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언니의 대자보
1517년 10월31일, 독일 동부 비텐베르크 대학 교회 정문에 ‘면죄부의 능력과 효용성에 관한 토론’이라는 글이 붙었다. 비텐베르크 대학 신학 교수인 마르틴 루터가 로마 가톨릭 교황의 면죄부 남발에 항의해 쓴 95개조의 반박문이었다. 이 글은 금속활자로 인쇄돼 삽시간에 유럽 전역에 퍼져나갔다. 종교개혁의 시작이었다. 루터의 95개조 반박문은 대자보가 역사를 바꾼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자신의 견해나 주장을 종이에 써 벽에 붙인 것을 뜻하는 대자보는 조선시대에는 벽에 건다고 해서 괘서, 벽서로 불렸다. 주로 동네 어귀나 저잣거리, 성문, 포구 등 인적이 많은 곳에 붙였다. 왕의 실정을 탄핵하거나 탐관오리의 수탈을 고발한 익명의 괘서는 종종 사화로 이어졌다.
지금 쓰는 대자보라는 말은 중국에서 유래했다. 문화대혁명의 도화선이 된 것도 대자보다. 1966년 5월25일 베이징대 캠퍼스에 베이징대학 당 위원회와 베이징시 당 위원회 간부를 비판하는 대자보가 붙었고, 당시 실권파로 불렸던 국가주석 류사오치에 대한 마오쩌둥의 공격이 본격화했다.
한국 대자보의 전성기는 1980~1990년대였다. 하얀색 전지에 유성 매직으로 꾹꾹 눌러쓴 대자보가 대학 여기저기에 나붙었다. 대개 정치·사회 문제를 논평하거나 투쟁을 호소하는 내용이었다. 대자보는 언론자유의 확대, 대학의 탈정치화, 인터넷의 발달로 예전의 힘을 잃었지만 아직도 이따금씩 커다란 사회적 반향을 얻곤 한다. 2010년 고려대생 김예슬씨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는 대자보, 2013년 한 고려대생의 ‘하 수상한 시절에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대자보가 대표적인 예다.
이태원 핼러윈 참사 희생자인 고 유연주씨의 언니 유정씨(27)가 21일 동생을 잃은 서울 이태원 골목 초입에서 대자보를 썼다. 이태원참사특별법에 거부권을 행사한 윤석열 대통령을 비판하는 내용이다. 22일에는 해병대 예비역 대학생이 경북대에서, 예비 초등교사가 서이초 인근에서, 23일에는 전세사기 피해자가 화곡역 인근에서 대자보를 쓴다고 한다. 대자보는 언로가 막힌 시대의 언로였다. 이들의 대자보도 ‘입틀막’하는 정부의 태도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정제혁 논설위원 jhj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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