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가로 47년, 그는 빛과 어둠 사이 방랑자였다
고 김중만 사진작가 첫 번째 회고전
한국의 1세대 사진가로 활약한 김 작가는 2000년대 패션·상업사진의 대가로, 배용준·전도연·정우성·이정재·이병헌·비 등 100명이 넘는 스타들의 초상사진가로 대중적인 인기를 누렸다. 영화 ‘괴물’ ‘타짜’ ‘달콤한 인생’ 등의 포스터도 그의 손끝에서 탄생했다. 2006년 더 이상 상업사진을 찍지 않겠다고 공표한 후 한국의 아름다움을 찾기 위한 작업으로 독도 시리즈, 중랑천 뚝방길 나무 시리즈 등에 골몰했다.
삼성물산 패션부문 10꼬르소꼬모 서울과 김 작가가 운영했던 스튜디오 벨벳언더그라운드가 공동 기획한 이번 전시에선 미공개 작품을 비롯해 총 137점의 작품이 6개 시리즈로 선보인다. ‘70년대’ ‘80년대’ ‘스타 초상사진’ ‘네이키드 소울(NAKED SOUL-흑백으로 촬영한 꽃)’ ‘아프리카’ ‘뚝방길’ 시리즈 등이다.
47년간 김 작가가 남긴 사진이 수십 만 장임을 생각하면 이번 전시는 소박하다. 불꽃처럼 격렬하고 화려했던 작품들을 만날 거라 기대했다면 실망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평생 빛과 어둠 사이에서 방황하며 고뇌했던 그의 생을 떠올리면 이번 전시는 ‘사진가 김중만’을 찾아가는 지도와 같다. 각각의 시리즈 제목은 그가 인생에서 큰 변환기를 맞았던 시점들을 알려주는 6개의 작은 이정표다.
강원도 철원에서 태어난 김 작가는 열일곱 살에 아프리카로 가면서 인생의 첫 번째 변화를 맞는다. 외과의사였던 아버지가 정부 파견의사로 서부 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에 부임하면서다. 전기도 안 들어오는 아프리카 시골마을에 살던 김 작가는 프랑스로 건너가 고등학교·대학 시절을 보낸다. 니스 국립 응용 미술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하던 중 친구의 암실에 놀러갔다가 사진의 세계에 눈뜬 그는 1977년 프랑스 아를르 국제 사진 페스티벌에서 ‘젊은 작가상’을 받고, 그해 프랑스 ‘오늘의 사진작가’ 80인에 선정되며 주목받는다. ‘70년대 시리즈’에는 이 시기 청년 김중만이 느꼈던 방랑과 고뇌, 자유와 사랑에 대한 생각들이 담겼다.
‘아프리카 시리즈’에는 비로소 ‘행복’이라는 단어를 만난 찰나들이 담겼다. 1998년 가족과 함께 아버지가 계신 아프리카로 날아간 김 작가는 대자연의 품에서 안정감을 느꼈고 그 경이로운 순간들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한다. 전시장에서 만난 아내 이인혜씨는 “이때가 우리 가족이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라고 회고했다. “새벽부터 도시락 하나 싸들고 초원을 쏘다녔죠. 선생님은 카메라에서 눈을 못 떼니까 필름 갈아 끼우는 일은 내 몫이었고, 일곱 살짜리 아들 네오도 조수 노릇을 톡톡히 했죠. 이후에도 가족이 여행을 많이 다녔는데 셋이 같이 찍은 사진은 이때가 유일해요. 사진 속에서 셋 다 구김 없이 활짝 웃고 있죠.”
1999년 귀국해 아프리카 동물 사진 전시회를 열고 출판사 김영사에서 책 『동물왕국』을 냈다. 그렇게 김 작가는 국내 작가로는 처음으로 아프리카를 찍은 사진가로 유명해졌고, 2000년 사진 스튜디오를 차린 후 패션 매거진과 광고 사진 작업을 통해 수많은 스타들의 초상사진을 남겼다.
‘뚝방길 시리즈’는 2008년부터 천착해 온 주제다. 강북에 있는 집에서 강남의 스튜디오로 출퇴근하면서 매일 봐온 중랑천 뚝방길의 평범한 나무들이 눈에 들어온 이유는 “애잔함 때문”이었다고 한다. 이씨는 “쓰레기더미가 쌓인 길에서 만난 나무들에서 소외된 이들의 고독한 인내를 봤다고 하더라”며 “상처받은 것들에 끌리고, 어둠 속에서도 희망을 찾고 싶어했던 게 그만의 감성이다”고 했다. 그렇게 작가 김중만의 눈에 들어온 나무들은 대형 한지에 흑백으로 인화해 한 폭의 수묵화처럼 보인다.
“18세기 한국화의 거장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를 사진으로 재해석하는 작업을 하고 싶다며 2021년 겨울 굳이 인왕산을 올라가더라고요. 겸재 선생께 인사도 드리고 기도도 드린다고. 이후 폐렴으로 응급실에 실려 갔고, 결국 그 꿈은 미완성으로 남았죠.”
전시장을 채운 사진들은 대부분 필름을 디지털로 스캔한 후 인화한 것이라 입자가 거칠다. 이방인으로서 몽상가로서, 고독했지만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살다간 김중만 작가의 인생을 질감으로 표현한다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
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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