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섭이 답해야 할 3가지 '대통령실 통화·회수 과정·재검토 하명' [서초동M본부]
도피성 출국 의혹이 일었던 이종섭 주호주대사가 급거 귀국했습니다. 호주 출국 열하루 만인 지난 21일 오전, 싱가포르를 경유해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언론과의 접촉을 피했던 출국 때 모습과 달리, 이번엔 공항에 대기하던 취재진과 만나 자신의 입장을 밝혔습니다.
이날 기자들과의 문답 내용입니다.
기자 : 도피 출국 논란이 있었는데, 그걸 의식하셔서 입국하신 건지요? 이종섭 : (시선 돌리며) 또 어떤? 기자 : 귀국 관련 해서 대통령실에서 미리 연락받으신 사실이 있으신가요? 이종섭 : 네. 추가 질문 해주시면 제가 한꺼번에 답변을 드릴게요. 또 다른 질문? 기자 : (방산) 공관장 회의 일정은 어제 전달받으셨나요? 이종섭 : 제가 전체적으로 말씀 드리겠습니다. 기자 : 사의 표명하실 생각 있나요? 이종섭 : (잠시 기자를 바라보다) 또 다른 질문 있습니까? 기자 : 이번 공수처 조사 일자, 언제쯤으로 생각하고 오셨습니까? 이종섭 : 제가 말씀 좀 드리겠습니다. 저와 관련하여 제기됐던 여러 가지 의혹들에 대해서는 제가 이미 수차례에 걸쳐서 그러한 의혹들이 사실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게 말씀드렸기 때문에 여러 가지 의혹들에 대해서 오늘은 다시 중복해서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제가 임시 귀국한 것은 방산 협력과 관련한 주요국 공관장 회의 참석하기 위한 겁니다. 체류하는 기간 동안에 공수처와 일정이 조율이 잘 되어서 조사받을 수 있는 그런 기회가 있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제 향후 일정과 관련해서는 아마 다음 주는 방산 협력과 관련한 업무로 상당히 일이 많을 것 같고요. 그다음 주는 지금 한-호주 간에 계획돼 있는 외교장관, 국방부장관 2+2 회담 준비와 관련한 업무를 많이 하게 될 겁니다. 그래서 결국은 말씀드렸던 이 두 가지 업무가 전부가 호주 대사로서 해야 할 중요한 업무입니다. 기자 : 총선 이후까지 계시나요? 이종섭 : (질문자 보지 않고) 그래서 그 업무에 충실하도록 하겠습니다. 예 이상입니다. 기자 : 대통령실 연락 받으신거 있으신가요? 이종섭 : 이 정도로 마치죠
어떻게 보셨습니까? 이 대사는 쏟아지는 질문에 하나 하나 답하지 않고, 질문을 모두 듣고 한 번에 말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더니 채상병 사건 수사외압 의혹에 대한 질문엔 두루뭉술하게 답하고 자리를 떴습니다. 얼추 일곱 가지 질문이 나왔습니다. 후하게 쳐도 답을 했다고 볼 수 있는 건 입국 경위에 대한 질문 한 건 뿐입니다.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해" 앞서 출국 당시 인천공항 출국 게이트 앞에서 만난 MBC 기자에게 이 대사가 한 말입니다. 부임지인 호주에서 국내선을 갈아타면 다시 '윗선'에 대해 묻자, "뭘 여기까지 오고 그랬냐"고 답했을 뿐입니다. '왜 이렇게까지', '뭘 여기까지'란 말에서, 그리고 귀국 문답에서까지 전직 국방부 장관은 매번 답을 피했습니다. 오히려 "왜 이렇게까지"라고 되물었습니다. 그래서 왜 이렇게 취재하고 보도하고 있는지 답하고, 다시 제대로 물으려고 합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해병대에 자원입대한 21살 청년이 순직했습니다. 적군과의 전투 때문이거나 실전 같은 훈련 탓도 아니었습니다. 안전장비도 없이 거센 물살 속 수색작업에 투입됐다 숨졌습니다. 해병대는 사고 경위과 책임자를 조사해 유가족에게 꼭 밝히겠다고 약속했지만, 당초 장관 결재까지 끝났던 수사 결과 발표 계획은 당일 돌연 취소됐고, 경찰에 넘긴 수사기록도 그날로 회수됐습니다. 조사 책임자인 수사단장이 항명죄로 입건됐습니다.
이 대사는 채상병 사망 당시 국방부 업무의 최고 결정권자이자 책임자로서 장관이란 가장 높은 자리에 있었습니다. 재임 기간 자신의 책임 하에 벌어진 일에 대해, 국민들에게 투명하게 설명할 책임이 있습니다. 더구나 이 대사는 은퇴한 군인으로 잊혀지길 선택하지 않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특명전권대사로 다시 공직에 나섰습니다. 이 대사가 설명하지 않겠다고 한다면, 언론에겐 진실이 무엇인지 계속해서 질문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종섭 대사는 MBC의 추적 보도로 알려진, 최소 세 가지 의혹에 구체적으로 답해야 합니다.
① 작년 7월 31일 대통령실 번호로, 누구와 어떤 내용의 통화를 했습니까?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확보한 통화내역은 이렇습니다. 이 대사는 이날 11시 50분쯤 대통령실 유선전화 번호로 누군가와 통화를 했습니다. 잠시 뒤인 11시 57분 당시 국방장관인 이 대사는 김계환 해병대사령관에게 전화했습니다. 급히 예정된 수사결과 발표를 취소하고 국회 설명회도 중단시키기 위해서였습니다. 이 대사는 채상병 수사 건으로 "대통령실과 통화한 것은 없다"면서도 이날 이 통화 기록에 대해서 분명한 설명을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대통령실도 별다른 해명 없이 침묵 중입니다.
정종범 해병대 부사령관은 이후 긴급 대책회의에서 이종섭 당시 장관이 "경찰에 필요한 수사자료만 주면 된다", "누구누구 언급하면 안된다"고 지시했다고 군검찰에 진술했습니다. 자신의 메모도 제시했습니다. 해병대 수사단은 해병대 1사단장을 봐주기 위해 '혐의자에서 빼라', '통기록으로만 경찰에 넘겨라'라고 외압을 가했다고 주장합니다. 장관 지시 메모는 이와 일치합니다. 그러나 정 부사령관은 2회 군검찰 진술에서 말을 바꿉니다. 유재은 법무관리관의 조언 일부를 장관 지시로 착각했는 겁니다. 반면 유 법무관리관은 "긴급토의 때 발언한 것 말고 장관님께 따로 부사령관에게 어떤 지시를 하는데 법적 조언한 것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 부분 역시 이 대사의 해명이 필요합니다.
② 경찰에 넘어간 수사기록을 다시 가져올 때, 대통령실과 협의했습니까?
작년 8월 2일, 예상과 다르게 해병대 수사단이 임성근 1사단장 등 8명을 혐의자로 적어 경찰에 수사기록을 넘깁니다. 해병대 사령관은 해외 출장 중인 이 대사에 11시쯤 직접 이 사실을 긴급 보고합니다. 2시반쯤 군검찰단이 기록 회수를 논의하고 이날 바로 사람을 보내 9백여쪽 수사기록을 회수해옵니다. 법적 근거가 적히지 않은 사건 인계서 한 장만 경찰과 주고 받았습니다. 압수수색이나 임의제출 같은 법적 절차도 거치지 않았습니다. 군검찰단 실무자는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했지만 검찰단장이 가져오라고 하니 지시에 따라 기록을 가져왔다"는 취지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진술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사전에 다 조율된 것 같았다"고 느꼈다고 합니다.
알고보니, 대통령비서실의 공직기강비서관실 행정관이 경찰 국가수사본부에 사전에 연락해, 경찰과 국방부 사이 징검다리 역할을 했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또다시 대통령실이 사건 처리 과정에 개입한 정황이 나타난 겁니다. 이 대사는 당초 MBC에 8월 2일 당시는 해외 출장중이라, 기록을 회수한 뒤 사후에 보고 받았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 관여한 당시 국방부 고위 관계자는 MBC와의 통화에서 "장관이 해외에 있었지만, 연락이 되는 상황이라 직접 통화하며 챙겼다"고 밝혔습니다. 이례적인 이첩 회수에, 국방부 최고 책임자였던 이종섭 대사가 어디까지 관여했는지 설명해야 합니다. 대통령실 누구와, 왜 협의했는지 밝혀야 합니다.
③ 조사본부에 왜 '재조사'가 아닌 '재검토'를 하명했습니까?
MBC가 국방부 관계자들을 취재한 내용을 종합하면 8월 2일 경찰에서 수사 기록을 회수한 국방부는 이후 일주일간 갈팡질팡했습니다. 내부 이견도 표출됐습니다. 국방부 조사본부는 "해병대 수사단이 이미 수사한 사건인데, 같은 군사경찰인 조사본부가 재검토해 어떤 결론을 내놔도 신뢰받기 어렵다"고 반발했습니다. 상명하복의 군대에서 '못 하겠다'는 얘기가 나온 겁니다. 그러자 결국 이종섭 당시 장관이 직접 구두로 '하명', 즉 명령을 내리면서, 조사본부가 기록 '재검토'를 맡게 됩니다.
재검토를 떠맡게 된 조사본부는 문서로 근거를 남기로 했고, 실제 재검토 명령도 문건 형태로 남겨뒀습니다. 장관 명의 공문에 첨부된 법률 검토 문건엔, "구체적으로 혐의가 인정되는 관련자를 경찰에 이첩하라", "인과관계 등이 명확하지 않은 경우 사실관계를 정리하여 경찰에 송부하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진술을 더 받는 등 추가 조사는 하지 말라는 지시도 하달됐습니다. 대신 기존에 작성된 기록을 재검토 하는 작업만 하도록 했습니다. 사실상 시작부터 사건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틀을 짜고, 지침을 내린 것이란 지적이 나옵니다. 실무진은 "이 사건이 과거 사이버사령부 댓글 조작 사건처럼 될 수 있다"고 우려하는 문자를 보냈습니다.
재검토 결과 발표 나흘전 이종섭 당시 장관 주재 중간 점검회의까지 열립니다. 40분간 진행된 회의에서, 이종섭 당시 장관에게 조사본부가 진행 상황과 검토 의견을 알렸습니다. 검찰단장과 법무관리관 등 다른 참모들도 참석해 자신들의 검토 의견을 제시합니다. 조사본부는 이들의 의견을 반영해 이후 대대장 2명으로 혐의자를 좁혀 경찰에 사건을 넘깁니다. 그런데도, 이 전 장관은 국회에서 중간 보고 자체가 없었다고 부인해왔습니다.
이 대사는 참석자를 MBC가 참석자들을 확인해 추궁하자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 검토가 끝났다는 대화만 했다"며 정식 보고는 아니었다는 의미였다고 해명했습니다. <보고>의 사전적 의미는 "일에 관한 내용이나 결과를 말이나 글로 알림"이라고 돼 있습니다. 통상적 언어 사용과 맞지 않는 말장난 같은 주장입니다. 국방부 지휘부가 조사본부 재검토 결과에 영향을 줬다는 비판을 피하기 위한 방편으로 보입니다. 다시 제대로 답해야 합니다. 중간보고는 왜 숨겼습니까?
이종섭 대사의 임명, 부임, 귀국까지 매번 이례적인 일들이 벌어집니다. 자신의 지시를 받은 부하들은 피의자로 수사를 받고 있는데, 책임자인 이 대사는 인사검증을 뚫고 특임 공관장으로 임명됐습니다. 출국금지 사실이 보도되자, 곧바로 출국금지 이의신청이 받아들여져 현지에 부임합니다. 논란이 커지니, 이번엔 부랴부랴 떠난 게 무색하게 급히 귀국합니다. 정부 회의 참석 때문이라지만 정작 그 회의의 참석자와 날짜가 급히 정해진 정황이 드러납니다. 한국과 호주의 양자회담은 공관장인 이 대사가 호주 현지에서 대사만 만날 수 있는 호주 고위직과 협의하며 실무를 지휘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대사는 회담 준비를 이유로 한국에 들어와 머물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소환을 촉구합니다.
의혹이 풀리는 게 아니라 더 쌓이는 형국입니다. 답해야 할 질문을 피해다보니 사태가 여기까지 온 것으로 보입니다. 이 대사의 응답을 기다립니다.
나세웅 기자(salto@mbc.co.kr)
기사 원문 - https://imnews.imbc.com/news/2024/society/article/6582663_3643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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