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혁신당 의석수가 여야 승패 좌우한다 [신창운의 미리 보는 4·10 총선]
5석 미만 그치면 선거 패배에 일조했다고 평가받을 수도
(시사저널=신창운 한국여론평판연구소 소장)
여야 공천이 마무리됐다. 3월21~22일 후보자 등록에 이어 선거 기간이 개시되는 28일부터 본격적으로 선거운동이 펼쳐진다. 후보 선택 기준 1순위가 인물로 나오지만, 여론조사 응답에서만 그럴 뿐이다. 역대 총선에서 봤듯이 유력 정당 간 경쟁구도의 위력 앞에서 허무하게 사라져간 인물이 한둘이 아니었다.
이번 총선의 경우 254석이 걸려있는 지역구에선 기존 거대 정당, 즉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간 대결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녹색정의당, 개혁신당, 새로운미래 등 제3지대가 틈을 비집고 들어가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힘에 부치는 모양새다. 46석이 배정된 비례대표에선 더불어민주연합, 국민의미래란 이름의 양당 위성정당과 함께 '지민비조(지역구는 민주당, 비례대표는 조국혁신당)' 구호를 내세운 조국혁신당이 3자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민주당 지지자 상당수가 조국혁신당 지지
최근의 총선 여론조사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조국혁신당이다. 3월7~9일 전 국민 3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KBS-한국리서치 조사에서의 양대 정당 및 정당 후보 지지율 격차는 오차범위 언저리에 위치하고 있다. 지역구 사정에 따라 한 자릿수 이내의 격차를 보이고 있는 지역이 늘어날 경우 다수당 예측이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나 비례대표의 경우엔 어느 정도 윤곽을 잡을 수 있다.
비례대표 투표 정당을 묻는 질문에서 국민의힘이 주도하는 '국민의미래'가 32%로 가장 높았고, 조국혁신당이 17%,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하고 있는 '더불어민주연합'(이하 민주연합)이 16%로 그다음이었다(오차범위 ±1.8%p). 3월12~14일 100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도 국민의미래 34%, 민주연합 24%, 조국혁신당 19% 순이었다(오차범위 ±3.1%p). 시사저널이 케이스탯리서치에 의뢰해 3월18~19일 수도권 거주자 100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는 국민의미래 28.5%, 조국혁신당 22.3%, 민주연합 18.3%로 나타났다(오차범위 ±3.1%p). 수도권에서 조국혁신당의 지지세는 더 뚜렷했다.
세 가지 특징을 포착할 수 있다. 첫째, 국민의힘 지지자 대다수가 국민의미래를 지지하는 것과 달리 민주당의 경우엔 지지자 상당수가 민주연합 대신 조국혁신당을 지지하고 있다.
둘째, 서울, 인천·경기 등 수도권에서 민주연합과 조국혁신당에 의해 국민의미래가 포위당하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수도권 판세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이 비례대표라는 매개를 통해 정권심판론 몰이에 나설 경우 박빙의 승부처가 많은 수도권에서 상당한 위력이 예상된다. 비례대표뿐 아니라 지역구에서도 국민의힘 후보들을 어렵게 만들 수 있다.
셋째, 진보 성향은 물론 중도 성향 중 상당수가 조국혁신당에 호의적인 반응을 나타냈다. 제3지대 약화와 맞물려 중도층 향배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반윤(反尹) 반명(反明)" 구호 아래 중도층을 타깃으로 하고 있는 개혁신당이 힘을 못 쓰고 있는 상황에서 조국혁신당이 대체재로 부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여느 총선과 마찬가지로 지역별로 수도권, 이념 성향별로 중도층 표심이 전체 판세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 만약 이들 계층에서 조국혁신당 강세가 지속된다면 진보진영의 승리가 무난할 수 있다. 지지 여부와 무관하게 조국혁신당이 총선 판세의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는 셈이다. 결국 조국혁신당이 민주당에 미칠 영향력을 세부적으로 점검하면, 민주-국힘 양당 대결의 승자 추정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공천 불협화음 속에서 희미해진 정권심판론을 재점화했다는 점이 가장 큰 플러스 요인이다. 중도 표심에 호소하고 있는 개혁신당과 민주당 견제에 방점을 두고 있는 새로운미래와 달리 조국혁신당은 선명한 대여 투쟁을 표방하고 있다. 민주당과의 시너지 효과를 우려하고 있는 국민의힘이 '방탄동맹'으로 몰아붙이는 모습을 보더라도 정권심판론 재점화는 조국혁신당 출범이 가져온 최대 산출물로 평가할 수 있다.
조국당 찍으러 갔다가 지역구 민주당에 한 표
비례대표에서 조국혁신당을 찍으러 투표장에 간 김에 지역구 민주당 후보에게 한 표를 보태겠다는, 이른바 '비조지민' 현상도 주목해야 한다. 당초 진보층 사이에서 민주당의 '비명횡사' 공천에 실망한 나머지 투표장을 찾지 않으려던 유권자들이 조국혁신당을 찍기 위해 다시 발걸음을 투표장으로 돌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한 조국혁신당 창당 이후 비례대표에서 민주연합과 조국혁신당을 합친 지지율이 진보진영의 전체 파이를 키우고 있다. KBS-한국리서치 1차 조사(2월15~17일) 때 비례대표에서 민주연합은 28%였다. 조국혁신당 출범 이후엔 민주연합(16%)과 조국혁신당(17%)을 합쳐 33%로 지지율이 높아졌다.
지역구 후보가 없는 조국혁신당이 정당 및 정당 후보 지지율에서 3~5%를 얻고 있는 것도 주목된다. 이들은 지역구 투표에서 민주당 후보를 찍을 수밖에 없다. 비례대표에서도 민주연합에 표를 몰아 달라는 민주당의 '몰빵론'에 대한 견제 차원에서 조국혁신당 약진이 민주당 지역구 승리를 가져온다는 '비조지민' 카드를 꺼내든 배경이기도 하다. 실제로 몇몇 지역구 여론조사에서 조국혁신당 지지율이 높을수록 민주-국힘 후보 간 지지율 격차가 더 벌어지는 현상이 목격되고 있다.
물론 민주당에 해로운 측면이 없는 건 아니다. 통합 및 중도를 지향해 역대 선거, 특히 총선에서 승리를 쟁취했던 경험으로 볼 때 '친문학살'과 '방탄동맹'이란 국민의힘 공격에 중도층 일부와 민주당 내 보수 성향의 경계심이 높아질 수 있다. 경선 및 후보 공천 과정에서 지지층 중 일부가 떨어져 나간 상황인 데다 중도층의 '안티 조국'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선명한 대여 투쟁도 좋지만 공천 과정에서의 불협화음 때문에 마음이 상한 수도권의 민주당 지지자들이 조국혁신당에 표를 주기 위해 과연 진짜 투표소로 갈 것인지를 회의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또한 비례대표에서 민주연합과 조국혁신당이 민주당 지지층을 놓고 서로 경쟁하는 관계, 즉 제로섬 게임을 펼쳐야 하는 상황도 고민거리다.
결론적으로, 조국혁신당 비례대표 의석수에 따라 이번 총선 승부가 판가름 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만약 두 자릿수 의석을 획득해 원내 3당 자리를 차지할 경우 민주당과 함께 진보 계열 정당의 승리로 기록될 수 있다. 그러나 2020년 총선 때의 민주당 위성정당이었던 열린민주당 사례처럼 5석 미만의 한 자릿수 의석에 그칠 경우 광범위한 정권심판론 정서에도 선거 패배에 일조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
거대 양당을 중심으로 한 준연동형 위성정당 파문이 이번 총선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2020년에 비해 달라진 건 조국혁신당이란 제3의 정당이 출범해 양당 위성정당을 위협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민주당의 비례대표 위성정당을 하나 더 제공함으로써 진보 성향 지지자의 분화와 이탈을 효과적으로 막아냈다는 의미가 있다. 만약 이번 총선에서 민주당을 비롯한 진보진영이 승리한다면 '지민비조'는 물론 '비조지민'(비례에서 조국혁신당이 약진하면 민주당이 지역구에서도 이롭다는 조국혁신당의 주장)이란 단어도 함께 기억해야 할 것이다.
한국갤럽과 KBS-한국리서치, 시사저널-케이스탯리서치 여론조사와 관련해 더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고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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