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없는 방산 공관장 회의로 입국한 이종섭…5월까지 대사 공백 이어지나
6개국 방산 공관장 회의 급조 비판
호주서 공식 업무는 참전비 헌화뿐
임명도 귀국도 명분은 ‘방산’
“호주 외교에 방산만 있나” 지적
국방부 장관 재직 시절 ‘해병대 채상병 사망사건 수사 외압 의혹’으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수사 대상에 오른 이종섭 주호주대사가 21일 귀국했다. 부임 후 불과 11일 만에 돌아온 이 대사는 사퇴 요구에는 묵묵부답한 채 방산 협력 논의를 위한 ‘임시’ 귀국임을 강조했다. 윤석열 정부는 ‘도주 대사’ 논란에 “이 대사는 방산 수출 적임자”라고 감싸왔고, 계속된 귀국 요구에는 결국 전례없는 ‘방산 협력 주요 공관장 회의’까지 만들었다. 방산을 이 대사 감싸기 위한 ‘방패’로 삼고 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이 대사가 이날 오전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한 뒤 먼저 꺼낸 말도 방산이다. 싱가포르를 경유한 항공편으로 도착한 그는 공항에 나온 취재진에 “임시 귀국한 것은 방산 협력과 관련한 주요국 공관장 회의에 참석하기 위함”이라며 “체류하는 동안 공수처와 일정 조율이 잘 되어서 조사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밝혔다.
이 대사는 방산협력 주요 공관장 회의 참석 후 그 다음 주에는 “한국과 호주 간에 계획되어 있는 ‘외교·국방 장관 2+2 회담’ 준비와 관련한 업무를 많이 하게 될 것”이라며 “두 가지 업무가 전부 다 호주 대사로서 해야 할 중요한 업무이고 그 업무에 충실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 대사가 언급한 회의는 전날 발표됐다. 외교부와 국방부, 산업통상자원부 공동 주관으로 주요 방산 협력 대상인 6개국(사우디라비아·아랍에미리트·인도네시아·카타르·폴란드·호주) 주재 대사가 참석해 현지 정세와 시장 현황, 수출 수주 여건, 정책 지원방안 등을 논의한다는 것이다. 주요 방산기업을 방문해 무기 체계의 운용 현황을 시찰할 예정이다.
방산 협력을 주제로 일부 공관장들만 따로 국내로 불러 회의를 연 전례가 없다. 이 대사의 조기 귀국을 위해 급조된 ‘방탄’ 회의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회의가 언제 끝나는지도 확정되지 않았다. 외교부 당국자는 “25일 시작돼 다음 주 내내 열릴 예정”이라고만 밝혔다. 회의 참석은 공무로 처리돼 외교부에서 이 기간 중 숙소 등을 제공한다. 외교부는 나머지 5개국 대사의 귀국 일정은 밝히지 않았다.
이 대사는 임명 자체부터 논란이 됐다. 채 상병 사건 수사외압이 대통령실까지 닿아있는지 가릴 열쇠를 쥐고 있는 인물인데다 공수처가 1월 출국금지 조치를 내린 사실까지 드러났기 때문이다. 전직 장관이 한참 급이 낮은 차관보급 호주 대사로 가는 것도 이례적이다.
정부는 임명 명분부터 방산 카드를 꺼냈다. ‘런종섭’ 논란이 커지자 대통령실은 지난 19일 언론공지를 통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한·미·일·호주와의 안보협력과 호주에 대한 대규모 방산수출에 비추어 적임자를 발탁한 정당한 인사”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한 방산 관계자는 “현지 대사가 방산 협력 채널 역할을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호주의 경우 지난해 이미 3조원 규모의 레드백 수주가 이뤄졌다”면서 “큰 계약을 앞두고 있는 것도 아니고 현지에서도 논란이 다 알려진 상황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 지 의문”이라고 했다. 앞서 호주 공영방송 ABC는 이 대사의 호주 입국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양국 외교관계에 어려움이 야기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 대사는 윤석열 대통령의 신임장 원본을 받지 않은 채 사본을 갖고 출국했다. 부임한 국가원수에게 신임장 원본을 제정하기 전까지는 입법·사법·행정 3부 요인 예방이나 언론 인터뷰 등 주요 활동에 제한을 받는다. 제정 전에는 주로 현지 교민이나 한인 기업인들과 면담으로 업무를 시작하는데 이 대사는 이 마저도 하지 못했다. 호주 교민들이 여러 차례 집회를 열고 “대사 임명 즉각 철회”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결국 이 대사가 부임한 뒤 한 공개 활동은 12일 한국전 참전기념비 방문 헌화뿐이다. 4월 22~26일 서울에서 열리는 재외공관장 전체회의와 4월 말 또는 5월 초로 예상되는 한-호주 외교·국방(2+2) 장관회의 일정까지 소화하면 5월까지도 대사 공백 상태가 이어질 수 있다. 이 대사가 자리를 비운 사이 호주대사관의 업무는 공사의 대사대리 체제로 유지된다.
한 전직 외교관은 “호주는 부산엑스포 투표 때 특히 영향력을 확인시킨 태평양도서국 핵심 국가”라면서 “호주와의 외교에서는 방산만 중요한 게 아니라 글로벌공급망이나 광물자원 LNG(액화천연가스), 기후 협력 등 다른 중요한 이슈가 훨씬 더 많다”고 지적했다.
박은경 기자 yam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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