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윤 ‘역사 양보’ 뒤 교과서 왜곡 수위 올렸다…강제동원 전면 부정

김소연 기자 2024. 3. 22.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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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중학 교과서 검정 발표
“식민피해 보상, 한국 몫” 왜곡 노골화
위안부 강제성 언급, 14종 중 1곳 그쳐
‘독도는 일본 땅’ 억지, 6종으로 확대
윤석열 대통령(사진 오른쪽)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해 5월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정상회담을 마친 뒤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내년부터 일본 중학생들이 배워야 할 교과서에 ‘일제식민지 피해보상은 한국정부의 몫’이라거나 ‘강제동원의 합법성’을 강조하는 등 역사를 왜곡하는 표현이 새롭게 추가된 것으로 확인됐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고노 담화’를 계승하겠다고 한국 국민에게 약속했지만, 그 핵심 내용인 ‘위안부의 강제성’을 서술한 역사·공민 교과서는 14종 중 1곳에 그쳤다. 윤석열 정부가 지난해 3월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과 관련해 일방적 양보안을 발표하는 등 역사문제를 봉합하는 방식으로 한-일 관계를 접근하면서 일본 교과서의 역사 왜곡은 한층 노골화되는 모습이다.

일본 문부과학성은 22일 내년부터 4년 동안 사용할 역사·지리·공민 등 중학 교과서의 검정결과를 발표했다.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와 아시아평화와역사연구소가 새로 검정을 통과한 중학교 역사 8종, 공민 6종, 지리 4종, 지도 2종의 교과서를 분석해 보니, 곳곳에서 역사를 왜곡하는 서술들이 새로 들어갔다.

데이코쿠서원 역사 교과서엔 “1965년 일본은 한국과 일한기본조약을 체결하고 국교를 정상화했다. 이 조약과 동시에 체결된 협정으로 일본이 한국에 경제협력을 하고, 개인에 대한 보상은 한국 정부에 맡겨졌다”고 적혀 있다. 당시 청구권협정으로 개인보상이 한국 정부에 위임됐다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닌데도 교과서에 버젓이 실렸다. 이신철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 상임공동운영위원장 “윤 정부가 발표한 소위 ‘강제동원 해법안’을 한일 청구권협정까지 확대 적용한 것으로 매우 심각한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윤 정부는 지난해 3월부터 한-일 관계 최대 쟁점인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에 대해 대법원에서 패소한 일본 기업 대신 한국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지급하는 ‘제3자 변제안’을 강행하고 있다.

강제동원과 관련해선 이를 부정하거나 사실상 합법이라는 것을 뒷받침하는 표현도 추가됐다. 데이코쿠서원 역사 교과서에는 강제동원을 설명하면서 “일본은 국민징용령에 근거해 동원했다”고 서술했다. 강제동원이 징용이라는 합법적 틀 속에서 이뤄졌다는 일본 정부의 입장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같은 맥락으로 야마카와출판의 교과서엔 “조선인은 일본에 징용, 중국인은 강제연행”으로 구분해 기술하는 등 조선인은 법적으로 문제가 없음을 강조했다. 일본 우익 사관을 토대로 역사를 서술해 역사 왜곡으로 악명이 높은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 회원들이 집필한 지유샤의 교과서엔 “한국은 근거 없는 전시노동자(징용) 문제 등 반일자세를 바꾸지 않는다”고 표현하는 등 강제동원을 아예 부정하고 있다.

독도가 ’일본의 고유 영토’라는 억지 내용은 22일 검정을 통과한 일본 중학 공민(6종), 지리(4종) 교과서에 모두 실렸다. 역사 교과서에는 4년 전보다 1곳이 증가해 6종으로 확대됐다. 일본 교과서 갈무리

일본군 ‘위안부’의 경우 중학 교과서에서 거의 사라지는 분위기다. 역사·공민 교과서 14종 가운데 ‘위안부’를 직·간접적으로 언급한 곳은 3곳(21.4%)에 불과했다. 이 가운데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서술한 교과서는 딱 1곳(마나비샤)으로 나타났다.

나머지 야마카와출판의 교과서엔 “위안시설에 일본·조선·중국·필리핀 등에서 여성이 모아졌다” 등 ‘일본군 위안부’라는 용어도 제대로 사용하지 않았다. 또 다른 우익 교과서인 이쿠호샤 교과서에는 일본 아사히신문이 지난 2014년 과거 위안부 보도 중 잘못된 부분을 정정하고 사죄하는 부분만 서술하는 등 ‘위안부’ 문제를 거짓으로 몰아갔다. 이는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하고 역사 교육을 통해 잊지 않겠다고 선언한 ‘고노 담화’(1993년 8월)를 무시한 처사다. 기시다 총리는 지난해 5월 서울에서 한·일 정상회담 뒤 기자회견에서 “역대 일본 내각의 입장을 계승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한국의 과거사 청산 운동을 ‘반인권적’이라며 폄훼하는 내용도 새롭게 실렸다. 지유샤의 공민 교과서엔 “한국에선 2005년 일본 통치 시기 일본에 협력한 사람들의 재산을 국가로 귀속시키는 일이 법률로 정해졌다. 이런 인권문제에 대해서는 (일본이 한국에) 확실한 개선을 요구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우호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서술됐다.

독도가 ’일본의 고유 영토’라는 억지 내용은 공민(6종), 지리(4종) 교과서에 모두 실렸다. 역사 교과서에는 4년 전보다 1곳이 증가해 6종으로 확대됐다.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아시아평화와역사연구소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일본 정부는 식민지 피해 배·보상에 대한 모든 책임을 한국 정부에 떠넘기고 모든 과거사는 청산됐다는 입장을 여러 곳에서 표출하고 있다”며 “이런 의도가 교과서에 반영되고 있다는 것은 매우 심각한 사태”라고 비판했다. 이어 “일본 정부의 이런 태도는 한·일 관계의 개선은 커녕 더욱 격렬한 대립으로 몰고 갈 위험이 크다”고 덧붙였다.

도쿄/김소연 특파원

dand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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