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언론관 바뀌지 않으면 ‘제2의 황상무’ 나온다

김효실 기자 2024. 3. 23. 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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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승전21]

MBC 누리집 갈무리

“섬뜩하다.” 이호찬 전국언론노동조합 엠비시(MBC)본부장은 2024년 3월18일 <한겨레21>과의 통화에서 ‘공포스럽다’ 같은 표현을 수차례 썼다. 공포영화 얘기는 아니다. 3월14일 대통령실 황상무 당시 시민사회수석은 출입기자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MBC 기자를 향해 이렇게 말했다. “MBC는 잘 들어. 내가 정보사 나왔는데 1988년에 경제신문 기자가 압구정 현대아파트에서 허벅지에 칼 두 방 찔렸다.” 이른바 ‘정보사 언론인 회칼 테러 사건’을 언급한 것이다.

이 사건은 군 정보사령부 소속 군인들이 당시 한 경제신문 사회부장이던 오홍근 기자를 회칼로 습격해 크게 다치게 한 일이다. 수사 결과 상관들이 군을 비판하는 오 기자의 칼럼에 불만을 품고 지시한 사실이 드러났다. 황 수석은 같은 자리에서 “농담”이라고 했지만, 웃어넘길 수 없는 발언이었다. 고위공직자가 실제 피해자가 존재하는 사건을 사례로 ‘정권 비판 보도할 때 조심하라’는 취지에서 꺼낸 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호찬 본부장은 “‘회칼 테러’ 발언보다 더 무서운 건 (3월18일 내놓은) 대통령실 입장문”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실은 입장문에서 “특정 현안과 관련해 언론사 관계자를 상대로 어떤 강압 내지 압력도 행사해본 적이 없고, 하지도 않을 것”이라며 “언론의 자유와 언론기관의 책임을 철저하게 존중하는 것이 국정철학”이라고 했다.“국민을 무시하는 입장문이다. 대통령실은 같은 입장문에서 ‘우리 정부는 과거 정권들과 같이 정보기관을 동원해 언론인을 사찰하거나 국세청을 동원해 언론사 세무사찰을 벌인 적도 없고, 그럴 의사나 시스템도 없다’고도 했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 출범 뒤 벌어진 일들을 국민이 모를까? MBC만 해도 방송통신위원회,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고용노동부, 검찰, 국가권익위원회 등이 동원돼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장·이사가 강제해임되는 등 압박을 받았다.”

―‘내로남불’이라는 얘긴가.“윤 정부는 자꾸 과거 정부의 언론장악을 비판하는데, 이 정부가 전 정부들보다 더하다. 대통령실 입장문을 보면 이 정부가 MBC는 물론 티비에스(TBS) 폐국, 와이티엔(YTN) 사영화, 한국방송(KBS) 사장 교체 등을 추진한 건 언론장악 시도가 아니라 ‘공영방송 정상화’ 과정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인식 차이가 너무 커서 ‘이 정부의 언론장악은 아직 제대로 시작하지 않은 것인가, 앞으로 얼마나 더 심해질까’ 생각까지 든다.”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 조합원들이 2024년 3월18일 서울 마포구 MBC 본사 앞에서 황상무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 사퇴를 촉구하는 플래시몹을 진행했다. 대통령실은 황 수석의 ‘회칼 테러’ 발언 엿새 만인 3월21일 윤석열 대통령이 황 수석의 사의를 수용했다고 밝혔다.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 제공

―(*3월20일 추가 인터뷰) 사과문만 내고 버티던 황 수석이 마침내 자진 사퇴했다.“아침 6시49분에 출입기자들에게 ‘윤석열 대통령은 황상무 수석의 사의를 수용했습니다’라고 한 줄 보냈더라. 어떤 배경 설명이나 사과, 유감 표명도 없었다. 총선을 앞두고 국민 여론이 악화하니까 마지못해 ‘꼬리 자르기’로 무마하려는 것뿐이라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여러 기자회견에서 대통령과 대통령실의 언론관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 대통령이 그간의 언론탄압을 과오로 인정하지 않으면 그보다 더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 이미 이 정권의 왜곡된 언론관이 여기저기 퍼져 언론이 비판 보도를 내기 어려운 ‘위축 효과’를 유도하고 있다. 어제(3월19일) 열린 방송문화진흥회 이사회만 봐도 정부·여당이 추천한 이사 일부는 황 수석을 옹호하며 MBC가 황 수석의 ‘사적’ 발언을 왜곡 보도한 것이라 주장했다. 대통령실 인식 자체가 바뀌지 않으면 ‘제2, 제3의 황상무’가 나올 수밖에 없다.”

2023년 3월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장에 출마하면서 “MBC 대내외 상황을 한 치 앞도 전망하기 어렵다”며 “외부적으로는 공영방송 MBC의 존립마저 뒤흔들려는 집권세력의 마수가 더 거칠게 뻗쳐올 것”이라고 전망했다.본부장 임기 1년이 지났는데 소감은. “(집권세력의 언론탄압 강도가) 예상보다 훨씬 거친 것 같다.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 성숙도를 생각했을 때 이 정도까지 몰아칠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강제해임으로 사장을 교체하려는 시도는 법원이 제동을 걸었지만, 올해 8월 MBC 대주주인 방문진 이사진의 임기가 끝난다. 더 큰 탄압 시도가 이어지리라 예상한다.”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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