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하연의 여의도 돋보기] `테라·루나 사태 주범` 권도형이 한국에 오고 싶었던 이유

신하연 2024. 3. 21.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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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픽사베이.

<글쓴이주>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고 했나요. 어렵고 딱딱한 증시·시황 얘기는 잠시 접어두고 '그래서 왜?'하고 궁금했던 부분에 돋보기를 들이대고 하나씩 설명해드리겠습니다.

몬테네그로에 구금 중인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의 한국 송환이 결정됐습니다. 이르면 오는 23일 한국행 비행기를 타고 입국해 한국에서 수사와 재판을 받게 됩니다.

지난 2022년 5월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테라 사태를 기억하실 겁니다.

테라폼랩스에서 발행한 가상화폐 테라USD는 스테이블 코인 가운데 3위 규모, 자매코인인 루나는 글로벌 거래소 바이낸스에서 시가총액 10위권 내에 드는 초대형 코인이었지만 일주일 새 -99.99999% 하락하며 사실상 한순간에 휴지조각이 됐습니다.

당시 증발한 테라·루나의 시가총액은 50조원에 달합니다. 그 여파로 미국의 13조원대 대형 헤지펀드 쓰리애로우즈캐피탈이 파산하고 디파이(DeFi·탈중앙화 금융) 플랫폼 셀시우스가 무너지는 등 '가상화폐 시장의 리먼사태'라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죠.

앞서 권도형은 "테라 생태계를 뒷받침하는 루나 코인이 스테이블 코인(테라)의 가격·공급 변동성을 완화해 스테이블 코인들이 안정성을 유지하게 된다"고 홍보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사고가 발생하기 전 1테라 가격이 이론과 달리 0.95달러 밑으로 떨어졌을 땐 현지의 한 대형 투자사와 비밀 계약을 맺고 인위적으로 가격을 복원했습니다. 이후 1테라 가격이 1달러 선을 유지하도록 한 알고리즘이 작동한 결과라고 거짓말을 했고요.

지난해 4월 서울남부지방검찰청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단은 공동 창업자인 권 대표와 신현성 전 차이코퍼레이션 대표 도 프로젝트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고 판단하고 관련자들을 기소했습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와 현지 검찰 역시 테라폼랩스와 권도형을 증권법 위반과 사기 혐의로 기소한 상태입니다.

도피 중 지난해 3월 몬테네그로에서 체포된 권도형을 두고 미국과 한국이 모두 범죄인 인도를 요청한 상황에서 당초 포드고리차 고등법원은 미국 인도를 결정했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한국으로 보내달라고 강력 요구해온 권씨 측이 즉각 항소에 나서면서 기존 결정을 뒤집게 된거죠.

이 결정을 두고 블룸버그 통신은 몬테네그로 법원이 미국에 '모욕을 줬다'며 화이트칼라 범죄에 대한 형량이 미국보다 낮은 한국으로의 범죄인 인도를 선호한 권씨와 그의 변호인단의 승리라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권씨가 그토록 미국이 아닌 한국에서 재판을 받고 싶어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미국은 개별 범죄마다 형을 매겨 합산하는 병과주의를 채택하고 있어 권씨의 경우 100년 이상의 징역형도 가능합니다. 가상자산에 증권성이 있다는 판단도 선제적으로 내린 상태고요.

반면 한국은 경제사범 최고 형량이 약 40년에 불과한 데다가 가상화폐가 증권상품으로 인정되지 않아 자본시장법을 적용할 수 있을지 여부도 불투명합니다. 권씨 입장에선 '솜방망이'를 찾은 셈이죠.

권씨는 도피 전 거액의 범죄수익을 은닉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는 만큼, 고액의 법률 자문을 통해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최대한 오래 지연하는 '꼼수'를 활용할 경우의 수도 제기됩니다.

몬테네그로에서도 거물급 변호사를 등에 업고 한국 송환을 관철시킨 걸 보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봐야겠죠.

한국의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죄는 이득액이 50억원 이상일 경우 5년 이상 유기징역 또는 무기징역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경제사범 최고 형량은 1조원대 펀드 사기 혐의로 기소된 김재현 옵티머스자산운용 대표에게 확정된 징역 40년이 전부입니다.

나스닥 증권거래소 위원장을 역임한 버나드 메이도프가 자신의 지위를 악용해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주식 폰지 사기를 저지른 사실이 적발되자 미국 사법부는 그에게 징역 150년형을 언도한 것과는 대조되는 모습입니다.

부당이득 환수에 대한 법적 제도 역시 손봐야 합니다.

지난해 4월 대규모 주가조작 사태가 계기가 돼 과징금 신설, 부당이득 산정방식 법제화, 자진신고자 제재 감면 등을 골자로 자본시장법이 개정, 올 1월부터 시행 중이긴 하지만 여전히 법적 사각지대가 많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황현영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올 초 불공정거래규제 관련 보고서를 통해 "시행령에 따르면 검찰의 수사 결과 통보 후에 (자본시장법상 불공정거래에 대한) 과징금을 부과하도록 하고 있는데, 과징금의 법적 성격이나 타 법률에서 과징금을 부과하는 체계를 고려할 때 검찰과 협의하도록 하고 있는 자본시장법상의 과징금 부과는 법적 정합성과 효율성 측면에서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제언했습니다.

또 근본적으로 형사처벌 금액에 대해 과징금을 감면해 주도록 한 자본시장법 개정안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미국과 일본의 경우 부당이득과 형량이 연계가 되지 않아서 과징금은 부당이득에 연계해 부과하고 형사처벌은 별개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경제사범에게 느슨한 한국 법이 흔히 말하는 '유전무죄 무전유죄'(돈 있으면 무죄, 돈 없으면 유죄) 구조를 재생산하는 것 아닐까요.

주가 조작이나 전세 사기와 같은 '한탕'을 통해 부당이득을 편취하고 수많은 피해자를 양산하고도 '감방 한 번 다녀오고 말지' 하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부터 바꿔야 합니다.

신하연기자 summer@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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