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싼게 비지떡 아냐” 中 전기차 쾌속 질주...美·中 ‘차마겟돈’ 본격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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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마겟돈’ 대혼란기에 미국과 중국이란 두 경제 거인의 전선(戰線)이 ‘전기차’로 옮아가고 있다. 카마겟돈이란 자동차를 뜻하는 ‘카(Car)’와 대혼란을 뜻하는 ‘아마겟돈(Armageddon)’을 합쳐 만든 단어로, 전기차와 자율주행차의 등장 등으로 내연(內燃)기관차 위주 자동차 산업에 거대 재편이 일어나는 현상을 뜻한다.
이 대혼란기 전기차 분야에서 쾌속 질주 중인 나라는 중국이다. 내연기관차 시대엔 자동차의 심장인 엔진에 오랜 연구를 거쳐 핵심 기술을 응축하는 게 중요했다. 그러나 전기차에선 이 심장이 사라지고 제조 과정도 단순해지며 역전의 발판이 마련됐다. 비야디(BYD)와 CATL 등 막강한 배터리 기업이 만든 배터리에 제조 능력을 갖춘 중국은 ‘바퀴 달린 IT 기기’라 통하는 전기차 분야에서 무섭게 전 세계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이에 미국제조업연맹(AAM)은 “(값싼 중국차 침공으로) 미국 자동차 업계는 ‘멸종’을 맞을 수 있다”는 보고서를 냈고, 미국 의회는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관세를 대폭 인상하기로 하며 반격에 나서는 모양새다. WEEKLY BIZ는 이 격변의 카마겟돈 판세를 진단했다.
◇동남아, 중국 전기차 영토로
얼마 전 태국 방콕 수완나품 공항. 1층 출입구를 나서자 ‘EV TAXI(전기차 택시)’라고 쓴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이 택시 업체는 전기차로만 택시 영업을 하는데, 2020년 생긴 후 들여온 택시 70여 대는 모두 중국 전기차 업체 BYD 제품이라고 했다. “택시 회사나 공유 차량 업체, 관공서에 들어가는 전기차는 거의 BYD라고 보면 됩니다. 왜냐고요? 가격부터 싸잖아요.” 이 택시 회사 관계자는 중국산 전기차의 가성비가 괜찮다고 말을 이었다. 택시로 방콕에서 동남쪽으로 140여㎞ 떨어진 파타야 해변까지 달릴 동안, 기자가 탄 BYD E6 전기차는 전기차치곤 소음과 진동이 비교적 센 편이었다. 그래도 이 차를 몰던 기사 차이타씨는 “태국에서 다른 건 몰라도 전기차만큼은 이제 중국 브랜드를 최고로 치는 분위기”라고 했다.
태국 등 동남아는 사실 ‘일본차 천하’였다. 그러나 동남아 시장에선 이제 중국산 전기차가 지각변동을 일으키는 양상이다. 한때 점유율 90%를 자랑한 일본차 업체 9곳의 지난해 태국 시장 점유율은 77.8%로, 전년보다 7.6%포인트 줄었다. 태국이 2030년까지 자동차 생산량 30%를 전기차로 전환하겠다고 나서자, BYD를 필두로 한 중국 전기차 기업이 매섭게 세를 불려나간 탓이다. 태국전기자동차협회(EAT)에 따르면, 지난해 태국 전기차 신규 등록 대수는 7만6366대로 전년(9678대) 대비 8배 수준으로 뛰었다. 태국 내 전기차 브랜드 점유율은 BYD(30%), NETA(20%), MG(17%) 등 중국 기업이 약 80%를 차지했다.
다른 동남아 국가도 비슷한 분위기다. 2022년까지 약 3000대 판매에 불과했던 말레이시아 전기차 시장은 BYD 등 중국 기업이 본격적으로 판매를 시작한 작년 판매량이 1만3257대로 껑충 뛰며 급성장 중이다. 정부가 2040년까지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차의 생산 비율을 38%로 늘리겠다며 전기차 기업에 각종 세금 감면 혜택을 몰아주겠다고 발표하자마자 중국 전기차 기업들이 말레이시아 공략에 나선 것이다.
◇'보조금 중단’ 벼랑 끝에 놓이자
중국 전기차 기업들이 해외 진출을 서두른 건 시장 선점 효과를 노린 것도 있지만 해외의 보조금·세제 혜택을 얻으려는 측면도 크다는 게 전문가들 설명이다. 일찍이 중국 전기차 업체는 자국 보조금 정책을 영양분 삼아 성장했다. 중국은 2009년부터 시행한 전기차 보급 정책을 바탕으로 자국 내에서 생산된 전기차에 보조금을 쏟아부었다. 한국의 보조금이 전기차를 사는 소비자에게 할인 혜택을 주는 식이라면, 중국은 아예 생산자에게 보조금을 직접 줘서 출고가를 낮췄다. 이에 중국의 수출용 전기차도 덩달아 ‘싼 가격’을 내세울 수 있었다. 중국 정부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22년까지 중국이 전기차 업체에 쏟아부은 보조금 액수만 총 1600억위안(약 30조원)에 달할 정도였다. 특히 업계 1위인 BYD는 70억위안에 달하는 보조금을 지원받았다. 그러나 이런 가격 공세에 당하던 유럽연합(EU)이 이를 덤핑으로 보고 조사에 들어가자, 중국 정부는 지난해부터 보조금 지급을 끊게 됐다. 이에 중국 전기차 업체는 보조금 혜택이 있는 ‘새로운 땅’을 찾아나섰고, 태국 등 동남아 각국으로 빠르게 뿌리 내리게 됐다.
그러나 중국 전기차 업체가 해외 공장에 눈돌린 건 단순히 보조금 때문만은 아니다. 중국 전기차 업계 입장에선 이미 업체별로 수없이 쏟아내는 자국 내 전기차 공급 과잉이란 큰 위기를 맞아 더 넓은 해외시장이 필요해졌다. 중국은 이미 지난해 전기차를 158만대 수출하는 전기차 최강국이 됐고, 해외시장은 전기차 소비 여력이 여전히 남아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중국 상무부는 자국 전기차 제조 업체의 해외 진출을 장려하면서, 중국 자동차 공급 업체가 관련 투자를 하면 신용 대출까지 해준다고 하고 있다.
◇'싼 게 비지떡’이 아니다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 중국산 전기차가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무섭게 영토를 넓혀가고 있지만, 더 무서운 건 이 차들이 ‘싼 게 비지떡’이 아니라는 점이다. 실제 해외시장에서 중국 전기차는 이미 경쟁사와 비교해 충분한 경쟁력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중국 자동차 제조 업체의 개발 속도는 기존 제조 업체보다 약 30% 빠르다”며 “이는 수십 년간 복잡한 내연기관 자동차를 만들어온 오래된 회사들의 관행을 뒤집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렇게 중국 전기차가 빠르게 치고 나갈 수 있는 비결로는, 기존 내연기관차 업체들과 접근법이 다르다는 점이 꼽힌다. 기존 업체들이 ‘자동차’라는 하드웨어부터 개발을 시작한다면 중국 업체들은 소프트웨어 중심 제품을 만들기 때문에 개발 과정이나 판매 전략 등이 아예 다르다는 것이다.
이런 차이는 전기차 신차 개발 속도부터 격차를 만들어냈다. 지난해 출시한 자동차 신규 모델들을 살펴보면, 중국 이외의 국가에서 내놓은 전통 내연기관 자동차 브랜드는 4.2년 만에 새 모델을 내놓은 것으로 분석됐다. 반면 중국 전기차 브랜드들은 1.3년 만에 새 모델을 내놨다. 이처럼 빠른 속도가 나올 수 있는 것은 기존 자동차 브랜드가 디자인, 시제품 생산, 시운전 등 과정을 하나하나 단계별로 밟아가는 반면, 중국 전기차 업체들은 모든 과정을 부서별로 한꺼번에 진행하기 때문이다. WSJ는 “중국 전기차 업체는 기존 자동차 제조 업체와는 달리 스타트업처럼 운영한다”며 “일이 잘못됐을 때 위험과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더라도 신제품을 더 빨리 시장에 출시하기 위해 표준 프로세스를 무시할 의향이 더 크다”고 전했다.
실제로 중국 전기차에선 ‘선(先) 출시 후(後) 업데이트’란 방식도 나왔다. ‘대륙의 테슬라’라고 하는 니오(NIO)가 시행하고 있는 이 방식은 디자인만 완성되고 차량이 안전하게 굴러만 간다면 새로운 모델을 내놓을 수 있게 한다. 소프트웨어는 나중에 업데이트할 수 있는 데다, 소프트웨어를 더 자주 새롭게 업데이트하는 게 전기차 소비자에겐 오히려 더 좋다는 것이다. 일례로 2022년 6월 출시된 니오의 ES7 차량에는 그래픽 처리 장치(GPU) 반도체가 총 4개 들어가 있는데 이 중 현재 사용하는 것은 3개뿐이다. 신호등 신호 변화에 따라 자동으로 시동을 걸거나 멈추도록 하는 등 새로운 기능을 개발할 때마다 이미 판매한 차를 업데이트해 줄 요량으로 미리 반도체를 넉넉히 담아둔 것이다. 자동차를 스마트폰처럼 언제든지 업데이트하겠다는 발상 전환으로, 현재는 제 기능을 모두 하지 못하는 최첨단 카메라나 센서도 미리 달아뒀다.
미래 모빌리티 분야에서도 중국은 이미 앞서가고 있다. 중국에선 이미 자율주행 택시가 운행되고 있다. 택시 안전 요원이 운전석에 타고는 있지만 차량이 스스로 달리거나 멈춘다. 이른바 미래 모빌리티 분야의 핵심이란 ‘연결성(Connected)’ ‘자율주행(Autonomous)’ ‘차량 공유(Shared&Service)’ ‘전동화(Electric)’ 등 ‘케이스(CASE)’ 분야에서 중국이 변화를 주도하는 것이다.
◇美, 전방위 압박 나서
중국 ‘전기차 굴기(崛起)’에 자국 자동차 산업이 타격받을까 우려한 미국 등 서구권은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사실상 보호무역에 들어가는 양상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말 성명을 통해 “중국과 같은 ‘우려 국가’의 자동차가 미국 도로에서 국가 안보를 훼손하지 않도록 전례 없는 조치를 발표한다”며 “우려 국가 기술을 적용한 커넥티드카 조사를 수행하고 위험에 대응하는 조치를 하도록 지시했다”고 말했다. 커넥티드 카(Connected Car)란 인터넷 연결 기능이 있는 자동차를 일컫는데, 사실상 중국산 전기차를 표적으로 한다는 분석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커넥티드 카를 ‘바퀴 달린 스마트폰’에 비유하며 중대한 안보 위협 요소로 규정했다. 지나 러몬도 미 상무부 장관도 “중국 커넥티드카는 베이징의 누군가에게 즉각적으로 동시에 무력화(武力化)될 수 있는데, 이는 생각만 해도 무섭다”며 커넥티드카의 사생활 침해와 해외 정보 유출 문제를 지적했다. 중국 전기차가 자국 안보에 위협이 될 수 있어 견제한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은 셈이다.
이미 바이든 행정부는 올해부터 전기차 구매자에게 보조금 7500달러를 지원하는 제도를 개편하면서 중국을 포함한 ‘외국 우려 기관’의 배터리나 배터리 광물을 사용하는 자동차는 지원하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달 28일 조시 홀리 미 공화당 상원의원은 중국산 자동차 관세를 현재 27.5%에서 125%로 올리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이런 미국의 조치를 두고 재선에 도전하고 있는 바이든의 ‘정치적 노림수’란 로이터 보도도 나왔다. 경쟁자인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미국과 중국이 벌이는 전기차 경쟁에서 밀려 일자리를 잃고 있다고 비판하자, 이에 대응하는 정책으로 ‘중국 전기차 때리기’에 나섰다는 것이다. 실제 트럼프는 중국 전기차에 극도로 반발하는 분위기다. 그는 지난 16일 유세에서 “거대한 자동차 제조 공장이 멕시코에 건설되고 있다”며 “미국인들은 고용하지 않고 차를 미국에 팔려고 하는데 그건 절대로 허용할 수 없다. 국경을 넘어오는 차에 10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내연기관차 강자가 많음에도 중국 전기차 점유율이 가파르게 상승 중인 유럽연합(EU)에서도 중국 전기차에 대한 추가 관세 부과를 서두르고 있다. 지난해부터 중국 정부의 전기차 보조금을 조사해 온 EU 집행부는 “중국 정부가 불법적으로 보조금을 지급한 ‘상당한 증거’를 찾았다”고 밝히고 관세 부과를 예고했다. 이에 따라 오는 7월부터 EU가 수입하는 중국산 전기차에는 관세가 부과될 전망이다.
◇업계에선 중국 배우기 움직임도
중국 전기차 업계가 맹렬한 기세로 세계시장을 장악하면서, 글로벌 자동차 업계에선 오히려 ‘중국과 협업하자’는 움직임도 나타난다. 유럽 최대 자동차 업체 폴크스바겐은 올해부터 유럽에서 판매하는 전기 SUV 타바스칸을 중국에서 만든다. 폴크스바겐은 중국에서 만드는 차량은 중국에서만 판매해 왔는데 이 원칙을 처음 깬 것이다. 폴크스바겐 측은 “중국 업체에서 부품을 받아 중국에서 차량을 만들면 개발 시간이 30% 단축되고 비용도 20~40% 절감된다”고 이유를 밝혔다. 일본 도요타와 닛산, 한국의 현대차, KG모빌리티 등도 중국 업체와 전기차 기술 제휴 계약을 맺거나 중국인 채용을 늘리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반면 중국 전기차에 맞불을 놓는 곳도 있다. 중국 전기차 업계의 가장 큰 경쟁자로 꼽히는 미국의 테슬라가 대표적이다. 테슬라는 출시가 오래 지연되고 있는 신형 로드스터 스포츠카를 내년에 내놓겠다고 밝혔다. 테슬라의 신차 출시 소식은 중국과 벌이는 경쟁을 다분히 의식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앞서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최고경영자)는 지난 1월 실적 발표 때 “무역 장벽들이 세워지지 않으면 그들(중국)은 전 세계 자동차 회사 대부분을 무너뜨릴 것”이라고 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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