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 편도 들지 않고…불편한 상황에서 벗어나려면[그림책]

최민지 기자 2024. 3. 21.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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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너머
오소리 글·그림
길벗어린이 | 52쪽 | 1만8000원

사람은 아주 어려서부터 ‘양자택일’의 문제와 맞닥뜨리게 된다. 인생 첫 문제는 아마도 이것 아닐까.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기대가 잔뜩 섞인 질문 앞에서 제3의 선택지를 떠올리기란 아이에게도 어른에게도 쉽지 않다.

<시선 너머>의 주인공 꼬마 곰은 곤란하다. 한 숲에 사는 고깔 곰과 투구 곰 때문이다. 사이가 나쁜 두 곰은 언제나 자기 생각이 옳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늘 다투던 두 곰은 하나의 숲을 반으로 갈라 따로 살기 시작한다.

매일 서로를 감시하느라 불안해진 곰들은 나머지 숲도 차지해야겠다고 마음먹고, 곧 자신의 편이 되어줄 꼬마 곰을 찾아간다.

투구 곰이 말한다. “꼬마 곰아, 나를 믿고 따라 줘. 나와 함께하면 행복한 세상에서 살 수 있어.”

이에 질세라 고깔 곰이 말한다. “꼬마 곰! 나를 믿고 따라 줘. 나와 함께하면 진짜로 행복하게 웃을 수 있어.”

두 곰은 꼬마 곰을 사이에 두고 서로를 헐뜯더니 급기야 꼬마 곰에게 자신의 편이 될 것을 강요하기 시작한다. 두 곰의 싸움은 전쟁으로 이어지고 숲은 불길에 휩싸이고 만다. 투구 곰과 고깔 곰 중 누구의 손을 들어줘야 할까. 꼬마 곰은 깊은 고민에 빠진다.

2장이 시작되고, 사이 나쁜 두 곰의 시선에서 펼쳐지던 이야기의 화자는 꼬마 곰으로 바뀐다. 두 곰의 강요에 시달리던 꼬마 곰은 기특하게도 제3의 선택지를 떠올린다. 숲을 벗어나 더 넓은 세상으로 떠나는 것이다. “이제 내가 할 일이 뭔지 알 것 같아. 난 내 이야기를 완성하기 위해 떠날 거야.”

반으로 갈라진 것이 숲뿐인가. 소통의 부재와 이로 인한 오해는 인간 사회를 반쪽으로 갈라놓고 있다.

많은 어른은 ‘시선 너머’ 불편한 진실을 외면한다. 주체적으로 상황을 해석하고 자신만의 길을 가는 꼬마 곰 이야기는 어른에게 해방감을, 아이에게는 가능성을 선사한다.

흥미로운 이야기와 강렬한 그림이 어우러지며 독특한 매력을 뿜어낸다. 그림책 <빨간 안경> <노를 든 신부>, 에세이 <나는 나에게 잊혀지는 것이 싫어서 일기를 썼다>의 오소리 작가 작품이다.

최민지 기자 mi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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