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청도설] 반도체의 변곡점

이노성 기자 2024. 3. 22.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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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반도체 기업 인텔의 창업자 고든 무어는 반도체 집적도가 2년마다 두 배 늘어난다는 ‘무어의 법칙’을 발표했다. 황창규 전 삼성전자 사장은 한 발 더 나아가 메모리 반도체 용량이 1년에 2배씩 증가하는 ‘황의 법칙’을 제안했다. 지금도 삼성전자는 무어·황의 법칙을 지키기 위해 밤낮으로 뛴다.


무어의 후계자인 앤드루 S. 그로브는 1980년대 침체에 빠진 인텔을 재도약 시킨 주역이다. 그가 최고경영자(CEO)로 일하던 1987~1998년 인텔의 연간 매출액은 19억 달러에서 260억 달러로 13배 이상 성장했다. 인텔의 ‘정체성’인 메모리를 포기한 게 성공비결이다. 1985년 일본 기업의 저가 메모리 물량공세로 진퇴양난에 빠진 그로브는 컴퓨터 두뇌인 CPU(중앙처리장치)에 집중 투자했다. 결과는 대성공. 세계에서 생산되는 컴퓨터의 80%에 ‘인텔 인사이드’ 로고가 박힌 CPU가 탑재됐다. 부품사가 완성사보다 더 주목받은 시기였다. 그로브는 당시를 “전략적 변곡점”이라고 표현했다.

인공지능(AI)이 발전하면서 반도체 기업이 또 변곡점을 맞았다. 정보 처리를 넘어 학습(머신러닝)까지 가능한 AI용 칩 수요가 폭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중심에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가 있다. 무어가 사망한 지난해 3월 젠슨 황은 “범용 CPU를 통한 무어의 법칙은 끝났다. 이제 엔비디아가 설계한 GPU(그래픽처리장치)가 AI와 클라우드 시대를 책임진다”고 선언했다. 엔비디아의 GPU는 이미 AI에 쓰이는 머신러닝용 GPU 시장의 95%를 점유하고 있다. 젠슨 황은 또 AI 칩 성능이 2년마다 두 배 향상한다는 ‘황의 법칙’도 발표했다. 실제로 젠슨 황은 지난 19일 연산 처리 속도가 2.5배 빨라진 차세대 GPU ‘블랙웰’을 공개했다.

인텔의 반격도 만만치 않다. 미국 정부는 20일 인텔에 반도체법상 최대인 약 26조 원 지원을 확정했다. CPU는 선두지만 GPU는 후발주자인 인텔을 키워 반도체 기술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AI 신드롬을 일으킨 챗GPT 개발사 오픈AI는 GPU기술 발전에 힘입어 차기 거대언어모델(LLM) GPT-5를 올해 여름 출시할 예정이라고 한다. ‘GPT 성능이 1년에 두 배 발전한다’는 법칙이 나올 판이다.

그로브는 세계를 지배하는 기술을 재편하려면 10배의 힘이 필요하다고 봤다. AI와 GPU는 수 십 년 지속된 반도체 시장의 질서를 요동치게 하고 있다. 이런 변곡점에선 수많은 기업이 흥망성쇠를 거듭한다. 우리 기업들이 폭풍우에서 살아남아 제2의 오픈AI나 엔비디아로 성장하길 기대한다.

이노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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