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 대한 몇가지 단상 [이석태 칼럼]
이석태 | 전 헌법재판관
모든 주요 뉴스가 국회로 향하는 요즘이다. 정치에 문외한이고 잘 아는 의원도 거의 없어 선거철이라 해서 특별히 염두에 두어야 할 사정은 없다. 국회 뉴스에 유의하면서 투표 당일 집에서 가까운 투표장에 가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유권자의 권리를 행사하고 싶다.
그래도 국회 하면 생각나는 것들이 있다. 오래된 일로 정기승 대법원장 국회 임명동의안 부결 사건이 떠오른다. 1988년 7월 무더운 어느 여름날이었다. 재판보다 중요한 일이 있으니 국회에 같이 가자는 선배 변호사들 권유에 민변의 젊은 변호사들은 오전 재판을 건너뛰고 여의도에 갔다. 그날 본회의에서 대통령이 지명하는 대법원장 인준 표결이 있을 예정인데 그에 반대하는 운동을 하자는 것이었다. 국회 본청에 도착해 야당인 평민당과 민주당 당직자 등과 의원실을 방문하여 찾아온 목적을 알리고 가지고 온 인준 반대 의견서를 돌렸다. 정 후보자의 과거 경력으로 보아 권력 편승 경향이 강하고 사법권 독립 의지가 약해 전국의 법관들을 이끄는 사법부의 대표자가 되기에 부적법하다는 취지였다.
의원들은 변호사들로부터 의견서를 건네받긴 하였으나 부결에 확신은 가지지 못하는 듯했다. 그래도 구애받지 않고 본회의에 앞서 주로 야당 의원들을 상대로 인준 반대를 위한 설득 작업을 계속했다. 모름지기 로비란 이렇게 하는 거야 하며 후배들을 독려하던 조영래 변호사의 미소가 남아 있다. 본회의 투표 결과 찬성 141표, 반대 6표, 기권 134표, 무효 14표로 부결됐다. 가결에 필요한 정족수는 투표 참여 의원의 과반수인 148표였는데 7표가 모자라서 국회 통과에 실패했다. 임명동의안 통과를 낙관하던 노태우 대통령과 여당인 민정당은 상당한 충격을 받은 듯했다. 인준에 반대하던 야당도, 반대 운동을 하던 변호사들도 막상 부결이 되니 서로 놀랐다. 대통령이 지명한 사람도 의원들의 표결로 거부할 수 있구나, 이런 일이 가능하구나. 직전 12월의 대통령 선거에서 야권 후보 단일화 실패로 남아 있던 우울함에 작은 위안이 되었다.
그 뒤로 많은 일이 있었다. 시민단체들을 대표하여 입법안을 들고 국회에 가기도 하고 토론회에 참석하는 일도 적지 않았다. 당대표들을 만나고 국회의원들을 여럿 만났다. 토론 순서를 기다리며 앉아 있던 국회 내의 넓은 청중석이 생각난다. 그러다가 2015년 겨울부터 봄 무렵까지는 세월호 참사 건으로 국회에 상주하다시피 했다. 당시 4·16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장으로서 적정한 예산 확보와 조사 기간 연장을 위해 국회의 도움이 절실했다. 예산 문제를 담당하던 여야의 중요 의원들을 만나 호소했다. 노력에 비해 별 소득이 없었다. 국회 내에 설치된 티브이를 통해 특조위 해체와 위원장 사퇴를 요구하던 여당 의원들의 성명을 보기도 했다. 특조위에서 의결한 청와대 조사 건이 논란이 된 것이다. 그 건은 다수 접수 사안 중 하나였고, 일단 접수가 된 이상 조사 대상에서 제외할 이유는 없었다. 우선 조사 대상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여당 측 추천 위원들이 모두 사퇴했다. 참사와 무관한 대통령을 조사한다니 정치적 중립 의무에 위배된다는 취지였다. 결국 예산은 대폭 삭감되었고 조사 기간 연장은 없던 일이 되었다. 이 일이 계기가 되어 세월호특조위 직원들과 세종문화회관 앞 세월호 광장에서 릴레이 단식 농성을 시작했다. 가족들도 동조 단식에 참여했다. 1기 세월호특조위는 세월호 가족들을 비롯한 관계자 모두의 아쉬움 속에 그렇게 종료되었다. 처음부터 국회에 대하여 큰 기대는 없었으나, 스스로 만든 입법에 따라 설립된 특조위를 해체하려는 여당의 의도에 실망이 컸다. 뜻이 좋아도 정치적 상황에 따라 결과가 유동적일 수 있다는 교훈을 얻었다.
이제 4월이면 새 국회 구성을 한다. 기표 용지에 인쇄된 적지 않은 후보자 중 어떤 인물을 선택하는 것이 좋을까. 각 당의 정책을 가려 보는 기준은 무엇일까. 뚜렷한 안목을 갖고 있지 못한 탓에, 대의정치가 유럽에서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19세기 영국의 사상가 존 스튜어트 밀의 자료를 찾아본다. 그는 평소 그의 개혁 운동을 지지해온 런던 지역 주민들의 요청을 뿌리치지 못해 1865년 하원의원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그는 ‘자서전’에 이런 구절을 남겼다. “나는 전문적 직업들 가운데 어떤 것을 가짐으로써 돈을 벌고 명예를 얻을 수 있었던 기회를 여러번 놓친 것을 아깝게 여기지 않았다. 특히 아버지가 나를 위하여 생각해준 직업인 변호사가 되지 않은 일에 대해서 조금도 후회하지 않았다. 그러나 국회와 공적 생활에 참여하지 못한 데 대해서는 무관심할 수 없었다.”
그는 선거의 공공성을 열렬히 주창했다. “선거 비용을 그 전부이건 일부이건 후보자가 부담한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일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사실상 돈을 주고 의석을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밀은 자신의 신념대로 별도의 선거 비용을 지출하지 않고 선거에 임했는데도 상대방인 보수당 자산가 후보보다 더 많은 표를 얻었다. 그는 유권자들에게 보낸 공개서한에서 자신이 거주하는 ‘지방의 이해관계’를 위해서는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들일 수 없다고 선언했다. 그는 영국 의회에서 처음으로 소선구제의 폐해를 지적하였으며 비례대표제를 주장했다. 또한 영국 주류 사회와 달리 여성의 정치 참여에 앞장섰으며, 1866년 저명한 여성들이 서명한 여성 참정권 요구서를 국회에 제출하기도 했다. 그는 임기 중 노동자들의 노동권 확보를 위해 애썼다. 밀은 그의 저서 ‘자유론’에서 과학, 도덕, 종교 등 모든 문제에서 사상과 양심의 자유 보장을 위한 전제로서 표현의 자유를 요구했다. 이러한 자유가 없는 나라는 그 통치 형태가 어떻든 민주주의 사회가 아니라고 썼다.
새 국회의 구성을 예측해보면서, 영국 대의정치의 토대가 된 밀의 시대를 지금의 사정과 비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공공성에 대한 일관된 믿음, 여성 참정권과 더불어 소수자 보호와 노동자의 단결권을 옹호한 그의 사상은 우리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후보 선택 기준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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