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정원 확대 반응 한국·독일 의사 극과 극 이유는?…김누리 교수 “한국은 경쟁자, 독일은 연대할 동료로 인식”

이강은 2024. 3. 22.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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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경쟁 교육은 야만이다’에서 의사, 판·검사 등 우리 사회 경쟁 교육 승자들의 민낯 비판
“한국 교육이 길러낸 ‘전교 1등’ 거의가 오만한 엘리트가 되는 건 ‘사활 건 경쟁 교육’ 결과”
“보편적 정의 편에 서기는커녕 집단적 이기주의에 매몰된 무책임한 엘리트가 지배하는 나라 돼”
“독일 대학에는 사회적 불평등과 환경 기후 변화 등 유인물, 한국 대학에는 취업정보 유인물 넘쳐”
“교육개혁이 사회개혁 이끌어…능력주의·성장·경쟁 교육→존엄주의·성숙·연대 교육으로 전환” 촉

‘당신들은 어떤 의사에게 진료받고 싶습니까. 전교 1등을 놓치지 않기 위해 공부에만 전념한 의사인가요, 아니면 실력은 한참 모자라지만 추천에 의해 공공병원 의사가 된 의사인가요.’ 신종 코로나19바이러스 사태 당시 문재인정부가 의대 정원을 1년에 400명씩, 10년간 4000명 늘린다고 했을 때 한 의사단체가 반발하며 발표한 홍보물 내용이다.

김누리 중앙대 독어독문학과 교수는 그 홍보물 내용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여기서 ‘전교 1등’이라는 말이 왜 나올까요? 어떻게 다 큰 성인이 유치하게도 오로지 학창 시절의 성적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을 수 있을까요…초등학생이 써도 이런 천박하고 어리석은 글을 쓰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이는 대한민국 교육이 길러낸 엘리트 집단이 얼마나 미성숙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이 성명서(홍보물)는 대한민국 교육이 실패한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파탄에 이르렀음을 보여주는 역사적기록입니다.”

2022년 기준 한의사를 제외한 한국의 의사 수는 인구 1000명당 2.1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꼴찌다. 코로나 팬데믹 시절 정부가 의대 정원을 늘린다고 발표했을 때 찬성하는 국민 여론과 달리 의사들은 극렬하게 반대했다. 

OECD 기준으로 우리보다 인구 1000명당 의사 수가 2배 이상 많은 독일(4.4명)은 어땠을까. 팬데믹을 혹독하게 겪은 독일 정부가 전체 의대 정원의 50%를 늘리겠다고 발표하자 독일 의사협회는 “정부 정책은 너무도 타당하다. 지금 의사들이 과중한 업무로 과로사 직전의 상태에 놓여 있다. 의료서비스의 질도 급격히 떨어졌다. 그러니 의사 수를 파격적으로 늘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지지 입장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확대를 두고 한국과 독일의 의사 집단이 이런 극명한 차이를 보인 것에 대해 김 교수는 “독일 의사가 다른 의사를 보호하고 연대해야 할 동료라고 생각한 반면, 한국 의사는 다른 의사를 ‘경쟁자’, 심지어는 ‘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학교에서부터 (입시) 전쟁을 치른 한국 의사들은 이런 트라우마에서 평생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에 따르면 의사와 정부의 갈등은 실패한 한국 교육의 맨얼굴을 드러낸 상징적 사건이다. 경쟁과 능력주의, 공정이라는 ‘야만의 트라이앵글’ 속에서 살아남은 승자들의 단면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들 한국 교육의 승자(엘리트들)는 자신이 누리는 모든 부와 권력은 곧 자신이 전쟁터에서 쟁취한 ‘전리품’이라고 생각한다. 오늘날 한국 교육이 길러낸 ‘전교 1등’들이 거의 예외 없이 미성숙하고 오만한 엘리트가 되는 것은 바로 이런 ‘사활을 건 경쟁 교육’의 필연적 결과다.”

김 교수는 신간 ‘경쟁 교육은 야만이다’(해냄, 336쪽)를 통해 이처럼 대한민국 경쟁 교육의 승자들인 엘리트들을 향해 쓴소리를 아끼지 않는다.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환자의 목숨을 볼모로 의료 파업을 일삼는 의사들, 사법농단을 저지른 고위 판사들에 대해 무죄 판결로 일관하는 판사들, 고위 검찰 간부들에 대한 ‘봐주기 수사’에 부끄러움을 모르는 검사들의 행동은 한국 엘리트들의 민낯을 꾸밈없이 보여줍니다. 보편적 정의의 편에 서기는커녕, 이처럼 집단적 이기주의에 매몰된 미성숙하고 무책임한 엘리트가 지배하는 나라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는 또 한국 교육의 실패 사례를 가감 없이 전하면서 학벌 계급사회, 민주주의를 가로막는 학교 현실, 자본의 노예가 된 대학 상황 등을 비판한다.

“어떠한 사회적 비극이 벌어져도, 정치적 부패가 폭로되고, 국제적 참사가 벌어져도, 한국 대학에는 대자보 하나 붙지 않습니다. 한국 대학의 캠퍼스는 완전히 탈정치화되어 버렸습니다. 이것은 독일의 경우와는 너무도 대조적인 모습입니다. 독일 대학의 식당에 가면 지금도 독일 대학생들의 관심 사안이 어디에 있는지를 단박에 알 수 있습니다. 식사를 하는 동안 학생들이 건네준 팸플릿만 해도 한 줌이 됩니다. 생태 기후변화 문제, 사회적 불평등의 심화, 유럽연합 내의 국가 간 차별 문제 등 이들이 다루지 않는 문제는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대학 캠퍼스에 넘쳐나는 유인물들은 오로지 취업 정보뿐입니다.”(1부 4장 ‘대학이 죽었다’ 중에서)

총 5부 18장으로 구성된 책은 대한민국 경쟁 교육의 폐해와 부작용, 민낯을 파헤치고 교육개혁이 시급함을 경고함과 동시에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제시한다. 

1부에서는 열등감과 모멸감을 내면화하는 학교와 자본에 잠식당한 대학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2부에선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교육 시스템에 스며들어 있는 ‘경쟁, 능력주의, 공정’ 이데올로기를 해부한다. 3부에선 경쟁과 서열이 없는 독일 교육 사례를 통해 경쟁 교육이 야만인 이유를 보여준다. 4부에선 아이들의 교육받을 권리를 회복하고 잃어버린 교사의 권위를 되

찾기 위해 고통받는 당사자인 학생, 교사, 학부모가 교육혁명의 주체가 되어야 함을 일깨운다. 마지막 5부에선 교육개혁이 사회개혁을 이끌 수 있다며 능력주의가 아닌 존엄주의 교육으로, 성장이 아닌 성숙을 위한 교육으로, 경쟁이 아닌 연대 교육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의 “한 사회가 아이들을 다루는 방식보다 그 사회의 영혼을 더 정확하게 드러내 보여주는 것은 없다”는 말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이강은 선임기자 ke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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