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읽기]비닐하우스 라돈, 농민이 위험하다
국민 동요 ‘비행기’에 맞춰 “수헬리베붕탄질”로 시작해 “칼륨, 칼슘”으로 끝맺는 화학주기율표 노래는 지금도 부를 수 있다. 이 노래는 ‘칼슘’에서 끝나지만 지난 몇년간 가장 많이 들은 화학기호가 라돈(Rn)이다. 라돈침대로 워낙 많이 알려졌고, 흡연 다음으로 폐암 원인 물질이란 얘길 익히 들어서 두렵다. 환경부는 지나친 공포는 금물이며 환기를 잘하는 것만으로도 실내 라돈수치를 낮출 수 있다고 알려준다. 비록 문 열면 미세먼지가 그득하지만. 라돈은 암석이나 토양, 지하수에서 유입되는 자연 방사성 물질로 화강암 지대에 많이 발생하여 한반도도 취약한 편이다. 건축자재나 건물의 틈새로 유입되어 정부도 국제기준에 준해 ‘실내공기질관리법’으로 관리한다.
2022년 환경부가 개인지하수관정(음용) 총 4415개를 조사한 결과 우라늄은 64개(1.4%), 라돈은 614개(13.9%)가 감시기준을 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환경부는 2021년부터 우라늄과 라돈 기준치를 초과한 개인지하수관정에 저감장치를 지원하는 사업도 펼치고는 있다. 다만 지하수를 식수와 농업용수로 쓰는 곳이 많은 농촌 농민은 더욱 위험하다. 건물이나 먹는 물에는 라돈 기준치가 있지만 농업시설이자 실내 시설인 비닐하우스에 대한 기준이 없어 사각지대이기 때문이다. 지하수를 끌어올려 비닐하우스 전체에 온수샤워를 하듯 물을 뿌려 겨울철 온도를 유지하는 수막재배는 지하수를 쓰는 데다 흙과 가까워 토양유입도 걱정스럽다.
2021년 보건환경연구원이 ‘수막재배시설 실내공기 중 라돈 농도 특성에 관한 연구’를 수행한 결과 연구대상이었던 재배시설 모두 라돈 농도가 기준치보다 높았다. 특히 밤새 라돈이 축적되어 오전에 라돈 농도가 높았다. 이 결과를 보고 걱정스러웠던 경남 진주의 시설하우스 농민과 환경단체도 딸기 비닐하우스에서 라돈 측정을 해보았는데 역시나 기준치를 훨씬 넘는 수치였다. 이에 환경부와 지자체에 대책을 요구했지만 만 2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답변조차 듣지 못하고 있다. 하다못해 팸플릿이나 문자서비스로 농민들에게 라돈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환기의 중요성을 안내해달라 했지만 역시 묵묵부답이다.
수막재배 농민들에게 이 사안을 아느냐 물으니 ‘알고도 모른다’고 답한다. 라돈이 무색무취의 기체인 데다 공공기관으로터 정확한 안내를 받은 적이 없어서 모른다. 하지만 이 사실을 알고 있는 농가도 ‘방사능 딸기’ ‘라돈 토마토’로 언론에 도배가 될까 모르고 싶어 했다. 라돈은 자연 방사성 물질로 공기 중으로 흩어져 농작물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오로지 차폐 시설에 농축되어 있을 때 호흡기를 통해 사람에게만 피해를 준다. 그래도 농민들은 자기 몸보다 딸기 걱정이 앞선다. 작년 종묘회사의 품종이 잘못되어 구토를 유발했던 방울토마토 사건을 떠올리면 이해할 수 있다. 극히 일부 사례였으나 농가 전체가 소비 부진으로 멀쩡한 토마토를 버렸다. 이런 일을 한두 번 겪은 게 아니어서 차라리 아무 말도 안 나오는 것을 최선으로 여길 지경이다. 아침에 비닐하우스 환기라도 잘 시켜주면 훨씬 나을 텐데, 밤새 비싼 기름과 전기를 태워 따뜻하게 가둬놓은 온기가 아까워 라돈도 자신의 건강도 가둬버린다. 라돈의 무게는 당장 느낄 수 없지만 농업용 전기요금 고지서는 무겁고 무섭다.
최신 온실은 내부 온도를 떨어뜨리지 않고도 환기가 되는 환기팬을 갖추었으나 구형 비닐하우스는 이런 시설을 갖추질 못했고 설치가 의무사항도 아니다. 지하수에 사용하는 라돈저감장치도 상용화되었어도 문제는 돈과 정치의 무관심이다.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터지자 지자체마다 방사능측정기를 갖추고 식품 방사능 검사는 더욱 강화되는 추세다. 관공서에서 라돈측정기를 빌려 가정에서 측정해볼 수도 있다. 딸기가 아니라 딸기를 기르는 농민이 위험하다.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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