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오마카세 인기에 갸우뚱...같은 듯 다른, 일식·한식 열풍 [같은 일본, 다른 일본]
편집자주
우리에게는 가깝지만 먼 나라 일본. 격주 토요일 연재되는 ‘같은 일본, 다른 일본’은 미디어 인류학자 김경화 박사가 다양한 시각으로 일본의 현주소를 짚어보는 기획물입니다.
◇일본 열도로 몰려오는 한식의 ‘뉴커머’
일본의 외식 문화에서 한식은 오래전부터 중요한 한 축이었다. 예를 들어, ‘야키니쿠’(焼肉, 육류를 구워 먹는 요리)는 한반도에서 이주한 ‘자이니치’(在日, 8·15 해방 이후 일본에 남은 한국인과 북한 국적의 조선인을 아우르는 호칭)들이 개척한 음식이다. 일본에서는 천 년이 넘도록 육류의 취식이 금지되었다. 20세기에 들어서야 고기를 먹기 시작했지만 식재료와 조리법에 대한 지식이 일천했다. 당시에 낯선 땅에서 차별과 가난으로 고통받던 자이니치들이, 일본인이 먹을 줄 몰라서 버렸던 살코기 이외의 육류 부속품을 거두어서 구워 먹었던 것이 야키니쿠의 기원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이후 이 요리는 반세기 넘게 일본 식문화의 특징을 받아들이면서 독자적인 맛과 상차림의 문법을 갖추었다. 다양한 조리법으로 육류를 즐길 줄 아는 한식 조리법에서 유래는 했지만 한일 양국의 식문화가 융합된 ‘하이브리드’ 메뉴로 발전한 것이다. 자이니치의 고된 역사가 고스란히 새겨져 있는 음식이 지금은 일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외식 요리 중 하나가 되었다.
김치나 명란젓(일본에서는 ‘멘타이코’라고 불리며 후쿠오카 지역의 명물로 유통된다) 등도 식민지 시대에 일본에 소개되어 식문화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됐다. 다소 변형된 형태이기는 하지만, 한반도에서 유래한 식문화가 일본 외식 문화에 이식되어 중요한 흐름이 된 것은 사실이다. 요즘에는 이런 자이니치 요리들이 한국으로 역수입되어 일식인 양 한국에 소개되기도 한다. ‘야키니쿠’는 깔끔한 상차림과 일본풍 소스가 특징적인 일식 소고기 구이로, 일본인이 버린 소고기의 내장을 활용해 찌개처럼 끓여먹었던 ‘모츠나베(もつ鍋)’는 일본식 곱창전골로 탈바꿈했다. 식민지 시대의 아픈 역사 속에서 생긴 음식이 이색적인 식문화가 된 현실이 좀 서글프다.
그런데 최근에는 이런 흐름과는 무관하게 새로운 한식 열풍도 불고 있다. 현재 한국 본토의 취향을 충실하게 반영한 한국의 외식 문화가 일본의 젊은이들 사이에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일본 열도로 몰려오고 있는 한식의 ‘뉴커머’들인 셈이다. 메뉴뿐 아니라 인테리어, 분위기까지 철저하게 ‘한국풍’을 어필하는 음식점들이 도쿄나 오사카의 번화가에서 성업 중이다. 젊은 층이 트렌드를 이끌고 있는 만큼 서민적인 분위기의 선술집이 많다. 내부 인테리어는 한국어 포스터나 한국식 소품으로 도배를 했고 아예 한국어 간판을 내걸기도 한다. K팝이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떠들썩한 분위기 속에서 일본 젊은이들이 드럼통 위 불판에서 열심히 고기를 굽는다. ‘초록색 병’ 소주를 기울이며 거나한 얼굴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어수선한 분위기까지 한국에 흔한 삼겹살집이나 선술집과 똑 닮아서 여기가 서울의 뒷골목인가 도쿄의 번화가인가 혼란스러울 정도다. 한국의 서민적 외식 문화가 일본의 젊은이들에게 신선하고 이국적인 경험으로 어필한다는 점이 사뭇 흥미롭다.
◇한국의 외식업계를 점령한 일본풍은 하이엔드 지향
한편 한국의 외식 문화에서는 일본풍이 큰 인기다. 예전부터 초밥이나 회 등을 내놓는 ‘일식집’이 접대나 고급 식사 장소이기는 했지만 최근의 일본풍은 이와는 좀 다르다. 젊은 층이 트렌드를 이끌고 있고 일식 요리뿐 아니라 일본의 식문화에 대한 전체적인 호감을 드러내고 있다. 최근의 일식 붐은 일본식 상차림, 일본풍 인테리어, 일본식 손님 접대까지 아예 일본 문화를 ‘콘셉트’로 내걸고 있다. 손님이 들어서면 "이랏샤이마세(いらっしゃいませ)"라고 목소리를 높여 일본어로 환대하고, 심지어 간판이나 메뉴까지 일본어로 쓰여 있기도 하다. 이런 경향에 대해 ‘왜색이 너무 짙다’며 거부감을 드러내는 기성세대도 있지만, 젊은이들은 큰 저항 없이 받아들인다. 그들에게 일본풍은 다소 하이엔드 취향의 외식 옵션에 불과할 뿐이다.
요즘 한국의 젊은이들 사이에 핫한 키워드로 주목받는 ‘오마카세(おまかせ, ’맡긴다’는 뜻)’도 일본에서 건너온 식문화다. 주방장이 그날의 가장 신선한 식재료로 정성스럽게 조리한 요리를 조금씩 내어주는 코스 메뉴를 뜻한다. 역시 오마카세를 즐기는 포인트는 음식의 맛뿐 아니라 음식을 담은 그릇, 음식을 내는 순서, 곁들이는 음료와 식당의 전체적인 분위기까지 총체적으로 아울러서 차분하고 고급스러운 식사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일본에서는 비교적 저렴하고 대중적인 주점으로 자리 잡고 있는 ‘이자카야(居酒屋)’가 한국에서는 깔끔하고 세련된 분위기의 술집으로 인식된다. 사실 한국에서 일본식 오마카세가 인기라고 하면 깜짝 놀라는 일본인이 많다. 오마카세는 스시 전문점이나 요리집, 온천 료칸에서 제공하는 고급 코스 메뉴로 대중적인 식문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식문화의 융합 이뤄낸 한일 젊은이
일본의 젊은이들은 서민적이고 활기가 넘치는 한국의 외식 문화에 열광하고, 한국의 젊은이들은 절제되고 고급스러운 일본의 외식 서비스를 좋아한다. 닮은 듯하면서도 다르고, 이질적인 듯하면서도 비슷한 점이 많은 식문화가 서로에게 흥미롭게 다가온 것이 아닐까 싶다. 어쨌든 한일 젊은이들이 서로의 식문화에 매력을 느끼고 경험의 접촉면을 넓혀가는 것은 긍정적이다. 한식과 일식은 식재료와 조리법이 비슷한 것은 사실이지만 식문화라는 점에서는 친화력이 반드시 높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두 나라의 문화적 교류라는 점에서는 모처럼 찾아온 좋은 기회라는 생각도 든다.
1990년대 중반 일본의 규동(牛丼, 일본식 소불고기 덮밥) 체인점인 ‘요시노야’가 한국에 진출한 적이 있었다. 일본 국내에만 1,200여 개 점포가 있을 뿐 아니라 중국, 미국, 대만 등 해외에도 수백 개 점포가 성업할 정도로 대형 체인점이다. 그런데 당시에는 한국에서 전혀 인기를 끌지 못하고 불과 2년 만에 사업을 접었다. 당시 한국이 ‘IMF 사태’라는 전례 없는 불황 속에 있었기는 했지만 요시노야 정도의 거물급 체인점이 한국 시장에서 철수하는 것을 두고 설왕설래했던 기억이 있다. “일본식 소스가 한국인 입맛에 맞지 않는다”, “간편하게 때우는 한 끼 메뉴치고는 너무 비싸다”, “패스트푸드점과 비슷한 서비스가 친절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등 여러 이유가 거론되었다. 요시노야에서 ‘규동은 비벼 먹지 않아야 맛있다’고 먹는 법을 안내했던 것에 대해서도 썩 반응이 좋지 않았다. 아마 지금이라면 평가가 전혀 달랐지 않았을까. 사실 일본에서 규동은 서민 메뉴의 대표 격이다. 지금도 요시노야의 규동 가격은 426엔(약 3,800원). 요즘 같은 고물가 시대라면 일식이 주머니 사정이 얇은 한국 젊은이들의 서민적 한 끼로 사랑받았을 수도 있을 듯하다.
김경화 미디어 인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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