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지에 꼴찌 대학" 서울권 의대정원 동결 '부글부글'[현장]

임철휘 기자 2024. 3. 22. 06: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서울 8개교 의대 증원 無…지방권 의대 2000명↑
"기계적 증원 "…불투명한 기준에 형평성 지적도
"교육부가 학내에 불필요한 갈등 소지 남겼다"
고대 총장 "지방은 인프라 구축에 더 신경써야"
[수원=뉴시스] 홍효식 기자 = 정부가 2025학년도 의과대학 학생 정원 대학별 배정 결과를 발표한 20일 경기도 수원 영통구 아주대학교 의과대학 열람실에 의사 실습 가운이 걸려있다. 정원 50명 이하 '소규모 의대'만 있었던 경기·인천권의 경우 5개 대학에 361명의 정원이 배분됐다. 학교별로 살펴보면 성균관대 120명, 아주대 120명, 차의과대 80명, 인하대 120명, 가천대 130명이다. 2024.03.20. yes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임철휘 장한지 김래현 문채현 수습 기자 = 정부가 지방의대를 중심으로 의과대학(의대) 정원을 2000명 늘리면서 '인서울' 의대 정원은 동결하자, 동결된 대학들은 당혹스러운 기색이 역력하다.

22일 뉴시스 취재를 종합하면, 정부는 지난 20일 '2025학년도 의과대학 학생 정원 대학별 배정 결과'를 발표했다. 지난 2006년부터 17년간 3058명으로 동결된 의대 정원을 지방과 50명 미만 '미니 의대' 중심으로 확대하는 내용이 골자다.

지방권 의대 27개교의 총 정원은 2023명에서 3662명, 경인권 5개교는 209명에서 570명으로 각각 늘어난다. 그러나 서울대, 연세대, 경희대 등 서울 8개교는 증원하지 않고 현 정원이 그대로 유지된다.

서울 지역 의대에 증원 인원을 한 명도 배분하지 않겠다는 전날 정부 발표에 대해 서울 주요 대학 관계자들은 21일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일부 대학 관계자들은 정부의 불투명한 기준에 따른 형평성 문제, 불필요한 학내 갈등 조장, 이공계 경쟁력 감소 등 문제를 지적하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이번 의대 정원 증원 대상에서 제외된 서울 소재 A 대학 관계자는 "졸지에 전국에서 꼴찌권으로 작은 의대가 됐다"며 "코로나19 시기에 지방 병원의 병상을 늘려 (지방에 있는) 우리 병상이 적지 않다. 그런데 정원이 묶였다"며 "성균관대는 경기 수원에 의대가 있을 뿐 본과 학생들은 대부분 서울 강남 삼성병원에서 수련을 한다. 정부가 성균관대의 창원병원을 메인 병원으로 봤다고 하는데 말이 안 된다"고 형평성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면서 "충북 충주에 의대가 있는 건국대도 마찬가지다. 작년 말 (의대 정원) 증원 얘기가 처음 나왔을 때, 당시 충북도지사가 나서서 건국대를 빼고 다른 데만 증원해 달라고 했다. 건국대 의대 학생 절반 이상이 서울에 가서 수업을 듣고 수련받기 때문에 충주 의료계에 도움이 안 된다는 취지였다. 겉으로 봤을 땐 지방권 의대가 맞지만, 실질적으로는 서울권 의대로 봐야 하는 대학이 있는데 (정부가) 이를 무시하고 기계적으로 정원을 늘렸다"고 비판했다.

[대구=뉴시스] 이무열 기자 = 정부가 2025학년도 의과대학별 학생 정원 배정 결과를 발표한 20일 대구의 한 의과대학 강의실이 비어 있다. 2024.03.20. lmy@newsis.com


학내 반발에도 교육부의 요청에 따라 적극적으로 증원을 신청했던 대학들은 교육부가 불필요한 갈등 소지를 남겼다고 지적했다.

서울 소재 B 대학 관계자는 "교육부가 처음부터 '지역 균형'이나 '지역 의료 활성화'를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삼았다고 밝혔으면 학교들이 알아서 대처했을 거다. 교육부가 학내 구성원들끼리의 갈등 여지를 만들어 놓고 일괄적으로 다 반영을 안 해 버린 것"이라며 "대학 입장에선 이 부분이 가장 당혹스럽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대학 관계자도 "굉장히 머쓱하게 됐다"며 "주먹구구식으로 이렇게 하는 건 아닌 것 같다. 이렇게 배분할 거였으면 처음부터 안내하고 신청을 받았어야 한다"고 토로했다.

서울의 C 대학 관계자는 "의대들이 갖고 있는 여력이나 교육역량 등을 면밀히 고려했다면 지금처럼 이렇게 끝자리가 '0'명으로 딱딱 떨어질 리가 없다. 끼워 맞춘 것 같다"며 "각 병원 상황이 다 다른데 서울에 의대생들이 넘친다는 기준은 어떻게 잡은 것인지 제대로 된 설명도 없었다. 기준이 불투명하니 납득이 안 간다"고 했다.

[서울=뉴시스] 김명원 기자 = 한덕수 국무총리가 전날(20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의료 개혁 관련 대국민담화를 하고 있다. (공동취재) 2024.03.20. photo@newsis.com


대학 관계자들은 지방 의대들이 늘어난 학생 수요를 감당할 수 있겠냐는 의문도 제기했다.

김동원 고려대 총장은 이날 오전 서울 성북구 고려대 안암캠퍼스 SK미래관 최종현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정부가 지방대학 중심으로 증원한 것은 일견 의미 있는 움직임이라 생각한다. 지방 의사, 필수 의료 의사가 문제이기에 (개선) 그런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면서도 "지방대학이 과연 의사를 육성할 만한 인프라가 갖춰져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의사를 길러낼 땐 실습도 해야 하고 신체 해부도 해야 한다. 지금도 시신을 해부하는 데 10명 이상이 시신 하나를 놓고 해부를 한다고 한다"며 "지금도 쉽지 않은데 정원이 많이 늘어나면 인프라 구축에 신경을 많이 써야 될 걸로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다.

이공계 상위권 인재들이 비(非)의료계가 아닌 지방권 의대로 빠져나갈 것으로 점쳐지면서 서울 소재 대학의 경쟁력 자체가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서울 소재 다른 대학 관계자는 "학생들이 '인서울' 의대에 온다는 건 최상위권 학생들이 온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방권 의대로 상위권 학생 2000명이 빠져나가면 상대적으로 이공계에 경쟁력이 약화할 수 있다"며 "이공계 입장에서는 우수 인력이 가만히 있다가 없어지는 꼴이다. 장기적으로는 대학원생 수급도 좀 힘들어질 수 있고 해당 분야의 연구력이 떨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와 관련해 임정묵 서울대 교수협의회장은 이날 개인 의견을 전제로 한 단체 카톡방에 올린 글에서 "의료 외 문제가 불거지거나 학생과 전공의, 교수들을 지켜야 할 때가 되면 분명히 움직일 것"이라며 "안타깝게도 그 시기가 멀지 않은 것 같다"고 단체 행동에 나선 의료계에 힘을 실어줄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fe@newsis.com, hanzy@newsis.com, rae@newsis.com, dal@newsis.com

Copyright ©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