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기다리며[이준식의 한시 한 수]〈256〉

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 2024. 3. 21. 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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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바람이 하늘 끝 이곳까진 불어오지 않는 듯, 2월 산성에는 꽃이 피지 않았네.

한때는 낙양에서 고운 꽃 즐기던 이 몸, 들꽃이 늦게 핀다고 한탄할 게 뭐 있으랴.

잔설 덮인 가지에 매달린 귤, 추위를 견디고 싹 틔우려는 죽순에서 생기와 희망을 발견한 것이다.

하니 '2월 산성에는 꽃이 피지 않았네'라던 초조한 기색이 마침내 '들꽃이 늦게 핀다고 한탄할 게 뭐 있으랴'는 느긋함으로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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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바람이 하늘 끝 이곳까진 불어오지 않는 듯, 2월 산성에는 꽃이 피지 않았네.
잔설이 가지를 눌러도 귤은 아직 매달려 있고, 겨울 우렛소리에 놀란 듯 죽순이 싹트려 하네.
밤 기러기 소리 들으니 고향 생각 간절하고, 병든 몸으로 새해 맞으니 만물의 변화가 새록새록하다.
한때는 낙양에서 고운 꽃 즐기던 이 몸, 들꽃이 늦게 핀다고 한탄할 게 뭐 있으랴.

(春風疑不到天涯, 二月山城未見花. 殘雪壓枝猶有橘, 凍雷驚筍欲抽芽. 夜聞歸雁生鄉思, 病入新年感物華. 曾是洛陽花下客, 野芳雖晚不須嗟.)


―‘정원진에게 답하다(답정원진·答丁元珍)’ 구양수(歐陽脩·1007∼1072)





낙양에서 남쪽 지방 한 고을 수장으로 좌천되어 온 시인, 변화무쌍한 자연의 조화를 바라보니 만감이 교차한다. 병든 몸으로 맞는 객지의 새봄, 현실에 대한 낙담과 앞날에 대한 기대가 뒤엉켜 마음이 심란하다. 2월이 되도록 화신(花信)이 없는 건 춘풍이 이곳 벽지까지 넘어오지 않은 탓이려니 싶어 소외감은 더 깊어 간다. 춘풍은 외지로 밀려난 관리가 고대하는 나라님의 훈훈한 은혜. 춘풍이 아예 끊어졌다는 단절감이 엄습할 즈음, 시인은 애써 위안거리를 찾아낸다. 잔설 덮인 가지에 매달린 귤, 추위를 견디고 싹 틔우려는 죽순에서 생기와 희망을 발견한 것이다. 고향 생각이 간절하고 병까지 얻은 몸이지만 지난날의 영화를 생각하면 춘풍은 기어이 올 것이라는 희망에 마음이 부푼다. 하니 ‘2월 산성에는 꽃이 피지 않았네’라던 초조한 기색이 마침내 ‘들꽃이 늦게 핀다고 한탄할 게 뭐 있으랴’는 느긋함으로 바뀐다.

연(聯)마다 시인의 감정 기복이 심하다. 소외감에서 출발하더니 한 가닥 희망을 거쳐 다시 타향살이의 쓸쓸함, 그리고 결국은 기대 어린 낙관으로 마무리되는 구조다. 스스로 안위를 찾으려는 좌천된 관리의 상실감과 불안이 엿보이는 노래이다.

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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