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증원 2천명 공식화에 의료계 '대화 vs 투쟁' 갈림길(종합)
'강경론'도 여전…의협 신임회장 선출 후 대규모 '총파업' 가능성도
"환자 곁 안 떠나겠다" 선언하는 의사들 늘어…환자들은 '강대강' 대치 비판
(서울=연합뉴스) 김잔디 서혜림 기자 = 정부가 대학별 정원 배정 결과를 발표하면서 2천명 의대 증원에 '쐐기'를 박으면서 의료계가 대화와 강경투쟁의 '갈림길'에 섰다.
병원을 떠난 전공의들이 돌아오지 않는 가운데 정부가 의대 증원을 확정하면서, 의료계에서는 더 이상의 파국을 막기 위해서라도 대화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의견이 고개를 들고 있다.
하지만 전국의 의대 교수들이 이미 사직서 제출 의사를 밝힌 데다, 대한의사협회(의협) 역시 신임 회장 선출을 앞둔 만큼 강경투쟁 분위기가 확산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교수들 "대화의 장 만들면 사직서 제출 철회할 수도", "해결책 찾겠다"
21일 의료계에 따르면 정부의 대학별 의대 정원 발표 후 의대 교수들을 중심으로 정부와 대화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전공의들은 정부의 면허정지 사전통보 등 행정처분 조치에도 침묵하고 있지만, 이들의 선배 의사인 의대 교수들은 '파국'을 막겠다며 신속한 협상을 요구하는 모양새다. 이들은 '동맹휴학'을 결의한 의대생들의 스승이기도 하다.
오는 25일 사직서 제출을 예고한 전국 의과대학 교수 비상대책위원회 역시 집단행동이 아닌 대화로 사태를 해결할 '여지'를 열어뒀다.
방재승 전국의대교수 비대위원장은 이날 YTN뉴스라이더에 출연해 "정부가 전공의 조치를 풀어주고 대화의 장을 만들면 저희 교수들도 사직서 제출을 철회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서울의대-서울대병원 비대위 역시 "여전히 중재자로서 정부와 대화를 기대한다"며 "전공의들과 학생들의 입장을 들어보고 대화를 통해 사태를 해결할 여지가 남아있다고 본다"는 공식 입장을 냈다.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 역시 정부와 소통하면서 해결책을 찾겠다는 입장이다.
조윤정 고려대 의대 교수는 이날 전의교협 브리핑에서 "대화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전의교협은 방재승 위원장이 이끄는 전국의대교수 비대위와는 별개의 교수 단체다. 이들은 최근 서울행정법원에 보건복지부와 교육부 장관을 상대로 의대 증원 취소소송을 제기하고, 집행정지 가처분을 신청하는 등 법적 대응에 집중해왔다.
전의교협은 우선 의협,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학생협회(의대협)와 머리를 맞대고 대응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2천명 증원이 확정된 상황에서 의료계가 정부와의 협상을 위해 내부 결속을 다지는 모양새다. 다만 전의교협 측은 통일된 소통 창구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었으나, 결론을 내리지는 못한 상태라고 밝혔다.
전의교협은 대화를 강조하면서도, 앞으로 교수들의 외래 진료와 수술 축소는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전의교협은 의대 교수들이 사직서를 제출하기로 한 오는 25일부터 교수들의 외래진료, 수술, 입원 진료 근무 시간을 주 52시간으로 줄이기로 했다. 또 다음 달 1일부터 외래 진료를 최소화해 중증·응급 환자 치료에 더욱 집중하기로 했다.
조 교수는 "교수들의 피로가 누적되고 있고 환자가 위험에 노출되고 있다"며 "생명을 담보로 일하는 사람들이 환자의 생명이 다칠까 봐 우려돼 선택한 일임을 이해해달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총파업' 가능성도 제기…"의협 회장 선거 이후 윤곽"
교수들을 중심으로 '대화의 장'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으나, 일각에선 더 강경한 투쟁을 해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정부가 의대 증원과 배정안을 발표하면서 전공의들이 돌아올 명분이 사라졌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크다.
사직서 제출에 가세하는 의대 교수들이 더 늘어날 수도 있다.
중앙대의료원 교수 일동은 이날 '사직의 변'에서 "(정부) 발표로 전공의들이 돌아올 다리는 끊겼다"며 "정부의 폭압적 독선을 저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3월 25일에 사직서를 제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의료계에서는 현재 공석인 의협 회장이 선출된 후 '총파업' 등 새로운 집단행동이 벌어질 수도 있다고 본다.
의협은 전날부터 신임 회장 선거를 위한 선거를 진행 중이다.
후보는 박명하 서울시의사회장 겸 의협 비대위 조직강화위원장, 주수호 의협 비대위 언론홍보위원장,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장, 박인숙 전 국회의원, 정운용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부산·경남지부 대표 등 5명이다.
오는 22일까지 진행되는 1차 투표에서 과반 득표자가 없으면 25∼26일 결선 투표를 진행한다.
후보 5명 중 의대 증원에 찬성하는 후보는 정운용 대표뿐이며, 나머지는 강경파여서 의료계에서는 누가 회장이 되더라도 대정부 투쟁의 수위가 높아질 것이라고 예상한다.
의협은 지금까지는 집단행동에 가세하진 않았지만, 차기 회장 선출을 계기로 '파업'이라는 이름으로 집단 휴진을 하거나 야간·주말진료 축소 같은 집단행동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서울시내 한 수련병원 교수는 "의협 회장이 새롭게 선출되고 나면 새로운 집행부가 대정부 대응을 위한 집단행동에 나서지 않겠느냐"며 "선거가 종료된 후 구체적인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본다"고 했다.
의협도 집단행동 가능성을 시사했다.
의협 비대위는 이날 "남아 있는 저희 의사들은 최선을 다해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겠다"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발생하게 될 모든 문제는 의사들의 외침을 짓밟은 정부에 있음을 명확히 밝힌다"고 엄포를 놨다.
전국광역시·도의사회장 협의회 역시 이날 '폭군의 포퓰리즘, 대한민국 의료의 종말을 고하다'는 성명을 내며 강도 높게 비난했다.
이들은 "모든 기대를 버렸다", "종말을 고한 대한민국 의료는 윤석열 정부가 반드시 책임지기 바란다"고 했다.
"환자 지키겠다" 성명 잇따라…환자들 '강대강' 대치 비판
의료계와 정부 사이의 대화가 진전되지 않는 가운데 적잖은 의사들은 현장에서 묵묵히 환자를 지키고 있다.
진료에 대한 의지를 드러내며 환자들의 불안을 잠재우려는 노력도 적지 않다.
대한응급의학회는 전날 성명에서 "지금도 응급의학과 전문의들은 어려움 속에서도 응급의료 현장을 지키며 최선을 다하고 있으며, 향후에도 야간과 휴일 없이 중증응급환자에 대한 진료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응급의료의 최일선을 유지하고 마지막까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수호하기 위해 우리의 사명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대한소아응급의학회 역시 "소아응급의학회 회원들은 진료의 최일선인 응급실에서 야간, 주말, 공휴일 관계없이 모든 어린이 환자의 진료를 담당해왔다"며 "최선을 다해 소아 응급 환자를 지키겠다"며 힘을 보탰다.
앞서 대한뇌혈관외과학회 및 대한뇌혈관내치료의학회도 지난 15일 "의사들의 주장이 아무리 미래 국민 건강을 위해서라고 하지만 지금 당장의 문제는 현실"이라며 "저희는 조속하고 합리적 해결이 될 때까지 병원을 지키고 있겠다"고 밝혔다.
서울의대-서울대병원 비대위 역시 사직서를 제출한 뒤에도 진료 공백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현장을 지키겠다고 지속해서 강조하고 있다.
환자들은 의정 갈등에 피로감을 호소하며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해달라고 주문한다.
한국암환자권익협의회 등 7개 단체로 구성된 한국중증질환연합회는 "정부는 의료공백 속에서 중증 환자들의 피해에 대한 그 어떤 대책도 없다"며 "정부 발표로 의협과 정부의 강대강 대치는 심화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보건복지부의 의사 집단행동 피해신고·지원센터에 접수된 상담 건수는 전날 기준 55건으로, 이 중 피해신고가 접수된 건 11건이다.
지난달 19일부터 전날까지 누적 상담 수는 1천643건이고, 이 중 548건이 피해 신고 사례다. 피해신고 중에는 수술 지연이 379건으로 가장 많았다.
jand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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