 정치 문법이 다 허물어집니다. ‘경선에서는 고정 지지층에 호소해야 후보가 되고, 본선에서는 중도층 지지를 끌어와야 당선된다’는 식의 고전적 선거 전술 같은 것 말입니다. 정치 양극화 상황에서 선거의 목표는 국민의 대표를 선출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떨어뜨리고 우리 편을 당선시키는 것입니다. 양 진영의 ‘스핀 닥터’들은 상대 후보와 진영을 악마화하고 우리 편 지지자들의 분노와 증오를 부추겨 투표장으로 끌고 나오는 ‘혐오의 정치’를 선거 전술의 기본으로 삼게 됩니다.

우리나라의 2022년 3·9 대통령선거가 바로 그랬습니다. 민주당과 국민의힘 대선 후보 경선부터 ‘혐오의 정치’의 강한 자장권 안에서 진행됐습니다. 양당 당원과 지지자들은 자기 당 경선 후보 중에서 ‘대통령을 가장 잘할 사람’이 아니라 ‘상대 후보를 가장 확실히 쓰러뜨릴 수 있는 사람’을 후보로 선택했습니다. 그게 바로 이재명·윤석열 후보였습니다. 양 진영의 대표적 ‘빌런’들이 양당의 대선 후보가 된 것입니다.

대선일이 다가오면서 양당 지지자들의 상대 후보에 대한 혐오감은 사상 최고조로 올라갔습니다. 2022년 2월 한국갤럽 조사에서 양쪽 지지자의 95% 정도가 상대 후보에 대해 ‘비호감’이라고 답변했습니다. 많은 유권자가 “이재명 대통령 되는 꼴 보기 싫어서” 윤 후보를 찍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되는 꼴 보기 싫어서” 이 후보를 찍었습니다.

정치 양극화의 가장 큰 비극은 유권자들이 선거 결과에 승복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상대 후보를 ‘악마’나 ‘절대 악’이라고 생각하는데 선거 결과에 승복할 수 있겠습니까? 대선이 끝난 뒤 국민의힘 지지자들은 이 대표를 감옥에 보내야 한다고 아우성을 쳤습니다. 민주당의 일부 열성 지지자들은 정권 초기부터 윤 대통령 탄핵 촛불집회를 벌였습니다.

정치 양극화의 주술에 걸려드는 것은 정치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선거에서 승부가 가려졌는데도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진정한 승복은 하지 않습니다. 상대를 정치 파트너로 인정하지도 않습니다. 대화와 타협이라는 정치의 기본 원리가 작동할 수 없습니다. 심지어 정치인들이 상대 후보를 찍은 유권자들까지 증오하기도 합니다. 윤 대통령이 한동안 입에 달고 살던 ‘기득권 카르텔’, ‘종북 주사파’ 등의 표현은 그냥 나온 것이 아닙니다. 윤 후보를 찍은 유권자들을 ‘2찍’이라고 표현한 이 대표도 마찬가지입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21일 대구 중구 서문시장에서 시민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4·10 22대 총선을 앞두고 선거를 지휘하는 한 위원장과 이 대표의 입도 점점 거칠어지고 있습니다.

“통합진보당 후예와 범죄자 연대가 이 나라를 장악하게 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한 위원장, 3월21일 대구 서문시장)
“5·18 역사 자체를 부정하고 폭도로 매도하는, 그 정신 나간 집단, 반역의 집단을 반드시 심판해달라.”(이 대표, 3월21일 광주 국립5·18민주묘지)

두 사람의 표현이 너무 살벌하지 않습니까? 큰일입니다. 가장 큰 걱정은 총선 이후입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선거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지는 쪽에서 승복하지 않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습니다. 지금의 준내전 상태, 심리적 내전 상태가 계속될지도 모릅니다. 온 나라가 두 쪽으로 갈려 2026년 6월3일 9회 지방선거, 그리고 2027년 3월3일 21대 대통령선거를 향해 달려갈 것 같습니다. 인구소멸, 지방소멸, 북한 핵 등 국가의 존립과 국민의 생존을 위협하는 문제는 하나도 해결하지 못한 채 말입니다. 이러다가 우리나라 망하면 어떻게 하지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정치부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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