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세상]얼마나 나빠져야 기후선거 될까
엊그제 어떤 기업의 주주총회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다. 주가가 떨어지니 주주들의 날선 질문이 이어졌다. 이사회 의장이자 그 기업의 대표는 차분하게 미래의 가능성에 대해 설명했다. 나도 모르게 수긍이 갔다. 별로 큰 정보가 주어진 것도 아닌데 그의 말이 왜 미더운 걸까? 요즘 ‘핫한’ 가요 오디션 프로그램도 불과 몇 소절만 듣고는 전문가들이 당락을 결정한다. 우리 재단에서 직원 면접을 할 때 여러 명이 참여하는데도 채용 여부를 결정할 때 그렇게 논란이 되지는 않는다. 외부 기관의 채용심사에 가봐도 사람 눈이 다 비슷비슷하단 걸 깨닫는다. 어째서 그렇게 순식간에 믿음이 가고, 이 사람이 적절하다는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것일까?
2005년 발간되어 맬컴 글래드웰을 세계적 명사로 부상하게 해준 저작 <블링크>가 흥미로운 해석을 해준다. 이 책은 우리가 어떻게 ‘눈 깜짝’할 사이에 복잡한 상황을 평가하고 결정을 내릴 수 있는지에 관한 과학적이며 심리학적이고 사회학적인 설명서이다. 이런 사례가 나온다. 폴 게티 미술관은 새로 들어온 미술석상을 최첨단 기술을 동원해 14개월간 분석한 끝에 로마시대 진품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놀랍게도 전문가들은 단 2초 만에 그것이 모조품이라고 입을 모았다. 또 정신의학자 존 고트먼은 부부간의 대화를 15분만 관찰하고도 15년 후 그들의 이혼 여부를 90%의 정확도로 알아맞혔다. 책에서 소개한 이런 일들은 어떻게 가능할까?
저자는 그 비결이 우리 뇌의 ‘얇게 조각내어 관찰하기’ 능력에 있다고 한다. 무수하게 많은 정보 판단에 불필요한 정보는 거르고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한두 가지 요소에만 집중하는 것이 관건이다. 고트먼은 사이가 나쁜 커플들의 이혼 가능성은 단 하나의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고 한다. 바로 ‘경멸의 태도’ 유무이다. 아무리 거친 언어가 오가고 편치 않은 관계라도 냉소가 없다면 이혼까지는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많은 정보 가운데 필요한 부분만 얇게 슬라이스해 적용하는 것은 뇌의 트릭이랄까, 일종의 인지적 지름길이다. 그래서 누군가를 처음 대면할 때나 면접을 볼 때, 새로운 상황에 직면하거나 긴급한 상황에서 신속하게 결정을 내릴 때마다 저절로 일어난다.
우리도 마침내 결정해야 하는 시간이 가까이 오고 있다. 문제는 저절로 신속한 판단이 내려지질 않는다는 것이다. 여러 차례 선거를 경험했지만 우리 정치가 진화하고 혁신하고 있다는 증거는 미약하다. 그래서 자꾸 저울질을 하게 된다. ‘얇게 조각내어 관찰’에 집중할 공약들은 무엇일까.
아침마다 후원자들께 보내는 환경뉴스 클리핑에 기후공약이 너무 빈약해 안타깝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어느 눈 밝은 경영자가 정곡을 찌르는 답을 보냈다. “기후공약 없는 건 표가 안 돼서 그런 거예요”라고. 날마다 뜨거워지다 못해 끓어오르는 바다의 온도는 지난 1년 만에 20년 상승치를 뛰어넘을 만큼 폭등했고, 가을을 앞둔 브라질은 체감온도가 62도에 달한다. 40년간 바다에서 일한 어부도 이런 바다는 처음이라고 두려워한다. 작년 봄에 피어난 사과꽃이 때아닌 냉해로 떨어져 우리가 금값을 치르고 있다. 얼마나 더 나빠져야 기후공약 수준으로 표가 갈리는 날이 올까. 눈 깜짝할 새 들이칠 기후재난은 유권자가 막는다!
이미경 환경재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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