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초포럼] 시장의 자율조정 기능 최대한 존중해야
시장을 보는 눈은 사람들마다 다르다. 예를 들어 규제주의자들은 시장을 부정적으로 본다. 시장은 외견상 평등한 사람들 간 거래가 이뤄지는 장소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들에게 시장은 근본적으로 권력관계가 작용하는 장소이다. 예를 들어 자본가는 노동자 대비 많은 권력을 소유하고 있어서 실제 거래에서는 불평등 계약이 만연하다는 것이다. 일반인들은 다만 시장의 익명성으로 인하여 이를 잘 모를 뿐이란 것이다. 시장은 평등한 거래관계로 위장한 권력관계에 불과하므로 불평등 해소를 위해 규제 도입은 불가피하다.
반면 시장주의자, 특히 계약론자들은 권력근본론을 부인한다. 시장은 시장실패를 제외하곤 대등한 거래당사자 간 합리성에 근거하여 거래하는 장소이다. 합리성은 일회성 상품거래뿐만 아니라 지속계약 이행이 이루어지는 고용이나 장기 물품공급 거래에서도 작용한다.
2018년 제정된 대학강사법이나 2019년의 이자제한 상한선 인하는 양 시각에 대한 평가를 내릴 수 있는 좋은 사례로 보인다. 대학강사법은 신분불안과 저소득으로 어려웠던 시간강사들을 보호한다는 취지로, 이자율 상한선 인하는 취약계층 이자부담 완화를 이유로 추진되었다. 이전까지 이자율 상한선인 27.9%가 2019년부터는 24%로 낮아진 것이다.
대학강사법에 따라 4개월에 불과했던 시간강사와 대학 간 계약기간은 1년으로 강제 연장되었고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계약은 3년 동안 유지될 수 있게 되었다. 과목당 50만원씩 최대 3과목만 가능해 많아야 150만원만 받던 시간강사의 급여도 과목 수가 늘고 방학기간 수입이 보장되면서 늘어난다. 강사들의 신분과 수입불안정은 해소되는 것 같았다.
문제는 실제 결과가 기대와는 달랐다는 것이다. 일부 시간강사는 혜택을 보았으나 많은 시간강사들이 일자리를 잃게 된다. 한 연구에 따르면 2018년 3만2000여명의 시간강사가 2019년 9월엔 2만4000여명으로 줄어들면서 8000여명이 일자리를 잃는다. 예산과 시간강사 자리가 한정된 상황에서 특정한 시간강사들의 수업과 급여 증가는 다른 사람들의 일자리를 뺏은 것이다.
법정 고금리 인하는 정말 가난한 사람들을 어렵게 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엄격한 심사를 거쳐 안전한 사람에게 대출해주는 은행과 달리 고금리 대부업자들은 신용등급이 매우 낮은 사람에게도 돈을 빌려줌으로써 원금과 이자를 떼이는 경우가 많다. 이자율이 높은 경우엔 설령 일부에게 돈을 떼이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고이자를 징수해 어느 정도 수익이 보장되기 때문에 어려운 사람들에게도 대부해줄 수 있었다. 그러나 이자율을 낮추자 정말 어려운 사람들은 대부업자에게조차 돈을 빌릴 수 없게 되었고, 이는 파산자 급증으로 이어졌다. 대부업자들은 이자율 상한선이 27.9%였던 2017년 하반기 3조3000억원 정도 대부해주었으나 이자율이 24%로 낮아진 2019년 상반기엔 2조1000억원 정도로 대부금액을 줄인다. 더 어려운 사람들에 대한 대부가 사라진 것이다.
좋은 취지로 시장거래에 개입한 적지 않은 입법이나 규제는 실제로는 취지와 정반대의 부작용을 만들어 낸다. 시장거래 왜곡을 초래할 수 있는 제도 도입을 항상 경계해야 할 이유다.
국회의원 선거가 앞으로 다가왔다. 다음 국회에선 새로운 제도 도입이나 입법이 실증분석과 실험을 통해 부작용까지 해소하는 신중한 접근이 이뤄지길 기대한다. 아울러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부작용을 양산한 제도들의 과감한 폐지도 기대해 본다.
정만기 한국산업연합포럼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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