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대통령이 창조한 거대한 부조리극, 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건데?

박세열 기자 2024. 3. 23.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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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열 칼럼] '벌거벗은 임금님'의 나라

버트런드 러셀의 유명한 '역설'이 있다. 세비야의 한 이발사가 말했다. "이 마을 사람 중에 스스로 면도하는 사람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내가 면도를 해 줍니다." 그럴듯하게 보이는 이 명제엔 역설이 내포돼 있다. '그렇다면 이발사의 수염은 누가 깎을까?' 이발사는 스스로 수염을 깎지 않는 사람만 면도를 해주므로, 스스로 수염을 깎을 수 없다. 마찬가지로 이발사가 스스로 수염을 깎지 않는다면 '이발사에게 면도를 받아야 하는 사람'이 되기 때문에 그는 이발사(본인)에게 면도를 받아야 한다.

이 역설에서 빠져 나올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이발사는 수염을 불로 태우는 사람이다"라거나 "이발사는 수염이 나지 않는 여성이다"라거나. 제3의 조건을 난입시켜 역설의 순환 구조를 아예 부숴버리는 거다. 하지만 이러면 '역설의 게임'은 재미가 없어진다.

출국 금지된 자는 주호주 대사가 될 수 없다. 호주로 출국할 수 없기 때문이다. '출국 금지 된 자'가 호주 대사가 되면 그 사람은 호주 대사로 불릴 수 없다. 호주 대사가 된 자가 한국에 있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호주 대사가 출국해서 호주로 가게 되면 문제가 풀리지만, 그러기 위해 호주대사는 '출국 금지된 자'가 아니어야 한다. 말장난 같지만, 이 단순한 역설은 지금 대한민국에서 실재한다. 그리고 이 역설의 순환 구조를 깨부수는 말이 대통령실에서 나왔다. "좌파가 놓은 덫에 우리가 제대로 걸렸다."(3월 15일 MBC 보도,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 발언) 좌파가 놓은 덫이라니, 대통령실이 만들어낸 '이종섭 퍼즐'은 이렇게 풀린다.

좌파가 놓은 덫에 걸리기 위해서는 많은 단계를 거쳐야 한다. 첫째, 이종섭 대사는 국방부장관 시절 해병대 채상병 사건 수사 결과를 결재했다가 하루만에 뒤집고 박정훈 수사단장을 '항명수괴죄'로 입건한다. 그래서 '좌파의 덫'에 의한 '수사 외압 의혹'이 발생한다. 둘째, 이종섭 대사는 야당의 탄핵안 발의 직전 국방부장관직에서 전격 사퇴한다. 그러니까 스스로 사퇴한 것도 좌파들이 치밀하게 놓은 덫에 걸린 게 된다. 셋째 윤석열 대통령이 이종섭을 주호주대사로 임명하기도 전에 공수처는 이미 모든 걸 예상하고 12월에 '출국 금지'라는 덫을 놓고 도사리고 있었다. 얼마나 치밀한지, 누가 봐도 꼼짝 없이 걸려들지 않을 재간이 없다.

여기에서 우린 근본적인 의문을 소환한다. "왜 이렇게까지 해야 돼?" 공항에서 MBC 기자를 만난 이종섭 호주대사가 한 말이다. 곱씹을수록 명언이다.

이종섭 대사는 무슨 작전 하듯이 한국을 떠났다. 이 대사가 임명된 건 지난 4일. 지난해 12월부터 '출국금지' 상태였다는 게 알려진 게 6일이다. 갑자기 이 대사는 7일 공수처를 찾아 가 '셀프 소환' 조사를 받는다. 그리고 법무부에 이의신청을 했고, 기다렸다는 듯 법무부는 8일에 출국금지를 전격 해제한다. 이틀 뒤 이 대사는 호주로 출국한다. 주호주대한민국 대사관은 캔버라에 있는데, 캔버라와 280킬로미터 떨어진 시드니행 항공편을 이용하지 않고, 1180킬로미터 떨어진 브리즈번행 항공편을 이용했다. 들고 간 대사 임명장은 사본이었다. '차관보' 급이 가는 호주대사는 갑자기 '장관급'으로 승격됐고, 전임 호주대사는 1년 3개월만에 급거 한국으로 귀임했다.

법무부는 "이종섭 전 장관에 대한 출국금지 당시 법무부 장·차관이나 대통령실에 일체 보고되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고 당당하게 공지했다. 전직 장관에 대한 출국금지를 "몰랐다"고 강변하는 법무부나, "정부 당국자도 알지 못한 출국금지 사실을 친야 성향의 일부 언론이 확인해 먼저 보도한 것도 세 축(공수처, 야당, 언론)이 결탁했다는 걸 보여주는 방증"(YTN에 보도된 대통령실 반응)이란 말은 '좌파의 덫' 이론을 완전하게 만들어준다. 하긴, '출국 금지 사실을 알고도 임명했다'고 하면 더 큰 문제가 되는 것이니 차라리 '무능'을 택했을 것이다.

출국금지된 피의자를 주호주대사로 임명한 대통령의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한 온갖 무리수가 동원되고 있다. 방산 관련 재외공관장회의가 갑자기 잡혔다. 이 대사와 함께 사우디아라비아, 폴란드 등 다른 나라 공관장들이 갑자기 한국으로 불려 왔다. 일부 공관들은 뉴스를 보고 자국 대사가 한국에 회의차 귀국하는 걸 알았다고 한다. 심지어 이 대사는 국내에 장기 체류할 것이라고 한다. 이럴거면 왜 그렇게 급하게 한국을 떠났는지 영문을 알 수 없다. 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는데?

따지고보면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이 정부를 계속 따라다녔다. 원조는 '바이든 날리면' 사건이다. 2022년 9월 미국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은 글로벌펀드 제7차 재정공약회의에 참석, 바이든 대통령 등과 함께 '48초 정상회담'(?)을 한 후 박진 외교부장관 등 참모진과 대화를 하는 과정에서 "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은 쪽팔려서 어떡하나"라고 말하는 장면이 언론에 포착됐다. 대통령실은 15시간만에 미국 현지에서 해명 브리핑을 통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은'이 아니라 '승인 안 해주고 날리면'"이라고, "이XX들"은 한국 국회를 가리킨다고 주장했다. 김은혜 홍보수석은 '이XX들은 우리 국회냐'는 질문에 "미국 의회가 아니라는 것"이라고 답했고 '한국 의회냐'는 질문에 "예 미국 의회가 아니니까요"라고 했다.

그러자 윤 대통령은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에 뜬금없이 페이스북에 글을 한 편 올린다. 자신이 글로벌펀드 제7차 재정공약회의에 참석했다는 사실을 알리고 "대한민국 국회의 적극적인 협력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대통령실 주장대로 한국 대통령이 한국 국회에 욕설을 한 것이라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내용이다. 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걸까.

작년 10월 11일 있었던 강서구청장 재보궐 선거도 빼놓으면 섭섭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김태우 전 강서구청장을 대법원 유죄 확정 3개월 만에 8.15 특별사면으로 출마 길을 열어줬다. 그때만 해도 국민의힘에서는 '설마' 하는 얘기들이 흘러나왔다. 윤석열 대통령이 김태우 청장을 '동지'로 여긴다는 보도들이 이어지면서, '김태우 공천 불가'를 외치던 지도부는 돌연 태도를 바꾼다. 보궐선거 원인 제공 당사자(김태우)가 불법 행위로 직을 상실한 뒤 대통령에게 특별사면 받고 재공천을 받기까지 걸린 시간은 6개월 남짓. 그때 여의도 사람들은 그랬다. "왜 이렇게까지 하는걸까?" 당은 총력전을 폈다. 결과는 17.15%포인트 차이의 대패. 이 선거 결과에 용산이 충격을 받았다는 사실에 많은 이들이 충격을 받았다.

피의자를 대사로 임명한 걸 취소하면 될 일이었다. '비속어'는 깔끔하게 사과하면 될 일이었다. 원칙대로 보궐선거 원인 제공자를 공천에서 배제하면 될 일이었다.

지금 우리는 '벌거벗은 임금님'의 시대에 살고 있다. 대통령의 잘못된 결정과 실수를 정당화 하기 위해 유능한 국가 공무원들이 공적 자원을 동원해 거대한 부조리극을 매번 창조해내고 있다. 이 거대한 부조리극은 언제 끝날지 알 수가 없다. 버트런드 러셀의 '이발사의 역설'은 원래 수학 문제를 풀기 위한 퍼즐 같은 것이지만, 그런 역설은 부조리극의 필수 요소이기도 하다. '부조리'는 말 그대로 '말이 안 되는 것', '논리적으로 이해 불가능한 것'을 의미한다. 모든 게 순리대로 돌아가는 것처럼 보일 때 인간은 진실을 깨칠 수 없다. 논리적으로 설명 불가능한 엉뚱한 일이 발생할 때 인간은 비로소 '진실'에 다가서게 되는 법이다. 역설을 동반한 부조리극은 어떤 '은폐된 진실'을 폭로해 준다. 이 부조리와 역설이 이 정부의 허약한 '본질'을 드러내 준다. 그리하여 우린 끊임없이 '대체 왜 저렇게까지 해야 하는 건데?'라는 의문을 오늘도 키워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22일 경기도 평택 소재 해군 제2함대사령부에서 거행된 제9회 서해수호의날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세열 기자(ilys123@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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