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보호’ 공감만…입법 위한 정책 경쟁은 뒷전
5인 미만 회사도 근로기준법
야당 “전면 추진” 여당 “추후”
특고 등 사각지대 노동도 이견
노동계 “인물·구도론에 매몰”
4·10 총선을 앞둔 한국에선 공천 결과, 선거 구도 등이 주목받을 뿐 노동 공약을 둘러싼 토론이 사실상 실종 상태다. 유럽·미국 등이 특수고용·플랫폼 종사자 등 사각지대 노동자 보호를 위한 제도 개선을 진행하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노동계는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 특수고용·플랫폼 종사자 등 ‘노동법 밖 노동자’ 의제를 제시하면서 정책선거를 촉구하고 있다.
21일 국민의힘·더불어민주당 등이 한국노총에 제출한 노동정책 답변서를 보면 여야 모두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확대 적용이라는 방향성에 동의했다. 임금노동자 5명 중 1명가량이 일하는 5인 미만 사업장엔 연장·야간·휴일 근로 가산수당, 연차 유급휴가, 해고제한·부당해고 구제신청, 직장 내 괴롭힘 방지, 연장 노동시간(주 52시간) 제한 등 근로기준법 핵심 조항이 적용되지 않는다.
민주당은 ‘5인 미만 사업장에 근로기준법을 전면 적용하되 형사처벌 규정 적용은 일정 기간 유예하자’는 한국노총 주장에 동의한다.
국민의힘은 민주당과 온도차가 있다. 국민의힘은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적용을 단계적으로 추진한다는 입장”이라며 “사회적 대화 결과를 반영해 22대 국회에서 입법 추진 예정”이라고 밝혔다.
국민의힘은 공약집에서 5인 미만 사업장의 직장 내 괴롭힘 행정지도를 강화해 자발적 개선을 지원한다고 밝혔다. 근로기준법 시행령 개정 시 직장 내 괴롭힘 방지 조항을 5인 미만 사업장에도 적용할 수 있지만 행정지도라는 우회로를 선택한 것이다.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에게 유급공휴일이 적용되지 않는 문제에 대해서도 노사정 대화에서 논의한다고 했다.
여야 모두 특수고용·플랫폼 종사자 등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이들을 보호하는 입법 필요성에 동의했다. 이 의제는 국제적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유럽연합(EU)은 지난 11일 배달·차량호출 애플리케이션(앱) 등 디지털 플랫폼으로부터 일감을 받아 일하는 이들을 개인사업자가 아닌 노동자로 추정하는 절차를 담은 ‘플랫폼 노동 입법지침’에 합의했다. 플랫폼 기업이 배달라이더·우버기사 등이 개인사업자라고 주장할 경우 입증 책임은 플랫폼 기업에 있다는 내용도 담겨 있다.
뉴욕·시애틀 등 미국 주요 도시는 배달라이더의 ‘최저임금’을 보장하는 제도를 시행 중이다.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 의회는 최근 우버·리프트 등 앱으로부터 일감을 받는 운전기사들의 최저임금을 보장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호주 의회는 지난달 화물차 안전운임제를 되살리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화물노동자뿐 아니라 배달라이더 등 플랫폼 종사자가 최저임금을 보장받을 수 있는 근거도 마련됐다. ‘화물기사들의 최저임금제’인 안전운임제는 국내에서 3년 시한으로 도입됐다가 2022년 12월 말 폐지됐다.
민주당은 국제적 흐름을 고려해 특수고용·플랫폼 종사자를 노동관계법상 노동자로 우선 추정하고 사용자에게 입증 책임을 지우는 방안, 특수고용·플랫폼 종사자에게 최저보수(최저임금)를 보장하는 방안 등을 총선 공약으로 내놓았다. 국민의힘은 노동법 밖 노동자를 위한 입법이 필요하지만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확대 적용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대화를 거쳐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윤석열 대통령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한 노조법 2·3조 개정안(노란봉투법)에 대해선 여야 의견이 명확하게 갈렸다.
민주당은 재추진을 약속했지만 국민의힘은 “헌법·민법의 기본법리와 맞지 않다”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양대노총과 참여연대는 이날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들에게 현 사회의 문제점을 해결할 정책과 대안 제시로 경쟁해야 할 정당들이 인물론과 구도론에 매몰돼 있다”며 “각 정당은 지금이라도 정책선거가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지환 기자 bald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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