쫄지 말자! [슬기로운 기자생활]

박지영 기자 2024. 3. 2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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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네네네네네. 네네네. 알겠습니다. 아, 네네."

며칠 전 업무 관련 통화를 우연히 옆에서 듣던 친구가 내게 "도대체 '네'라는 대답을 몇번이나 하는 거냐"며 어이없어했다.

그냥 '네' 대답 한번이면 그만이지, 뭘 그렇게 '쫄듯이' 전화를 받느냐는 것이었다.

메일함을 뒤져 가장 어려운 기술 전문 기업들의 보도자료 문구를 꼽아본 것인데, 거의 매번 마주치는 용어들을 포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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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박지영 | 빅테크팀 기자

“아, 네네네네네. 네네네. 알겠습니다. 아, 네네.”

‘네’라는 대답만 열번. 며칠 전 업무 관련 통화를 우연히 옆에서 듣던 친구가 내게 “도대체 ‘네’라는 대답을 몇번이나 하는 거냐”며 어이없어했다. 그냥 ‘네’ 대답 한번이면 그만이지, 뭘 그렇게 ‘쫄듯이’ 전화를 받느냐는 것이었다. ‘내가 쫄았다고?’ 순간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듯했다. 기분이 나빠지려는 것도 잠시, 최근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는 은근한 불안과 안절부절이 일상이 된 나를 돌아보니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쫄고 있었다.

왜 나는 쫄고 있는가. 입사 4년차 부서 막내로, 산전수전 다 겪은 연차 지긋한 선배들과 함께 일을 하고 있어서? 물론 그 영향이 없는 건 아니겠지만, 지금보다 더 기자 일에 서툴렀던 지난날을 생각하면 근본 이유는 될 수 없을 것 같다. 왜 나는 요즘 기사를 쓴 뒤 ‘이게 맞나?’ 싶은 불안에서 쉽사리 벗어나지 못하는 걸까.

꼬리에 꼬리를 문 생각이 이어진 뒤 찾은 이유는 정보기술(IT) 기업들의 보도자료다. 내가 직접 보고 들은 취재 내용도 중요하지만, 자사 기술력의 우수함을 알리고 각종 업무협약 등 홍보를 주 내용으로 삼는 기업 보도자료 또한 내가 속한 팀에선 중요한 취잿거리다. 그런데 전문용어와 영어 단어로 도배된 보도자료들을 읽다 보면, 이루 말할 수 없는 절망에 빠지곤 한다.

“ㄱ사의 스트림 프로세싱은 높은 도큐먼트 모델 유연성 및 사용 편의성을 제공하고 쿼리 애플리케이션 개발 도구(API)를 지원하는 ㄱ사의 장점을 스트림 처리에 접목한 솔루션이다.” “인공지능·데이터 연계 소프트웨어(SW) 전문기업 ㄴ이 백엔드 노코드(No-Code) 개발 솔루션 기업 ㄷ과 응용 프로그램 플랫폼 서비스(APAAS·Application Platform as a Service) 및 노코드 플랫폼 사업의 발전을 위한 전략적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메일함을 뒤져 가장 어려운 기술 전문 기업들의 보도자료 문구를 꼽아본 것인데, 거의 매번 마주치는 용어들을 포함하고 있다. ‘사용자의 필요성을 충족하면서 문제를 해결하는 소프트웨어 및 하드웨어’를 뜻하는 솔루션, ‘입출력된 데이터 등의 흐름’을 의미하는 스트림 등이다.

전문용어들 속 숨겨진 기업들의 보도자료 발표 배경과 의도, 업계 맥락을 ‘내가 제대로 이해한 게 맞는지’ 의심과 불안이 들 때 제일 먼저 찾게 되는 건 해당 보도자료를 쓴 홍보팀 직원들이다. ‘이게 무슨 의미냐’, ‘내가 이해한 게 맞냐’ 질문하면 종종 홍보팀 직원들도 “정확하지 않으니, 다시 해당 부서에 확인해보겠다”고 답하곤 한다. 어려운 기술 용어를 보도자료에 담을 수밖에 없는 홍보팀 직원들 사정도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다. 이들도 “담당 부서에서 ‘꼭 이 용어를 써야 정확하다’고 해 보도자료 쓸 때 항상 힘들다”고 토로하기도 한다.

인공지능 시대를 버텨낼 인간 고유의 능력으로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구분하고, 자신의 한계를 깨닫는 ‘메타인지’가 꼽힌다고 한다.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다고 스스로 인식이라도 하고 있으니 절반의 절반은 성공한 셈 쳐본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제대로 알아채고, 좋은 질문을 하는 것. 인공지능 등 각종 기술 관련 기사를 쓰며 한껏 쪼그라든 마음을 펴볼 수 있는 길이 아닐까 싶다.

jy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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