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신의 아이콘’ 스스로 황제에서 물러나다

한겨레 2024. 3. 21.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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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나이에 조선을 쥐락펴락했다.

1884년 갑신정변 때는 "변발을 목에 두르고 직접 칼을 휘둘러" 고종을 일본 병사들에게서 구해내더니('매천야록'), 나중에는 청나라에 잡혀가 있던 대원군을 조선에 풀어놓고 고종과 싸움을 붙였다.

청나라와 일본 군대가 싸움을 시작할 무렵, 위안스카이는 아무 책임도 지지 않고 중국 땅에 돌아간다.

총리로 임명된 위안스카이, 이번에는 청나라 정부를 배신하고 혁명 세력과 손을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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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역사다] 위안스카이(1859~1916)

젊은 나이에 조선을 쥐락펴락했다. 1884년 갑신정변 때는 “변발을 목에 두르고 직접 칼을 휘둘러” 고종을 일본 병사들에게서 구해내더니(‘매천야록’), 나중에는 청나라에 잡혀가 있던 대원군을 조선에 풀어놓고 고종과 싸움을 붙였다. 김윤식 같은 신하에게 접근해 고종을 몰아내자고 제안한 일도 있단다. 그러다가 1894년에 청일전쟁이 터진다. 청나라와 일본 군대가 싸움을 시작할 무렵, 위안스카이는 아무 책임도 지지 않고 중국 땅에 돌아간다.

1898년 청나라 임금 광서제가 무술변법 운동을 일으켰는데 기득권층과 서태후는 개혁을 싫어했다. 이때 위안스카이가 서태후 편을 들었다고 한다. 광서제를 배신한 것이다. 그 뒤로 위안스카이가 자기 군대를 양성하며 세력을 키우자 청나라 정부는 그를 견제한다. 위안스카이는 1908년부터 은거하며 다시 난세를 기다린다.

1911년에 중국에서 신해혁명이 터진다. 쑨원과 쑹자오런이 이끄는 혁명 세력이 중국 땅 곳곳을 장악한다. 도움받을 곳이 없던 청나라 정부는 위안스카이에게 다시 손을 내민다. 총리로 임명된 위안스카이, 이번에는 청나라 정부를 배신하고 혁명 세력과 손을 잡는다. 자기를 총통을 시켜주면 청조를 멸망시켜주겠다고 혁명 세력과 뒷거래를 한다. 위안스카이는 청나라 마지막 황제 선통제 푸이를 폐위시키고 중국의 일인자가 된다.

위안스카이의 배신은 끝나지 않는다. 그는 혁명 세력도 배신한다. 1913년 총선에서 혁명 세력이 압승을 거둔다. 3월20일에 혁명지도자 쑹자오런이 상하이에서 피격당해 3월22일에 숨을 거둔다. 위안스카이가 암살 배후라는 소문이 자자했다. 위안스카이는 쑨원과 혁명 세력을 내몰고 스스로 독재자가 된다. 이렇듯 조선과 청과 중화민국, 세 나라의 근대화 노력을 짓밟았다.

1915년에 중화제국을 선포하고 황제로 즉위한다. 그러나 더는 사람들이 참지 않았다. 중국 땅 곳곳에서 반대 운동이 일어난다. 위안스카이가 끝내 황제의 꿈을 접고 임금 자리에서 물러난 날이 1916년 3월22일, 쑹자오런이 숨을 거둔 지 딱 3년째 되던 날이다.

김태권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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