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해주자 연인이라 착각…교제 거절하자 세모녀 죽이고 시신과 '3일 동거'
피해자 집에 머물며 맥주 마시고 엽기행각 [사건속 오늘]
(서울=뉴스1) 김학진 기자 = 혼자 마음에 품고 있던 여성이 교제를 거절하자 그는 이성을 잃었다. 자신만의 집착과 망상이 서로의 교감이었고 사랑이었다고 착각한 그가 택한 극단적 행동은 일가족 살인이었다.
4년 전 오늘 서울 노원구에 위치한 한 아파트에서 50대 여성 1명(59)과 20대 여성 2명(각각 24, 22)이 살해됐다.
사건 발생 이틀 뒤인 3월 25일 20시 20분쯤 지인이 연락을 받지 않는다는 신고 전화를 받고 경찰이 출동했다.
현장에 도착한 경찰은 사건 현장에서 3구의 시체와 함께 그 옆에서 자해를 시도해 의식을 잃은 남성을 발견했다. 병원으로 이송된 그는 생명엔 지장이 없었다. 의식을 회복한 그는 경찰에 범행 일체를 자백했다.
◇ 살해 후 딸인 척 답장…모성애 이용해 가족들 집으로 불러들여 범행
2021년 3월 23일 오후 3시쯤, 김태현은 집에서 나와 5시쯤 A 씨 집 앞에 도착한 후 A 씨의 단골 PC방에 들렀다. 20분 동안 컴퓨터는 하지 않고 탐색한 것으로 보아 A 씨의 동선을 파악하려던 의도로 보였다.
5시 25분, 김태현은 노원구의 한 슈퍼에 들어가 흉기를 훔쳤다. 슈퍼 주인이 의심할까 봐 훔친 흉기를 숨긴 채 현금으로 다른 물건을 구매하고 나왔다. 5시 30분쯤, 범인은 온라인 게임에서 알게 된 A 씨의 자택인 서울 노원구 중계동의 한 아파트에 찾아가 태연히 엘리베이터를 타고 퀵서비스 기사로 위장해 A 씨의 집 앞에 찾아갔다.
당시 집에 홀로 있던 A 씨의 여동생은 예정에 없던 퀵 서비스가 왔다는 연락을 받고 기사에게 "물건을 문 앞에 놓고 가라"고 했지만 퀵서비스 기사로 위장한 김태현은 문이 열리기까지 기다려 집으로 들어갔다.
딸의 문자를 받은 어머니는 무슨 물품이 온 건지 물었지만 답이 없었다. 연락이 안 되는 상황이 걱정돼 "뭐 하냐? 반신욕 하냐"고 문자를 보내자 그제야 "응"하고 답장이 왔다. 그러나 이 답장은 A 씨의 여동생이 아닌 김태현이 한 것이었다. 그 상황은 이미 그녀가 숨진 뒤였다.
신변 이상을 직감한 어머니는 10여 차례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끝내 통화는 연결되지 않았다. 김태현은 아파트에 홀로 있던 A 씨 여동생(22)을 살해한 뒤 5시간을 같은 곳에서 기다린 A 씨의 어머니(59), 그로부터 1시간 뒤 돌아온 A 씨(25)를 연달아 살해했다.
◇ 다른 아이디로 피해자에게 접근해 휴무일 파악…살해 뒤 태연히 맥주 마셔
김태현은 살인을 한 이후 경찰에 검거될 때까지 사흘간 외출하지 않고, 세 모녀의 시신이 있는 A 씨의 집에 머물며 밥을 챙겨 먹고, 집에 있던 맥주를 마시는 엽기 행각을 벌였다.
이어 자신의 휴대전화를 초기화하는 등 증거인멸을 시도하고 목과 팔목, 배 등을 수차례 자해했다. 김태현은 경찰 조사에서 범행동기로 "단체 대화방에 속한 사람들과 여러 번 정기 모임을 통해 친해졌는데 A 씨가 사람들에게 자신을 깎아내리는 듯한 이야기를 해서 자존심이 상했다"고 진술했다. 또 A 씨만 살해하려고 했고 A 씨 동생과 모친을 살해한 것에 대해서는 우발적이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조사 결과 김태현은 A 씨에게 접근하기 위해 다른 아이디로 게임에 접속해 휴무일을 파악했다. 또 그는 범행에 필요한 흉기와 옷을 준비하고, 사람을 빨리 죽이는 방법 등에 대해서도 미리 검색한 사실이 드러났다.
◇ 게임을 통해 만난 여성의 호의를 호감으로 착각 "우리는 잠재적 연인"
A 씨와 김태현의 첫 만남은 사건 발생 3달여 전인 2020년 12월쯤 시작됐다. 당시 김태현은 온라인 게임 유저 모임에서 A 씨를 본 뒤 줄곧 그를 스토킹해 왔고, 당시 모임에서 말다툼이 벌어져 A 씨를 포함 참석자들은 모두 김태현의 연락처를 차단했다.
하지만 김태현은 A 씨가 단체 대화방에 올린 택배 사진을 보고 A 씨 집 주소를 알아냈고, 이후 A 씨를 계속 찾아갔다. 수차례 전화를 해도 연락이 닿지 않자 집 앞에서 무작정 몇시간씩 기다리고 공중전화로 전화를 시도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2주간 이어진 무차별적인 집착에 A 씨는 결국 전화번호를 바꿨으며, 귀가할 때마다 집에 돌아서 들어가야 한다고 친구들에게 고충을 토로하기도 했다.
김태현은 진술에서 "A 씨는 내 생일 때 문화상품권을 선물해 줬고, 단둘이 술을 마신 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친구 사이에도 그 정도는 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우리 사이는 다르다, 결정적인 게 있다. 내가 사는 게 힘들어서 운 적이 있는데, 그녀가 내 손을 잡아 주면서 위로했다. 이게 연인 관계 아니면 뭐겠냐"라고 말했다.
하지만 A 씨는 평소 남녀 모두에게 친절하고 위로를 잘해주는 성격이었다고 한다. 결국 상대방의 호의를 호감으로 착각해 일방적으로 '잠재적 연인' 관계로 여기고 비뚤어진 집착 끝에 결국 끔찍한 범행을 저지른 것이다.
◇ 국민청원 25만 넘어 '신상공개'…불법촬영·스토킹 전과 있었다
2021년 3월 29일, 청와대 국민청원에 해당 남성의 신상공개를 요구하는 청원이 게시됐고, 4월 4일 25만 명을 넘었다. 신상공개심의위원회는 세 모녀 살인사건 가해자 김태현의 신상공개를 결정했다.
◇ 성별·나이 상관없이 집착…남성 스토킹, 군 시절 속옷 등 절도
김태현의 신상이 공개된 이후, 김태현에 관한 제보가 이어졌다. 과거 그와 인연이 있었던 사람들은 김태현에 대해 평소엔 조용하지만 돌연 평범하지 않은 행동을 보이곤 했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증언에 따르면 김태헌은 장난을 치다가도 갑자기 욕을 하고 화를 내는 등 분노조절장애의 모습을 보였다. 특히 그는 성별, 나이와 상관없이 누군가에 집착하기도 했다. 한 남성 제보자는 자신이 중학생 시절 19세였던 김태현이 스마트폰을 사주며 접근하기 시작하며 호의를 베풀며 다가왔지만, 자신이 약속을 거절하자 자해 사진 등을 보내며 죽이겠다는 협박을 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또 그는 자신이 일하던 PC방에서 절도를 일삼았고, 육군 훈련소 입소 시절에도 도벽이 있었다는 증언이 나왔다. 김태현의 한 훈련소 동기는 "김태현은 훈련소 생활을 하는 동안 동기들의 팬티나 활동복 같은 걸 훔쳤다. 자기가 가진 것을 더 많게 하려는 욕심이 있었다"고 밝혔다.
◇ '세 모녀 살해' 김태현 2심도 무기징역…"가석방 없는 종신형"
검찰은 2021년 9월 13일 김태현에게 사형을 구형하고, 2021년 10월 12일 1심서 무기징역이 선고됐다. 유족은 보복살인의 두려움 등을 호소하며 항소했다. 당시 사형을 선고하지 않은 이유를 납득하지 못하겠다는 반응이 많았다.
2022년 1월 19일 2심에도 무기징역이 선고됐다. 또한 재판부는 김태현의 무기징역형은 가석방 없는 절대적 종신형으로 집행돼야 마땅하다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2022년 4월 14일 김태현은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이 확정돼 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다.
khj80@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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