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기자가만난세상] 사투리 유행의 역설

백준무 2024. 3. 22.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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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사투리 유행의 역설

설 연휴에 만난 조카에게선 위화감이 느껴졌다.

"○○은 왜 사투리를 안 써?" 사촌 동생은 대수롭지 않게 "유튜브를 많이 봐서 그런 것 같은데"라고 답했다.

조카 사례와는 반대로 최근 유튜브에서는 사투리를 소재로 한 콘텐츠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부산에서 태어나기만 했을 뿐인 한 코미디언이 엉터리 사투리를 쓰면서 토박이들로부터 '진짜 경상도 사람'이라는 인정을 받아내려는 모습이 주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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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에 만난 조카에게선 위화감이 느껴졌다. 오랜만에 본 터라 낯설었던 까닭일까. 2학년이 된 아이가 이제는 제법 초등학생티를 내서일까. 정답은 엉뚱한 데 있었다. 조카는 ‘서울말’을 쓰고 있었다.

경상도에서 태어나고 자란 조카는 거의 완벽한 표준어를 쓰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같은 곳에서 나고 자란 조카의 부모는 물론 집안 어른들 모두 이미 익숙한 눈치였다.
백준무 사회부 기자
사투리를 고치기 위해 적잖이 애를 먹은 기억이 있다. 대학 진학 때문에 상경하기 전, 고향 친구들은 “서울 택시를 타고 사투리를 쓰면 기사들이 뺑 돌아서 간다”는 괴담 같은 말을 진지하게 하곤 했다. 지레 겁을 먹었던 탓인지 첫 학기 때엔 묵언을 수행하는 스님처럼 입을 닫고 있었다. 지금은 ‘부산 출신’이라고 밝히면 오히려 놀라는 사람들이 많다(고 스스로 믿고 있다).

서울말 선배 입장에서 아이의 어머니인 사촌 동생에게 슬쩍 물었다.

“○○은 왜 사투리를 안 써?” 사촌 동생은 대수롭지 않게 “유튜브를 많이 봐서 그런 것 같은데”라고 답했다. 조카는 연휴 내내 스마트폰을 놓지 않고 있었다. 또래 사이에서 인기가 많은 듯한 한 유튜버의 말투를 밥상에서도 따라 하다가 어른들에게 혼나기도 했다.

조카 사례와는 반대로 최근 유튜브에서는 사투리를 소재로 한 콘텐츠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피식대학’의 ‘메이드 인 경상도’가 대표적이다. 부산에서 태어나기만 했을 뿐인 한 코미디언이 엉터리 사투리를 쓰면서 토박이들로부터 ‘진짜 경상도 사람’이라는 인정을 받아내려는 모습이 주된 내용이다. 회차 제목부터가 ‘경상도 호소인’이다.

‘하말넘많’이라는 채널은 아예 사투리 특강을 진행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외지인들은 아무도 구분하지 못하는 부산·경남 사투리와 대구·경북 사투리의 차이를 세심하게 소개한다. 미디어에 등장하는 과장된 톤이 아닌, 일상의 사투리란 어떤 것인지 보여 주기도 했다.

유행의 뒷면에는 사투리가 사라지고 있는 현실이 자리하고 있다. 지난해 국립국어원의 ‘국어 사용 실태 조사’에 따르면 표준어를 쓴다고 응답한 사람은 2005년 47.6%에서 2020년 56.7%로 9.1%포인트 증가했다. 반면 경상도 사투리를 쓴다는 사람의 비율은 27.9%에서 22.5%로 5.4%포인트 감소했다.

연구진은 “기존 연구들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표준어화가 상당한 속도로 진행되고 있음을 객관적인 수치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며 “응답자의 연령이 낮고 학력이 높을수록 지역어형의 사용이 감소하고 표준어 사용 비율이 증가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분석했다.

수도권이 전국의 인구와 인프라를 빨아들이는 동안 지방은 소멸의 길을 걷고 있다. ‘지방소멸 위험지수’가 전국에서 가장 높다는 경북 의성군은 이미 태어나는 아기 수보다 사망하는 이들이 더 많다고 한다.

물리적인 공간을 잃어버린 사투리 역시 그 뒤를 따르는 중이다. 천천히 사라지고 있는 사투리가 누군가에겐 신선하고 새롭게 느껴지는 역설적인 풍경이 씁쓸하다. 오늘은 부추전이 아니라 정구지 찌짐을 먹을 생각이다.

백준무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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