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월의쉼표] 출석을 부르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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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학기에 처음 강의를 나가게 된 대학이 있다.
학생 수도 많고 강의실도 커서 마이크를 잡고 수업하는데 처음에는 내가 어딘가 어색하고 불편한 것이 마이크 때문인 줄로만 알았다.
그것을 불러주면 학생들이 휴대폰으로 출석 앱에 접속하여 그 숫자를 입력함으로써 스스로 출석 체크를 하는 것이 이 대학의 출결 방식이었다.
특히 출석은요, 선생님이 저희 이름을 불러주는 시간을 빼앗긴 것 같아서 진짜 별로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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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수업 중 한자어를 설명하다가 무심코 판서를 하려고 뒤를 돌았는데 거기 칠판이 없었다. 화이트보드가 있기는 했는데 그것을 빔 프로젝터 스크린이 거의 다 가리고 있었다. 굳이 스크린을 올리면서까지 화이트보드를 사용하자니 어수선하기도 하거니와 내가 너무 아날로그적 선생인 것 같았다고 할까. 그것도 점잖은 표현이요, 정확히는 내가 너무 구닥다리 옛날 사람이요 기계치임을 인증하는 것 같아 망설여졌다.
결국 컴퓨터 전원을 켜고 한글 프로그램을 실행시켰다. 설명하려던 단어를 입력하자 대형 스크린에 두 글자가 크고 선명하게 떴다. 문예(文藝). 손으로 쓴 것보다 훨씬 보기 좋네 하고 흐뭇해한 것도 잠시, 나는 다시 막막해졌다. 애초에 하려던 것이 藝 자의 파자였기 때문이다. 물론 한글 프로그램에서 일일이 초두머리니 나무 목이니 흙 토를 찾아 입력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손으로 직접 칠판에 쓰는 쪽이 훨씬 빠르고 편할 터였다.
쉬는 시간에 나는 마음을 고쳐먹었다. 하기야 한자가 웬 말인가. 이 대명천지 디지털 세상에서 고색창연하게 무슨 파자 타령인가. 시대의 흐름을 역행할 수는 없는 법. 내친김에 출석 체크도 이제는 흐름을 따라야겠다 싶었다. 그래서 자못 비장하게 휴대폰의 스마트 출석 앱을 켰다. 무작위로 숫자 세 개가 떴다. 그것을 불러주면 학생들이 휴대폰으로 출석 앱에 접속하여 그 숫자를 입력함으로써 스스로 출석 체크를 하는 것이 이 대학의 출결 방식이었다. 익숙하지 않아서 나는 줄곧 종이 출석부를 사용해왔던 터라 스마트 출석은 처음이었다.
그때 맨 앞자리 학생이 손을 들었다. 선생님, 저는 예전 방식이 좋은데요? 나는 어리둥절해져서 고개를 들었다. 네? 제가 일일이 호명하는 게 좋다고요? 여기저기서 학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도요. 맞아요. 선생님이 이름 불러주시는 게 더 좋아요. 맨 앞자리 학생이 다시 말했다. 저희도 꼭 디지털 방식을 좋아하는 건 아니에요. 특히 출석은요, 선생님이 저희 이름을 불러주는 시간을 빼앗긴 것 같아서 진짜 별로거든요. 나는 종이 출석부를 펼쳤다. 학생들과 아까 하다 만 藝 자 파자를 새삼 다시 해보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김미월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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