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의 기억] 봄볕 쪼이는 동물 가족
이윽고 마당에는 평화가 찾아왔다. 사람도 등 따습고 배부르면 행복한데 따뜻한 봄볕을 등에 업고 배를 채우니 한 울타리 안에 사는 동물 가족은 부러울 게 없다. 배가 불러도 여전히 먹는 걸 탐하는 아기 돼지들 옆에서 한순간 소와 닭이 서로 멀뚱하게 바라보는 모습에 ‘소 닭 보듯이 한다’는 옛말이 떠올라 셔터를 눌렀다. 누렁이로부터 필사적으로 도망치던 아까와는 다르게 닭은 덤덤하게 소와 눈 맞춤을 하고 있다.
예전 농가에서는 다들 가축을 키웠다. 집 지키는 개와 달걀 낳아주는 닭은 기본이고 잔반을 처리해주는 돼지와 토끼 몇 마리, 그리고 농가의 일꾼 황소까지 한 집에 사람보다 동물 숫자가 더 많았다. 그런데 가축을 먹이는 일은 대개 아이들의 몫이었다. 싱싱하고 부드러운 풀을 뜯어오고 벌레나 미꾸라지를 잡아다 영양 보충을 시키기도 했다. 농사에 바쁜 부모를 대신해 떠맡은 일이지만 아이들도 싫지 않았다. 집에서 공부하는 것보다 들로 냇가로 쏘다니는 게 훨씬 신났기 때문이다.
그런 기억 때문인지 마당이 있는 집에서 살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 중 하나가 닭을 키워서 방금 낳은 달걀을 먹어 보는 것이다. 안양에 단독주택을 마련한 지인 역시 어렸을 적 추억을 되살려 닭을 키우기 시작했는데 웬걸, 새벽부터 우렁차게 ‘꼬끼오’를 외쳐대는 바람에 이웃의 눈치가 보여 포기하고 말았단다. 새벽을 깨우는 닭이 야행성 도시인들에겐 민폐가 된 까닭이다.
김녕만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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